주간동아 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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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대출위탁법인이 기가 막혀

매년 수조 원대 대출 과정서 연이은 잡음…관리감독해야 할 농협중앙회는 ‘나 몰라라’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journalog.net/gangpen @gangpen

    입력2011-04-11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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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에는 좀 챙겨줘야 해.”

    경기 수원시 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무사로 일하는 K씨는 지난해 중순 농협중앙회(이하 농협) 대출 모집법인(이하 모집법인)의 한 팀장에게서 노골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요구받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하면 거절하기 힘들었다. 모집법인이 주선한 주택담보대출의 등기설정을 대행해주면 수수료가 만만치 않은데, 잘못 보였다간 거래가 끊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K씨는 비슷한 시기 모집법인의 대표에게서 같은 요구를 받았다. 이번 건은 거래 규모가 컸다. 아파트 분양 물량이 2000세대에 육박해 한 번에 수억 원의 대행 수수료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 건과 관련해 대표와 팀장에게 각각 얼마를 사례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팀장이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대표와 일하냐, 아니면 팀장과 일하냐. 누구에게 주든 상관없으니 사례금은 모두 나에게 달라.”

    결국 K씨는 “위에서 말이 안 나오게 잘 처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팀장에게 사례금조로 4000만 원을 건넸다. K씨는 “등기설정 대행을 미끼로 법무사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에게 금품은 물론, 향응을 요구하는 모집법인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업계에서 관행으로 이뤄져 어느 누구도 이를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2. 경기지역 모 법무사 사무실의 사무장 L씨는 최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과 농협 측에 피해 구제를 호소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L씨는 모집법인의 간부 A씨에게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억 원의 금품을 사례금 명목으로 상납하고, 1억 원 상당의 향응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A씨 여자친구의 부동산 매매자금으로 3억 원 정도의 현금을 빌려주는 등 각종 편의도 제공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A씨는 약속한 등기설정 대행 업무를 다른 법무사에게 넘겼고 이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봤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L씨의 주장이다.

    N사와 F사 내세워 대출상담과 판매

    이에 A씨는 “L씨와 현금을 거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채권채무 관계에서 오간 것일 뿐, 단 한 푼도 상납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나중에 확인해보니 L씨에게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아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 농협 측은 난감한 상황. 수사권이 없어 누구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모집법인과 법무사 사이의 금전 거래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농협의 대출업무를 대행하고 주선하는 모집법인 관계자가 금품과 향응을 요구하는 등 부정을 저지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법무사나 사무장을 상대로 등기설정 대행 업무를 몰아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농협은 별다른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는 실정이다.

    농협 측에 따르면, 농협의 전체 가계대출 규모는 56조 원 정도다. 연간 신규 대출 규모는 10조 원 정도이고 이 가운데 부동산담보대출이 70%에 달한다. 현재 농협은 금융기관 간 부동산담보대출 경쟁이 심해지면서 N사와 F사 등 두 곳의 모집법인을 내세워 경쟁에 뛰어든 상태. 모집법인은 농협의 대출상담을 대행해주고 대출상품을 판매하는 구실을 한다.

    지난해 두 모집법인에서 대행한 대출 규모는 연간 4조 원에 육박했고, 2009년에는 2조 원을 웃돌았다. 두 모집법인이 최대 5조 원의 대출을 대행한 해도 있다. 두 모집법인은 농협으로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셈이다. 문제는 농협이 이 두 모집법인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2월 발표한 ‘대출모집인 제도 모범규준’에서 대출모집인은 고객 등에게 금품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대출모집인은 각 금융기관과 계약을 체결한 모집법인에서 대출 영업을 하는 사람이다. 대출업무를 취급하는 금융기관은 금감원의 모범규준을 따라야 한다. 농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농협 측은 “일차적 관리감독 권한은 법인에 있다”면서 모집법인 측에 책임을 돌렸다. 개인고객부 홍태영 개인여신팀장은 “어떻게 농협이 대출모집인을 일일이 관리감독할 수 있겠는가. 모집법인이 모범규준에 따라 대출모집인을 잘 관리하도록 지도하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 감독서비스총괄국 이성원 팀장은 “모집법인은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금감원의 통제 대상이 아니다. 금융기관 스스로 모범규준에 맞게 모집법인을 잘 통제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감독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농협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농협의 태도나 방침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또 있다. 농협의 모집법인은 결격사유가 있음에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농협의 모집법인 N사와 F사 두 법인 대표 모두 2009년 12월 횡령 등의 혐의로 각각 집행유예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한 시중은행 준법감시실 관계자는 “일반 은행과 거래하는 모집법인 가운데 그런 경우가 있으면 당장 교체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 이 팀장도 이에 대해서는 “모집법인이 설령 금융기관은 아니더라도 대표가 법적 처벌을 받았다면 그만큼 위험 부담이 따른다. 정상적인 금융기관이라면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은 다른 모집법인으로 교체하지 않았다. 농협 홍 팀장은 오히려 “(모집법인 대표가) 고의로 횡령한 것이 아니라, 소득신고 과정에서 누락이 발생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모집법인 측을 두둔했다. 이와 관련해 N사 전직 고위간부 J씨의 설명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금품 상납 향응 제공 비일비재?

    “모집법인 관리감독 책임은 당연히 농협에 있다. 법인 대표가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면 법인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암암리에 관계가 유지돼온 것은 농협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또 농협 전체 대출의 상당 부분을 두 모집법인이 대행하는 점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세한 얘기는 곤란한데, 농협과 모집법인은 매우 깊이 결탁돼 있다.”

    J씨는 이어 “법무사나 사무장 등 등기설정을 대행하는 사람은 모집법인 팀장이나 간부에게 꼼짝 못한다. 건수에 따라 한 해에 많게는 수십억 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품 상납이나 향응 제공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한편 농협 측은 모집법인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농협의 한 실무책임자는 “2005년 모집법인 제도 시행 이후 모집법인을 교체한 금융기관이 없는 것으로 안다. 주로 신설 모집법인이 유착 의혹을 제기하는데, 신설 모집법인이 실적을 내려면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이런 위험 요소 때문에 쉽게 바꾸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일하다 보니 오히려 의혹을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대출 실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하고 있다면 관리감독을 더 강화하는 게 금융기관의 의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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