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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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초월 이무기 전설 SF 시장 짜릿한 습격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7-08-01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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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초월 이무기 전설 SF 시장 짜릿한 습격

    ‘용가리’ 실패 이후 ‘디 워’를 통해 재기를 다짐하는 심형래 감독.

    9월 미국에서 개봉하는 심형래(49) 감독의 ‘디 워’가 1700개 넘는 스크린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충무로는 술렁였다.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용가리’ 때처럼 망신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전부터 ‘디 워’가 어느 지역에 얼마에 팔렸다는 보도는 많았지만 그것은 ‘용가리’ 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당시 심형래는 신지식인 1호로 화려하게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극장 개봉 전 해외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용가리’는 작품이 공개되자 완성도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고, 심형래 감독은 조롱거리가 됐다.

    “개그맨으로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용가리’ 실패 이후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력했다. 이제 열심히 일한 우리 직원들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성공을 기다린다.”

    ‘디 워’의 국내 시사회가 끝난 뒤 박수가 쏟아졌다. 기자간담회에서 심형래 감독이 열변을 토할 때도 박수가 터져나왔다. ‘디 워’는 한국 공상과학(SF) 영화를 한 단계 발전시킨 작품이었고, 특히 국내 기술진이 만든 컴퓨터그래픽(CG)은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디 워’의 스태프들이 “제작비 대비로 따지면 ‘트랜스포머’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SF영화는 그 나라의 과학기술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구미호’(1994년)에서 고소영의 얼굴이 천년 묵은 여우로 변하는 모습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한국의 컴퓨터그래픽 기술력은 할리우드와 비교할 때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보다 멀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미단 공주 진희경이 한석규의 가슴패기를 통과하는 모습이 등장한 ‘은행나무 침대’(1996년)를 통해 비로소 한국 영화는 본격적으로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만에 우리는 ‘디 워’를 만났다. 할리우드 기술진의 도움 없이 한국 컴퓨터그래픽 기술진만으로 완성된 ‘디 워’는 이제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거리가 지구와 달 사이만큼 가까워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디 워’ 이후 대중은 심형래를 더는 개그맨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SF영화 한 단계 발전시킨 작품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 영화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디 워’를 영어로 제작했다. 우리가 만든 영화에 자신 있다면 외국시장에 10만 달러, 20만 달러 받고 팔 게 아니라 미국과 일본처럼 큰 시장에는 직접 배급하는 게 좋다. 지금은 힘이 미치지 못하지만 다음에는 우리가 직접 해외시장에 배급할 생각이다.”

    하지만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디 워’가 놀라운 것은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그래픽 팀을 제외하고 이 영화는 철저히 할리우드 기술진으로 제작됐다. 가장 중요한 촬영(휴버트 타자노브스키)과 편집(‘브로큰 애로’ ‘콘 에어’의 스티브 마르코비치, 팀 앨버슨)부터 음악(‘트랜스포머’의 스티븐 자브론스키), 음향효과(‘제5원소’의 마크 맨지니), 색 보정(‘다빈치 코드’ ‘스파이더맨’의 EFLIM)까지 할리우드 정상급 기술진이 참여했다. 특히 편집의 도움 없이 지금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미숙한 연출력을 감싸주는 편집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컷이 효과적으로 긴박감 있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 물론 그것 역시 감독이자 제작자인 심형래의 선택에 따른 것이기에 그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만약 ‘디 워’를 제임스 카메론이 만들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심형래가 만들었다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우뢰매’ 시절부터 사람들은 내 영화의 완성도를 50% 정도 깎고 들어간다. 그런 고정관념이 있다.”

    LA 도심 한복판에서 의문의 사고가 벌어진다. 땅이 거대하게 패고, 수많은 시체로 덮인 현장을 취재하던 방송기자 이든(제이슨 버 분)은 땅속에서 짐승의 비늘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골동품점에서 본 동양궤 속의 비늘과 당시 골동품상에게서 들은 신비한 이무기의 전설을 떠올린 이든. 그는 자신처럼 이무기의 신화에 얽혀 있는 여인 세라(아만다 브룩스 분)를 만나고, 두 사람은 500년 전 전설의 재현을 꿈꾸는 사악한 이무기 ‘부라퀴’ 무리에 맞서기 위해 나선다.

    “우리나라 전설을 그대로 쓰면 외국에서 먹히기 어렵다. 유럽 분위기를 낸 것은 서양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용 관련 신화는 많지만 이무기라는 콘텐츠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거기에 중점을 뒀다.”

    ‘디 워’는 볼거리에만 치중해 이야기를 놓친 ‘용가리’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탄탄하고 치밀하지는 않지만 보편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서사를 획득했다.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는 용의 신화와 한국의 이무기 설화가 합쳐져 만들어진 서사의 뼈대에 역동적인 이무기 캐릭터가 더해짐으로써 매력적인 영화가 탄생했다. ‘디 워’가 미국 전역에서 2000여 개 극장을 확보하고 와이드 릴리스 되는 게 우연한 행운은 아닌 것이다.

    미국 2000여 개 극장 확보 … ‘아리랑’ 엔딩 음악에 감동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디 워’의 시사회를 끝내고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어릴 때 할리우드에서 만든 ‘벤허’ ‘십계’를 보며 꿈을 키웠는데, 미국에서 내가 만든 영화를 1700개 넘는 개봉관을 통해 내보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찼다.”

    ‘디 워’의 마지막은 한국인 누구나 알고 있는 곡 ‘아리랑’으로 끝난다. 이어 괴수영화에 도전한 심형래 감독의 개인사적 흔적이 사진과 함께 펼쳐지면서 그가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 자막이 올라온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는 내용이다.

    “외국에서는 ‘아리랑’으로 끝난다. 외국 시사회에서는 특히 교포들이 아리랑을 듣고 눈물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최고로 여기고 한국 음악은 경시하는지 모르겠다. 폴모리아 악단이 경음악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그보다 웅장하게 만들어 영화에 삽입했다. 이무기의 애잔한 분위기와 아리랑이 잘 어울린다. 그리고 마지막 자막과 화면은 한국 상영에서만 나간다. 내 의지는 아니다.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해 넣는 게 좋겠다는 스태프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디 워’는 8월1일 한국 개봉 후 9월 미국 개봉을 거쳐 내년 1월에는 일본에서 개봉한다. 우스꽝스러운 미니어처나 조악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어린이용 괴수영화를 만들던 심형래 감독은 많은 실패를 통해 진화했고, 이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야심작 ‘디 워’를 만들었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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