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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유근이 아빠는 전쟁 중

“공부에 빠진 유근이 배울 곳이 없었다”

아버지 송수진 씨 “스승·학교 찾아 전국 헤매 … 획일적 교육 시스템이 영재 발목 잡아”

“공부에 빠진 유근이 배울 곳이 없었다”

“공부에 빠진 유근이 배울 곳이 없었다”

신동으로 이름난 송유근 군(오른쪽)과 아버지 송수진 씨.

1997년 11월생.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만 7살이지만 우리 나이론 9살인 송유근 군은 ‘국가대표 천재소년’이다. 유근이가 처음 매스컴에 등장한 것은 2004년 2월. “초등학교 입학 대신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였다. 소송에는 패했으나 같은 해 8월 최연소 정보처리기능사 합격, 11월 최연소 초등학교 6학년 입학, 2005년 1월 최연소 정보기기운용기능사 합격으로 연이어 화제를 몰고 왔다. 2월 교육청으로부터 초등학교 입학이 취소됐으나 도전은 계속됐다. 4월5일 최연소 고입 검정고시 합격, 4월18일 초등학교 입학취소 무효소송 승소로 졸업 확정, 9월 다시 최연소로 대입 검정고시 합격, 이어 인하대 수시모집 응시까지 결정되면서 유근이는 마침내 국민적 관심 인물로 떠올랐다.

유근이의 천재성과 튀는 행보 뒤에는 아버지 송수진(47·경기 구리시) 씨가 있다. 송 씨는 ‘엉덩이 무거운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라곤 없는’ 늦둥이 외아들을 영재로 키워낸 주인공이자, 아들의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공교육이란 거대 시스템과 싸워온 역전의 용사다.

실제로 만나본 송 씨는 분명 별난 아빠였다. 그러나 그 별남이란 ‘내 아이만을 위한 바짓바람’과는 거리가 있는, 열혈 교육운동가에 가까웠다. 그는 “유근이만 편하고 유근이만 잘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이 문제 됐을 때 교육 당국으로부터 “소송을 취하하면 유근이만 특별히 봐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제2·제3의 유근이를 위해 판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유근이의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송씨는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모든 아이는 영재로 태어난다. 잘못된 학교와 교육 시스템, 거기 발목 잡혀 중심을 잃은 부모들이 그 싹을 짓밟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본(本)’이 필요하다. 바르게 성장한 유근이를 통해 교육이야말로 뿌린 만큼 거두는 일임을, 누구나 제 몸에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유근이는 어느새 우리나라 영재 혹은 천재의 대명사가 됐다.

“현존하는 대표 과학자는 황우석이요, 미래 대표자는 송유근이라는 얘기들을 한다. 만일 황 교수가 실패하면 사람들은 ‘수백억 지원해도 소용없네’ 할 것이고, 유근이가 망하면 ‘영재 밀어줘봤자 소용없네’ 할 것이다. 10년, 20년 뒤 ‘송유근 지금 뭐 하냐’고 할 때 답이 없으면 우리교육 또한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 되고 만다. 어느 순간 유근이의 미래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의 일만은 아니란 생각을 갖게 됐다. 아이 진로 문제를 풀면서 편법보다 소송이란 정공법을 택하고 언론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 같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공부에 빠진 유근이 배울 곳이 없었다”
-2004년 가을 유근이 교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했다. 지금 상태는 어떤가.

“휴직한 지 2년이 다 돼가니 이젠 휴직이 아니라 퇴직이다(웃음). 억대 연봉을 받던 사람이 아파트 관리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휴직은 나로선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내 나이가 쉰이 다 돼가는데 30년 가까이 벌어 자식을 위해 1, 2년도 쓸 수 없다면 문제 아닌가. 무엇보다 유근이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아버지였다. 개인적으로는 30여년 직장생활보다 ‘유근이 아빠’로 전직한 최근 2년 생활이 더 값지고 사회에 공헌한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왜 소송을 하면서까지 초등학교를 건너뛰려 했나. 말 그대로 의무교육 아닌가.

“초등학교를 다닌 지 3일째 되는 날 유근이가 학교 가기 싫다며 스쿨버스 앞에서 돌아섰다. 난 속으로 ‘역시 내 아들이다’ 했다. 학교에 그리 단박에 적응한다면 오히려 문제 아닌가. 유근이는 ‘한 과목을 시작했으면 계속 그걸 하면 좋겠는데 40분 수업 뒤엔 또 다른 과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싫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그렇게 획일적이다. 성격, 적성 등은 아이마다 다르게 마련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 그 많은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어쩌겠단 말인가. 아이에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3개월에 불과했지만 유근이의 초등학교 생활은 어땠나.

“초등학교 생활은 유근이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같은 반의 형, 누나들은 물론 또래인 1학년생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성적이 형편없었다. 등교 며칠 후 시험을 봤는데 수학이 12점 나왔다. 학교 측은 ‘수학 영재가 웬일이냐’며 당황해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유근이는 ‘6학년 과정’에 맞춘 예습을 전혀 하지 않았다. 또 의미 없는 숫자들을 나열한 채 무조건 답만 찾는 것은 당시 유근이에겐 익숙한 방식이 아니었다. 물리학에선 모든 계산에 이유가 있다. 2 곱하기 몇 분의 몇, 이런 문제를 보면 유근이는 왜 두 숫자를 곱해야 할까부터 생각한다. 다음에는 ‘이 계산법을 그래프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한다. 유근이는 답 찾는 능력이 뛰어난 애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가진 아이다. 수학·물리학 원서를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책들에는 ‘미적분 푸는 법’이 아니라 ‘왜 미적분이 탄생했는지’가 쓰여 있다.”

-유근이의 학습과 관련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애가 못 견디게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도무지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스승을 찾아주려 참 많은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고, 정말 딱 5분만 시간을 내준 분도 있었다. 사실 공부만 맘껏 할 수 있다면 대학이야 가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피아노를 치고 싶어하는 아이는 서울대에 입학하지 않아도 서울대 교수에게 레슨 받을 수 있지 않나. 하지만 과학은 그게 안 된다. 교수 강의 하나 듣자고 그 무식한 (고등학교) 공부를 해 기어코 대학에 가야 하나. 같은 물리학이라도 분야에 따라 여러 대학에 흩어져 있는 교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생각엔 이공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정원의 10% 정도는 청강생을 받거나, 물리학회 차원에서 대학 간 학점을 교류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공부에 빠진 유근이 배울 곳이 없었다”

공부할 때를 제외하면 유근이는 영락없는 아홉 살배기다.

-예체능 영재와 과학 영재는 대우도 다르고 가는 길도 많이 다르다.

“가수 보아와 바둑기사 이창호는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박주영은 17세에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일찌감치 해당 분야의 영재성을 발견해 고수들에게서 보석 같은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과학엔 그런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졸업해봤자 취업도 잘 안 되는 것이 기초과학 분야다. 한데 교육당국은 물리니 화학이니 하는 과목을 없애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통합해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야 어떻게 물리 맛을 볼 수 있나. 맛을 봐야 좋은지 싫은지 알 것 아닌가. 피아노만 해도 10년, 12년 공을 들여야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재능을 나타낸 아이들이 차근차근 교육받아 갈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학마다 영재교육원 개설 붐이 인 듯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영재교육원에 오는 아이들이 정말 영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명 학원가에 가보면 ‘영재 지망생’들을 위한 학원이 적지 않다. 그렇게 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영재교육원이 아니잖나. 유명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장으로 계신 분이 말하길, 거기엔 이제껏 서울의 강남·강동·서초·송파·노원구 외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이 입학한 예가 한 번도 없다더라.

교수들은 성적이 아닌 가능성 위주로 (아이들을) 뽑고 싶지만, 탈락한 아이들의 부모가 ‘근거를 대라’며 덤벼들까 무서워 실행하지 못한단다. 정규학교로 인정받고 있는 몇몇 영재교육기관이나 과학고, 외국어고 등도 결국은 특정 분야의 영재성이 아닌 전 과목 성적 기준으로 학생들을 뽑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우리도 미국처럼 영재교육 관련 업무를 교육학 전공자가 독점하는 것이 아닌, 진짜 각 분야 전문가가 나서 아이의 영재성을 판별하고 프로그램을 짜고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유근이가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여러 대학에서 ‘러브콜’이 온 걸로 알고 있다. 그중 인하대에 지원키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명문대니 뭐니 하는 이름값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유근이가 안정된 환경에서 원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가 가장 중요했다. 20여 군데 대학을 돌아보며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인하대에 지원키로 했다. 인하대에는 지난해 여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유근이를 지도해주신 박제남(수학통계학부) 교수가 계신다. 유근이에게는 아저씨처럼 편안한 분이다. 또 인하대 측은 등록금 면제, 게스트하우스 제공뿐 아니라 유근이 수준에 맞는 예체능 교육 및 봉사활동에 대한 계획까지 짜 제시했다. 유근이만을 위한 별도의 교과과정도 마련할 계획이라 한다. 무엇보다 홍승용 인하대 총장께서 유근이가 좋아하는 지우개를 예쁘게 포장해 선물하는 등 아이에게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는 점에 감동했다.”

-유근이가 장래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됐으면 하나.

“무엇이건 본인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일단은 물리학자를 지망하니 그 길로 가야겠지. 하지만 대학교수 할 거면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 내 욕심대로라면 가르치는 물리학이 아니라 새 길을 여는 물리학을 하는 이가 됐으면 한다. 물리학계 석학들의 최고 논문은 대개 스무 살 전후에 쓰인다. 그걸로 마흔이 넘어 노벨물리학상을 받는 거다. 왜? 첫째로는 20년 후에나 검증이 가능한 획기적인 논문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나이를 더 먹어 어떤 ‘체제’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파격적 발상이나 무모한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천재로 이름났던 소년들처럼 유근이의 영재성 또한 곧 사라질 것’이란 냉소적 시각도 있다.

“그럴까. 유근이는 국가 시스템에 편입되는 대신, 어미 아비와 아이가 똘똘 뭉쳐 죽기 살기로 ‘자기만의 길’을 뚫어왔다. 이순신 장군처럼 싸워온 것이다. 노량해전이 이순신이란 개인이 아닌 국가 시스템에 의해 쟁취한 승리라면 우리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젠 정말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

“앞으로 1, 2년 정도는 더 유근이 곁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이후에는 작은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말이다.”

주간동아 2005.10.04 504호 (p18~20)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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