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사진)에서 여주인공 블랑쉬는 여동생이 사는 뉴올리언스의 좁고 허름한 아파트를 찾아온다. 명문 가문 출신이라는 허황된 자부심을 과시하는 듯한 그녀의 사치스런 옷차림은 가난하고 지저분한 동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 어울리지 않는 장면은 몰락한 귀족처럼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면 속으로 도망치려는 블랑쉬의 위태로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 작품의 무대가 뉴올리언스로 설정된 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프랑스 오를레앙 공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18세기 프랑스 양식 건물들이 들어서 매우 귀족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뒷골목 변두리 인생들의 얘기에 앵글을 맞춤으로써 이 화려한 도시의 또 다른 풍경, 그리고 몽상과 현실의 불안한 동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블랑쉬의 내면을 그려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맞아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가 드러낸 두 얼굴에서 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블랑쉬가 타고 내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다니고 있는, 1년에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남국의 도시는 그러나 태풍과 빗물에 그 깊은 상처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재건비를 쏟아부어 재건할 가치가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뉴올리언스는 도시 자체가 생존의 기로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21세기에 세계 최강 선진국의 거대 도시가 자연재해 앞에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도시 재건 포기 결정이 내려졌다면 뉴올리언스는 인류 역사에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도시 소멸의 사례가 됐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도시의 소멸은 고대 로마제국의 폼페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속 소돔의 멸망을 연상케 하는 폼페이의 멸망은 추억의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 생생히 그려져 있다. 1834년 영국의 에드워드 리턴이 쓴 작품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드라마틱했던 폼페이 멸망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폼페이 멸망이 특히 극적이었던 것은 이 도시가 로마제국 제1의 향락 도시였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대표적인 휴양지였다. 그러나 79년 베수비오 산의 비탈면에 위치한 이 도시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화산 돌과 뜨거운 독가스, 불덩어리의 세례를 받고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찬란했던 만큼 끔찍한 ‘죽음’이었다.
이 도시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00년이나 흐른 뒤였다. 폼페이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지며 모습을 드러낸 폼페이는 고대의 풍속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화석에는 상인이 돈을 세는 모습이나 귀족들이 화려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 공공목욕탕에서 환락을 즐기는 순간 등이 마치 정지 화면처럼 ‘보존’돼 있어 이 도시의 멸망이 얼마나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역사상 도시의 흥망이 폼페이처럼 ‘하룻밤 사이에’ 벼락처럼 찾아오지는 않는다. 대개 구조적인 요인들이 작용해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도시의 발달사를 살펴보면 각각 다른 유형의 도시들이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오랜 시간을 두고 성쇠를 겪는다.
그러나 역사를 100년이나 1000년 단위로 보노라면 그 유전은 마치 화산 폭발이라도 당한 것처럼 변화가 어지러울 정도다.
뉴올리언스만 해도 그렇다.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10대 도시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도시지만 지금은 순위권 밖으로 한참 밀려나 있다.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당시 10대 도시였던 볼티모어, 신시내티, 세인트루이스, 피츠버그, 버펄로, 클리블랜드 등이 탈락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중소 도시였던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휴스턴, 댈러스 등이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뉴올리언스의 발전과 쇠퇴는 해상 교통이 도시 발전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됐던 역사적 시기의 특성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물이 풍부하느냐와 토지의 비옥도가 도시의 흥망을 좌우했다면 이후 교역로상에 위치한 도시들의 발전기를 거쳐, 항구도시·항공운송로와 가까운 도시가 발전하는 식이었다.
로큰롤의 황제 앨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 멤피스의 도시명을 따온 도시가 바로 기원전 3000년경에 나일강 가에 세워진 세계 최고(最古)의 제국 도시였다. 이어 우르, 바빌론, 로마, 바그다드 등이 최대 도시의 지위를 차례로 이어받았다.
그렇다면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뉴욕이든 도쿄든 100년 뒤, 1000년 뒤를 장담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바로 이 점에 작품의 무대가 뉴올리언스로 설정된 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프랑스 오를레앙 공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18세기 프랑스 양식 건물들이 들어서 매우 귀족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뒷골목 변두리 인생들의 얘기에 앵글을 맞춤으로써 이 화려한 도시의 또 다른 풍경, 그리고 몽상과 현실의 불안한 동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블랑쉬의 내면을 그려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맞아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가 드러낸 두 얼굴에서 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블랑쉬가 타고 내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다니고 있는, 1년에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남국의 도시는 그러나 태풍과 빗물에 그 깊은 상처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재건비를 쏟아부어 재건할 가치가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뉴올리언스는 도시 자체가 생존의 기로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21세기에 세계 최강 선진국의 거대 도시가 자연재해 앞에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도시 재건 포기 결정이 내려졌다면 뉴올리언스는 인류 역사에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도시 소멸의 사례가 됐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도시의 소멸은 고대 로마제국의 폼페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속 소돔의 멸망을 연상케 하는 폼페이의 멸망은 추억의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 생생히 그려져 있다. 1834년 영국의 에드워드 리턴이 쓴 작품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드라마틱했던 폼페이 멸망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폼페이 멸망이 특히 극적이었던 것은 이 도시가 로마제국 제1의 향락 도시였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대표적인 휴양지였다. 그러나 79년 베수비오 산의 비탈면에 위치한 이 도시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화산 돌과 뜨거운 독가스, 불덩어리의 세례를 받고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찬란했던 만큼 끔찍한 ‘죽음’이었다.
이 도시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00년이나 흐른 뒤였다. 폼페이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지며 모습을 드러낸 폼페이는 고대의 풍속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화석에는 상인이 돈을 세는 모습이나 귀족들이 화려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 공공목욕탕에서 환락을 즐기는 순간 등이 마치 정지 화면처럼 ‘보존’돼 있어 이 도시의 멸망이 얼마나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역사상 도시의 흥망이 폼페이처럼 ‘하룻밤 사이에’ 벼락처럼 찾아오지는 않는다. 대개 구조적인 요인들이 작용해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도시의 발달사를 살펴보면 각각 다른 유형의 도시들이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오랜 시간을 두고 성쇠를 겪는다.
그러나 역사를 100년이나 1000년 단위로 보노라면 그 유전은 마치 화산 폭발이라도 당한 것처럼 변화가 어지러울 정도다.
뉴올리언스만 해도 그렇다.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10대 도시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도시지만 지금은 순위권 밖으로 한참 밀려나 있다.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당시 10대 도시였던 볼티모어, 신시내티, 세인트루이스, 피츠버그, 버펄로, 클리블랜드 등이 탈락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중소 도시였던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휴스턴, 댈러스 등이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뉴올리언스의 발전과 쇠퇴는 해상 교통이 도시 발전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됐던 역사적 시기의 특성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물이 풍부하느냐와 토지의 비옥도가 도시의 흥망을 좌우했다면 이후 교역로상에 위치한 도시들의 발전기를 거쳐, 항구도시·항공운송로와 가까운 도시가 발전하는 식이었다.
로큰롤의 황제 앨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 멤피스의 도시명을 따온 도시가 바로 기원전 3000년경에 나일강 가에 세워진 세계 최고(最古)의 제국 도시였다. 이어 우르, 바빌론, 로마, 바그다드 등이 최대 도시의 지위를 차례로 이어받았다.
그렇다면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뉴욕이든 도쿄든 100년 뒤, 1000년 뒤를 장담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