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의 무대가 된 조어대 방비원.
조어대라는 이름은 800여년 전 금나라의 장종(章宗)황제가 낚시를 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청나라 전성기를 통치한 건륭(乾隆)황제가 조어대라는 친필을 남겼고, 청나라 말의 여걸 서태후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관한 곳이 되었다.
베이징시 하이덴(海澱)구에 자리 잡은 조어대는 총면적이 약 1.2km2. 조어대 호수를 끼고 2층짜리 건물 20동이 배치돼 있다. 잘 가꿔진 정원과 도로, 산책로가 곳곳에 펼쳐져 있어 그윽한 분위기가 감돈다. 시내에 있지만 외부와 완벽히 차단돼 있어 적막감을 느낄 정도로 조용하다.
1774년부터 정식으로 황제의 휴가용 궁전으로 사용돼온 조어대는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사회주의권 국가 원수들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머무는 숙소로 사용됐다. 그래서 공식명칭이 ‘조어대 국빈관(國賓館)’이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서방측 국빈들도 묵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각국의 고위층 인사는 물론 회담장이나 포럼 행사장 등으로 쓰임새가 다양해졌다.
조어대의 건물 가운데 우리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곳이 6자회담이 열린 제17호동 방비원(芳菲苑, 팡페이위안)이다. 방비원은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뤄진 현장이다. 방비원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1500m2 규모의 천인청(千人廳, 첸런팅)인데, 이곳이 바로 6자회담 대회의장으로 사용된 곳이다. 조어대 호수에 접한 300m2 규모의 사계청(四季廳)은 회담 대표들이 차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 곳. 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5개의 방이 있어 중국을 제외한 5개국 대표단이 회담 준비실로 활용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앉아서도 대화, 서서도 대화, 대회의실에서도 대화,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대화를 한다”고 했을 만큼 대화할 장소가 풍부한 곳이 바로 방비원이다.
18호동은 1991년 10월5일 덩샤오핑(鄧小平)과 김일성이 마지막 만남을 가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공직에서 물러나 공식 활동을 자제하고 있던 덩은 딸 덩룽(鄧榕)과 통역만 대동한 채 1시간가량 김일성을 만나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설명했는데, 이 사실은 훗날 덩룽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도 18호동에서 묵은 바 있다.
외양이 화려한 조어대의 복도에는 도자기, 서화 작품 등 국보급 골동품이 즐비하다. 가구들도 호화롭기 짝이 없다. 국빈급 손님들이 머무는 만큼 요리 솜씨는 최고급 호텔을 능가한다. 이곳에서는 중국의 4대 요리(광둥, 베이징, 상하이, 쓰촨)와 최고급 술이 제공된다.
조어대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발음이 비슷한 조어도(釣魚島, 댜오위다오)와 혼동하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조어도는 중국과 일본 간의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동중국해상의 섬으로, 일본 이름은 센카쿠(尖閣) 열도.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된 6.3km2의 조어도 부근 해역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양국의 신경전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호숫가의 낚시터 조어대가 외교라는 대어를 낚는 곳이라면, 바다낚시터 조어도는 에너지자원이라는 대어를 낚아올릴 무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