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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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은 실버타운, 무늬만 호텔”

태영 백현유원지 사업계획서 단독 입수… 경쟁업체들 “법적 요건 안 맞는 태영 선정 특혜”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2-10-31 1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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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살은 실버타운, 무늬만 호텔”

    삼성생명이 운영하는 경기 용인시 기흥읍의 고급 실버타운 노블카운티.

    6000억원 이상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유원지 개발 사업 우선협상자가 선정 1주일 만에 뒤바뀌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재심 끝에 9월25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태영 컨소시엄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태영측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포함된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Retirement Community)’가 도시계획법상 유원지에 들어설 수 없는 노인복지시설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주간동아’가 입수한 태영의 사업계획서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노인복지시설로 결론짓고 있어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성남시는 사업자 모집 공고 당시 법규에 어긋나는 시설 계획을 제출할 경우 협상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태영이 협상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없지않다.

    경쟁업체들은 그동안 “성남시가 노인복지시설을 콘도 개념으로 분류해 태영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는 특혜를 줬다”고 주장해왔다. 또 태영 쪽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 1차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일 직전 이대엽 성남시장 집무실로 찾아간 것으로 확인돼 ‘외압’ 의혹까지 불거졌다.

    전문가들도 노인복지시설로 결론

    “속살은 실버타운, 무늬만 호텔”

    ㈜태영 컨소시엄의 사업계획서 중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가 노인복지시설임을 보여주는 부분.

    백현유원지 사업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일대 6만2650평의 대지에 특급호텔을 갖춘 종합레저단지를 조성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6개 법인 및 컨소시엄이 사업계획서를 냈다. 태영은 백현유원지에 특급호텔과 테마파크, 스포츠센터,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중 문제가 되고 있는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는 너싱룸(nursing room), 요양소 등 유료 양로시설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시설들을 포함하고 있고,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란 개념이 은퇴한 노인들을 위한 시설로 통용되고 있어 경쟁업체들은 심사 전부터 노인복지시설이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태영은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에 대해 “노인우대시설은 분명하나 노인복지시설은 아니다,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한편 성남시는 현재 이것이 노인복지시설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한 상태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태영의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는 지하 2층과 지상 17층, 연면적 1만2100평 규모로, 목욕실·황토찜질방 등 일반적인 시설 이외에 너싱룸, 요양실 등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계획서 곳곳에서 ‘노령화시대를 대비한 노인건강복지시설’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신체의 건강 정도에 따라 액티브동, 어시스트동, 케어동으로 나뉘어 단계별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은 장기 거주 노인을 위한 핵심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유료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속살은 실버타운, 무늬만 호텔”

    90년대 말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실버타운. 업계 관계자들은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가 기존의 실버타운 시설과 다른 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초라는 단계별 프로그램은 ‘은퇴 후 건강하며 일상적인 활동과 부분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그룹은 액티브동을 이용하고, 자체적인 활동은 가능하나 경제활동은 하지 않는 잠재적인 노인병 환자 그룹은 서비스 의존도를 높인 어시스트동에서 제2단계 보호를 받으며, 노인병 증상이 악화될 경우 제3단계인 케어동에서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풀서비스를 받는 시스템’을 서비스하겠다는 뜻이다.

    국내 대표적인 유료 노인휴양시설인 서울시니어스타워의 이계현 본부장은 바로 이런 대목이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가 노인복지시설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은퇴 후 입주한 노인이 건강 상태의 변화에 따라 점차적으로 주거동을 바꿔가게 되는데 이것은 어느 면으로 보나 장기 거주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임을 명백히 드러내는 부분”이라는 것.

    삼성생명이 운영하는 실버타운인 노블카운티의 시설과 비교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노블카운티의 36평형에서 72평형대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주거동은 일상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 생활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ALU(Assisted Living Unit)가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중풍, 치매 등 만성 질환을 얻을 경우에는 선진형 너싱홈으로 이전하여 24시간 전문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건강 상태에 따라 단계를 달리하는 태영의 프로그램과 기존의 ‘실버타운’ 운영 시스템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노인복지시설 서울시니어스타워 역시 이미 건강한 노인과 도움이 필요한 노인, 만성 질환자를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태영은 사업계획서에서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는 국내에서는 선례가 없는 은퇴한 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라고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용어만 외래어를 가져왔을 뿐 시설면에서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지적한다.

    호텔 투숙객에 2억원대 보증금?

    ㈜태영의 사업계획서에 포함된 사업타당성 부분도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가 노인복지시설임을 말해주고 있다. 호텔은 객실 수입과 식음료 판매, 컨벤션의 연회 수입으로 운영 수입을 산출한 반면,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의 매출 항목은 월 생활비와 보증금 수입으로 채워져 있다.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380개 일반실에 대해 보증금 2억2000만원에 월 생활비 350만원을 받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고, 150개 너싱홈은 보증금 6500만원과 월 이용료 150만원을 받을 계획이다.

    “속살은 실버타운, 무늬만 호텔”


    ㈜태영 관계자는 “2~3개월 장기투숙 고객에게 투숙료를 선금 형식으로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해명하지만 2억원 이상의 고액 보증금에 대해서는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계현 본부장은 “고액의 보증금은 분양금 내지 장기 거주자에 대한 보증금으로 해석할 만한 액수”라며 “상각 기간을 6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 자체부터 적어도 6년 거주를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너싱홈의 보증금 6500만원도 17~18개월 정도의 장기 거주자에 해당하는 액수라고 해석했다. 또한 태영측의 주장대로 모든 연령층을 위한 시설이라면 굳이 보증금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이본부장의 의견이다.

    사업제안서에서는 ‘실버커뮤니티’ 또는 ‘은퇴한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는데 이본부장에 따르면 ‘실버커뮤니티’는 통상 60세 이상의 노인을 지칭하는 것이고, 은퇴 연령이 대개 60세 전후인 만큼 어느 모로 보나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는 노인복지시설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태영측은 여전히 법적인 근거를 내놓으면서 노인복지시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태영 이백래 이사는 성남시의회 특별조사위원회에서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를 개발하는 데는 노인복지시설에 필요한 복지법인 설립 계획이 없다. 우리 컨소시엄은 노인복지법이 아닌 관광진흥법에 의거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결코 노인복지시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인우대시설을 갖춘 호텔 개념으로 운영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태영의 주장대로 노인복지법을 따르지 않고, 관광진흥법에 따른다 해도 허가를 받기가 수월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태영측 주장대로 관광진흥법에 따른 호텔로 허가를 받으려 할 경우, 노인우대시설을 호텔 부대시설로 간주하고, 호텔로 허가를 내줄 것인지에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호텔보다 노인복지시설로서의 가치가 부각되는데, 어떻게 호텔 허가를 내줄 수 있겠느냐는 것. 태영은 가족 단위로 2~3개월에서 1년간 체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호텔은 그러한 장기 투숙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도시계획위원회 판정 예의 주시

    태영은 또 입소자의 연령층을 들어 노인복지시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흔히 ‘실버타운’으로 통용되는 유료 노인복지시설은 시설에 따라 60세,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용시설이지만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는 중·장년층도 입소할 수 있도록 해 나이 제한을 없앴다는 것.

    이에 대해 건축행정법 전문가인 김종보 교수(중앙대 법학과)는 “이 사안에서 노인복지시설에 해당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노인복지법에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법 형식보다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태영측의 사업계획서를 살펴본 김교수는 “그 실질이 노인복지시설에 가까운 것이므로 명칭이나 적용되는 법령보다는 실질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가령 행정청이 아파트 건설을 승인하면서 단지 내에 ‘유치원이 들어설 수 없다’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그 규제를 피하기 위해 유치원과 명칭만 다를 뿐 목적은 동일한 영유아시설(놀이방 등)을 운영하는 것도 금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 김교수는 이어 “태영이 성남시에서 불가 원칙을 내세운 노인복지시설을 계획하면서 적용법을 달리해 제3의 명칭으로 이를 설치한다고 해도 이를 실질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태영의 리타이어먼트 커뮤니티는 현재 국내에 보급된 유료 노인복지시설 형태를 고스란히 따르면서 외래어를 빌려와 ‘신개념’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경쟁업체 관계자들은 성남시 도시계획위원회의 판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태영도 심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나 업계 관계자들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이 대부분 건축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어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충분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법적으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재심을 통해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잃은 군인공제회측은 10월23일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처분취소청구소송과 성남시와 태영의 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절차속행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등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 한동안 백현유원지 사업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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