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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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난 국제사회의 총리”

‘테러와의 전쟁’ 튀는 연설과 행동 … 인기 없는 국내정책 외교로 만회하려는 속셈?

  • < 안병억/ 런던 통신원 > anpye@hotmail.com

    입력2004-11-18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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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미국인입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미 뉴욕 테러사건 직후 한 연설)

    “영국과 미국의 공격은 단순히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부족이 참여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번 공격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시작된 후 긴급 소집된 의회에서 한 블레어 총리의 연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뉴욕 테러참사 이후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어떤 때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보다 더 먼저 테러리즘을 배격하는 자유세계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의 정당성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또 블레어 총리는 단순히 연설에 그치지 않고 오만과 이집트 등 중동권을 순방하며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동맹을 굳건하게 하는 데도 발벗고 나섰다.

    영국 총리의 이러한 행동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영국의 전통적인 외교노선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연설과 행동반경 등으로 볼 때 너무 ‘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블레어 총리는 왜 이처럼 ‘설치는’ 것일까? 지난 6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당 당수로는 최초로 2기 연속 집권하는 신기록도 수립했는데 말이다. 블레어 총리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그의 정책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6월 총선은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전체 678석의 의석 가운데 노동당이 413석, 보수당이 166석, 자유민주당 (Liberal Democrats)이 52석을 각각 얻었다. 나머지 의석은 스코틀랜드민족당 등 소수정당이 점유하고 있다. 노동당이 의회 의석 중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압승의 이유는 엉뚱한 데 있다. 1997년 집권한 블레어 총리가 각종 정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라기보다 야당인 보수당이 교육과 의료 등 주요한 복지정책에서 이렇다 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영국의 유로화 가입을 반대하거나, 영국에 난민이 너무 많이 몰려온다며 “영국은 외국이 아니다”는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등 유권자의 관심과는 동떨어진 공약을 제시해 참패의 원인을 스스로 제공했다.

    의료보험정책은 영국인의 불만을 가장 많이 사고 있는 복지정책 중 하나다. 수술 한 번 받는데 대기기간이 평균 4~5개월. 각종 방안을 짜내봤지만 묘안이 없다. 올해 말부터 영국 환자들은 수술을 받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병원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이른바 ‘환자 수출’이다.

    교육도 노동당 내각의 골칫거리다. 박봉에 시달리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이직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교사들의 임금 인상 요구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민영화한 철도운영업체 레일트랙이 부도 처리되자 이의 처리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계속되면서 스티븐 바이어스 교통부 장관이 야당으로부터 사임압력을 받기에 이르렀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처럼 국내 복지정책 등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일관해 ‘거짓말쟁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일부에서는 총선 승리 직후 블레어 총리가 집권 2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총리직을 물려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물론 다우닝가와 재무장관측은 이를 즉각 부인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수세에 몰린 블레어 총리가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을 인기 만회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우선 대의명분이 뚜렷하다. 6000명 이상 사망자가 난 뉴욕 테러참사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다. 또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과거사 때문에 군사력 사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독일과 달리 영국은 이에 적극적이다.

    영국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외교에서 경제적 실리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위신도 아주 중요시한다. 과거 세계의 3분의 1을 식민 통치했고 이후 옛 식민지와 영연방을 형성해 광범위한 국가간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는 점, 영어의 본고장이라는 점, 그리고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등 때문에 국제사회는 흔히 영국을 가리켜 “체중 이상의 펀치를 날린다”고 평가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야당인 보수당과 자유민주당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공격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정치엘리트들이 전통적인 외교노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당 일부 의원들은 한술 더 떠 이 기회에 이라크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언론도 이번 공격에 드는 비용 등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적 비용을 차치하고라도 과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이 미국과 영국의 의도대로 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기사에서 블레어 총리의 외교정책을 “`지나친 모험”이라고 평가했다.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구성한다는 미국과 영국의 목표가 쉽지만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도 이번 공격을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에 대해 “백지수표를 줘서는 안 된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블레어 총리의 행보에 대해 일부에서는 영국이 미국보다 더 나서는 인상을 심어줘 테러에 심각하게 노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슬람 교도 중에서 최초로 영국 의원에 당선된 모하메드 사와르 의원은 “이번 보복공격으로 미국의 ‘예스맨’이 된 영국에 대한 테러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영국 경찰과 공안당국은 뉴욕 테러참사 이후 공항과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 이번 공격은 겨우 진정된 영국 내 이슬람 교도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3월 버밍엄과 맨체스터 등지에서 이슬람 청년들과 영국 청년들간의 충돌이 발생해 차를 불태우고 가게를 파괴하는 등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무부가 나서서 겨우 사태를 진정시켰지만 200만명에 이르는 영국 내 이슬람 교도들은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해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진한 국내 정책에 대한 비판을 만회하기 위해 과감한 외교정책이라는 모험을 선택한 토니 블레어 총리. 그의 ‘승부수’가 성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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