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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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엽기 살인 … 같은 하늘 살 떨린다

20여명 묻지마 살해 유영철 행각 ‘경악과 충격’ … 불특정 다수 향한 맹목적 증오 “인간이 이럴 수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7-22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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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대의 엽기 살인 … 같은 하늘 살 떨린다
    살인의 흔적이나 냄새는 좀처럼 느낄 수 없다. 유영철씨(34)의 원룸(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은 잔혹한 연쇄살인범의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갈했다. 책꽂이에 정성스레 정리된 ‘여성잡지’와 직접 그린 듯한 ‘누드 스케치’가 집주인의 편집광적 취미를 짐작케 할 뿐.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연쇄살인은 자신의 방처럼 치밀하면서도 편집광적으로 저질러졌다.

    7월18일 서대문구 봉원사 주변 야산. 경찰이 흙덩어리를 걷어내자 여자 골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취를 맡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쓴 경찰 현장검증팀은 채 썩지 않은 시신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패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아까시나무 숲에서 파낸 마지막 시체까지 3군데서 모두 10구의 시신이 발굴됐다. 각각 15~18토막으로 정교하게 잘린 시신은 현장검증에 앞서 ‘희대의 살인범’이 진술한 그대로였다.

    유씨가 출장마사지사들을 끔찍하게 살해한 곳은 앞서의 정갈한 원룸형 오피스텔. 유씨의 이웃들은 “기계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했으나 누구도 살인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화장실 천장에 남은 흐릿한 핏자국이 기계소리의 정체와 잔혹했던 현장을 짐작케 한다.

    그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 ‘공공의 적’을 자주 돌려봤던 듯하다. 서랍에 줄을 맞추어 정리된 10여장의 DVD 가운데 유독 케이스가 닳아 보였다.

    유씨는 경찰조사에서 “IQ가 140이 넘는다”고 떠벌렸다. 똑똑하고 말끔하며 냄새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공공의 적’의 살인범 ‘조규환(이성재 분)’이 오버랩된다. DNA 감식까지 염두에 두고 살인을 저지른 ‘계획 살인범’의 행태 역시 잡범의 그것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유씨는 “초기 현장조사를 좀더 철저히 했다면 나를 금방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경찰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DNA 감식까지 염두에 둔 치밀한 계획 살인

    살해한 시신이 조각난 곳은 자신이 음식을 먹고, 잠을 잔 원룸의 욕실. 그는 시신을 톱과 칼로 썰었다. 처음엔 톱으로, 나중엔 솜씨가 늘어 칼만으로도 잘라내기 쉬운 관절 부위를 정확히 겨냥했다. 6월 중순 살해된 출장마사지사 김모씨(26)는 두 번 죽어야 했다. 살인자의 광기에 쓰러진 것도 잠시, 그의 몸은 다시 수난을 당했다. 증거를 은닉하려는 살인범의 집착에 피해자의 손가락 끝은 칼로 예리하게 벗겨졌고, 잘린 시신 토막들은 10여개로 나뉘어 미리 준비한 검은색 비닐봉지 5~10개로 단단히 포장됐다.

    희대의 엽기 살인 … 같은 하늘 살 떨린다

    유영철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이 토막 사체를 발굴하고 있다.

    포장을 마치고 유씨는 택시를 타고 유유히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도 유씨는 “냄새가 조금 나지요”라며 태연했다. 집을 오가기를 8~9회. 집안에 남은 시신이 없는 것을 확인한 유씨는 혹시라도 자신의 지문이 남아 있을 것을 염려해 챙겨온 비닐봉지를 모두 버린다. 이후 출장마사지사를 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출장마사지사를 불러낸 뒤 위조한 경찰관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윤락 단속을 나왔는데 따라오라”며 원룸으로 가 둔기로 내리치면 그만이었다. 용의주도한 범죄는 경찰에 체포되기 이틀 전인 7월13일까지 이어진다.

    살인은 살인을 낳는다. 처음 살인을 저지를 때는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횟수가 늘고 수법이 잔인해질수록 자기 합리화가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연쇄살인범들은 살인의 객체가 마치 동물이나 물건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죄책감마저도 사라진다는 것. 김씨 살해사건 이후 유씨의 범죄 빈도와 잔인성의 수위 역시 점차 높아진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하지 않았다면 불의의 희생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희대의 엽기 살인 … 같은 하늘 살 떨린다

    경찰이 봉원사 계곡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유씨의 살인행각은 엽기(獵奇) 그 자체다. 살인이 계속되면 일종의 사명감과 쾌락까지 느끼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현장검증에 나선 유씨의 태도에서 회한이나 후회의 빛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노인이든 젊은이든 가리지 않고 잔인한 수법으로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혜화동 살인사건 때 7개월 된 아이를 그대로 놔두었을 뿐.

    5kg짜리 둔기 직접 제작 … 노교수 부부 첫 희생

    그는 자루를 짧게 해 손으로 쥐기 편하게 직접 제작한 무게 5kg짜리 둔기(쇠망치)로 피해자들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찍었다. 수사팀 관계자는 “직접 잔인한 살인용 흉기를 만들어, 그것도 20명 넘게 죽인 범죄는 한국 경찰사에 없었다”고 했다. 경찰이 희대의 ‘살인 기술자’를 검거한 것은 시쳇말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18쪽 기사 참조). 경찰은 유씨 진술에 따라 부산 지역의 범행 2건과 서울 지역 기타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노교수 부부를 첫 희생양으로 삼은 뒤 11월 중순까지 강남구 종로구 일대의 부유층 거주지를 돌며 모두 8명을 살해했다. 정황상 증거와 유씨의 자백을 근거로 경찰은 부유층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유씨를 지목했으나 물증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희대의 엽기 살인 … 같은 하늘 살 떨린다
    경찰은 유씨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른다. “범행수법을 장기간 공부한 것 같다”는 게 수사팀 관계자의 말. 그는 지문뿐만 아니라 체모 정액 등 단서를 일절 남기지 않으려 했다. 전화방과 보도방 여성을 부를 때도 서로 다른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했으며 DNA 정보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성폭행도 삼갔고 증거를 은닉하고자 현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강대원 기동수사대장은 “실형을 계속 살아온 사람이라 발각되지 않는 요령까지 연구해온 듯하다”고 말했다.

    유씨는 9월11일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사회에 대한 ‘복수 범죄’를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출감 13일 만인 9월24일 미리 점찍어둔 단독주택에 침입해 ‘서울 연쇄살인사건’의 서막을 울린다. 신사동 노교수 부부를 둔기로 때려 살해하면서 현장에 자신의 다리털을 떨어뜨렸다. 편집광적인 성격 탓인지 체모를 남기고 나온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그는 이후 범죄에선 최소한의 증거도 남기지 않으려 조심했다(경찰은 유씨의 체모를 발견하지 못했다).

    ‘계획 살인범’답게 범행 시간도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점심시간이나 오후를 즐겨 이용했다. 일단 집안에 들어가고 나서는 무자비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다. 그는 10월9일 서울 구기동 고모씨(61)의 단독주택에서 고씨 어머니 강모씨(85)와 부인 이모씨(60), 아들(35) 등 일가족 3명을 살해한다. 이어 10월16일 재력가인 최모씨(71)의 강남구 삼성동 단독주택에 침입, 최씨 부인 유모씨(69)를 살해한 뒤 11월 종로구 혜화동 2층짜리 단독주택 집주인인 김모씨(87)와 가정도우미 배모씨(53)의 목숨을 끊었다.

    희대의 엽기 살인 … 같은 하늘 살 떨린다
    완전범죄를 꿈꾸었던 유씨는 혜화동에서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2명을 살해한 뒤 강도로 가장하기 위해 곡괭이를 이용해 금고문을 뜯으려 한 흔적을 남기다 손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했다. DNA 감식에 걸릴 것을 감안해 현장을 통째로 태워버린 것. 혜화동 사건을 끝으로 유씨의 살인 행각은 끝나는 듯했다.

    이혼한 전처 살해 계획 후 자식 때문에 포기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방화까지 저지른 혜화동 사건을 기점으로 ‘대상 선택’의 변화가 일어난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전처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한 뒤 전처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으나 자식을 생각해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2002년 절도죄로 수감 중 출장마사지 일을 하던 아내에게서 버림받았다. 이혼의 충격은 컸다. ‘아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를 버렸다’는 생각은 분노로 귀결됐다.

    살인범은 한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노인과 윤락녀 사이의 ‘범죄 여백’은 ‘사랑’ 덕이었던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1월께 전화방에서 일하던 김모씨에게 호감을 느껴 청혼한다. 그러나 짧은 사랑으로 얻은 것은 자괴감과 분노였다. 유씨는 매달렸으나 ‘사랑’은 전과자에 이혼남이라는 ‘현실’을 뛰어넘지 못했다. 전처에 대한 분노와 여성에 대한 증오가 전 부인, 전 애인과 비슷한 직업을 가진 불우한 여성들에게 톱과 칼을 들이대게 만든 것이다.

    유씨는 연계 고리가 없는 부유층 노인과 출장마사지사들을 거푸 살해하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맹목적인 증오심을 표출했다. 현장에서 현금과 귀중품에는 손을 대지 않는 등 ‘증오 범죄’임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기도 했다. 사회적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가 복수심을 잉태한 것이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타자에게 인면수심의 잔혹함으로 표출한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은 기회를 공평하게 주지 않아 몫을 빼앗긴 자가 응어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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