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칠레와 평가전을 마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관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또 다른 시작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2022 카타르월드컵으로 나아간다. 러시아월드컵을 지휘한 신태용 전 감독은 대회 직후 “대회 2년 전부터 초점을 맞춰 움직여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꾸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이 벤투 감독 앞에 놓인 시험대다.
놀러 온 것 아니다, 전력을 다하겠다
파울루 벤투(49)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 [동아DB]
벤투 사단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법에 대해 선수들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가령 원포인트 레슨이 그랬다. 벤투 감독은 중앙 수비수 김민재를 불러놓고 일대일로 직접 지시했다. 이 정도로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김 위원장 역시 “저렇게 하면 선수가 훨씬 빨리 성장한다”고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실전에서도 욕심을 냈다. 손흥민의 몸 상태는 대표팀 소집 전부터 화두로 떠올랐다. 그는 러시아월드컵 뒤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의 미국 프리시즌 투어와 아시아경기까지 소화했다. “손흥민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는 혹사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손흥민과 협의한 뒤 “컨디션이 괜찮다”며 소신대로 밀고 갔다. 코스타리카전과 칠레전 모두 선발로 경기당 86분을 뛰게 했다.
맞다. 손흥민은 아시아경기 참가 조건으로 11월 A매치와 내년 열릴 아시안컵 조별리그 1, 2차전에 불참한다. 대표팀을 위해 발맞출 기회가 별로 없다. 벤투 감독은 코스타리카전과 칠레 전에서 단순 승리보다 에이스 손흥민이 들어갔을 때 그림을 보며 앞날을 그리고 싶었을 터다.
“공을 점유하며 경기를 지배하고, 기회를 찾는 것이 목표다.” 벤투 감독이 직접 표현한 ‘벤투 축구’다. 그러면서 나온 키워드가 ‘빌드업’이다. 축구 트렌드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공격 진행 시 즉흥적으로 내지르는 게 아니라 최후방에서부터 각본대로 공격을 진행한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주도권을 잡는다. 우리의 리듬으로 경기를 쥐락펴락하고, 상대가 개입할 틈을 최소화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축구, 독일 축구 모두 이를 근간으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 감독들이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빌드업에 공을 들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요리하려다 도리어 요리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축구계에서 한국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늘 월드컵에 나가는 팀인데, 월드컵에선 조별리그 통과도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전자라면 빌드업을 근간으로 한 축구가 통한다. 하지만 후자라면 많이 뛰고 압박하는 맞춤형 축구로 다시 변화해야 한다. 상대 빌드업에 맞춰 수동적으로 임하고, 그러다 몇 안 되는 기회를 노리는 축구. 지금까지 이렇게 투 트랙으로 갔다.
칠레전이 좋은 예다. 대표팀은 전반전 내내 최후방에서 헤맸다. 김영권과 장현수가 좌우로 넓게 벌렸다. 빌드업을 시도하는 팀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형태다. 하지만 상대 압박에 고전하면서 킥 미스가 줄을 이었다. 하물며 기성용마저 불안정할 때가 있었다. 아르투로 비달을 필두로 한 칠레는 전방 압박 잘하기로 소문난 팀인데, 이러한 실책 연발은 세계무대에서 실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 “(경기 중)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단, 100% 이 스타일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진짜 벤투호는 아직,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동아DB]
선발 라인업은 기존 멤버에게 무게를 실어 짰다. 경기력 논란이 일었던 이들도 끝까지 데려 갔다. 러시아월드컵 경기를 몇 번씩 돌려 봤다는 벤투 감독도 일단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훈련 진행 뒤 실전에 내보내 최종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앞으론 대대적인 변화가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간 주축이던 기성용, 구자철 등이 월드컵 직후 은퇴 의사를 내비쳤다. 비록 벤투 감독이 기성용을 가리켜 “의심의 여지없이 함께 간다”고 마침표를 찍었어도, 다음 월드컵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시선은 그다음 세대로 향한다. 준고참급이 된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것도 표식 중 하나다. 여기에 ‘벤투의 황태자’ ‘벤투의 아이들’로 불릴 새로운 얼굴들이 진정한 벤투 축구를 꾸려나갈 것이다. 중·장기적 목표의 첫 발걸음은 내년 1월 아시안컵. 그 전에 10~11월 A매치 등을 들여다봐야 단기 평가가 나올 듯하다.
다만 조심스러운 건 전임 감독 울리 슈틸리케의 행보 역시 초반에는 이와 유사했다는 점. 아시안컵 준우승에 이어 월드컵 2차 예선 연승 행진에 여론은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처참한 암흑기가 왔다. 믿고 기다리는 건 중요하다. 다만 “무조건 해낼 것이란 맹신도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한 축구계 원로의 말을 새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