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순안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거리에서 본 시민의 일상. [뉴시스]
이처럼 대담한 밀수는 극히 일부 밀수업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7월과 8월 단둥 공안 당국과 국경경비대는 ‘불법취업 북한 인력 추방’과 ‘북한산 물품 반입 금지’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과거 뇌물로 관리하던 단둥 당국자들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자 다급해진 대북 사업가들은 설득 대상을 평양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단둥 당국이 베이징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하니 평양에 부탁해 베이징에 힘을 좀 넣어 단둥을 움직이게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평양을 설득할 비장의 카드는 결국 돈이었다. 이들은 돈 보따리를 싸들고 평양으로 향했다. 적게는 50만 위안(약 800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위안까지 줄 수 있다는 각오로 평양을 찾아 “제발 단둥에 압력 좀 넣어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대북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 기로에 선 것이니 이 정도 돈은 결코 아깝다고 할 수 없었다.
단둥 당국이 북한 인력을 단속하자 그 여파가 또 다른 북·중 접경지역에도 미치고 있다. 두만강 자락의 지린(吉林)성 투먼과 훈춘은 중국 정부가 처음 공식적으로 북한 노동력을 받아들인 지역이다. 합법적으로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는 북한 노동자가 대부분이라 불법취업자가 대다수인 단둥과 비교된다. 그런데 단둥에서 북한으로 쫓겨난 인력이 투먼과 훈춘으로 이동하고 있다. 8월 말 기준으로 단둥에서 쫓겨난 북한 노동자 800명이 ‘비공식적으로’ 투먼과 훈춘으로 들어와 일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단둥에서 쫓겨난 인력들은 북한에서 관광 등 단기 체류 비자를 받은 뒤 투먼과 훈춘으로 나와 일하고 있다. 보통 한 달짜리 비자를 받는데, 비자 기한이 만료되는 시점에 북한으로 들어가 다시 비자를 받는 방식으로 들락날락하고 있다. 정식 취업비자를 받아 일하는 것이 아니니 불법취업이긴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비자 갱신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어 불법체류도 아닌 셈이다.
‘北 인력’ 압록강 때리니 두만강으로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9 · 9절을 기념하기 위해 방북한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시스]
한편 단둥 당국의 단속은 9월 들어 느슨해지고 있다. 단둥의 ‘큰손’ 사업가들이 예측한 대로다. 단둥 경제의 주요 축인 대북 사업을 잘못 건드렸다간 단둥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단속 수위를 적절히 조절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실제로 9월 들어 단둥 당국 내에서 “추석 대목이니까 좀 봐줘야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밀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주로 밤에 몰래 하던 밀수가 낮에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은 10월 1일부터 일주일간 국경절 연휴로 이때는 세관도 쉰다. 그래서 국경절 연휴 이전인 9월은 특히 통관 물동량이 많다. 여기에 단속으로 못 나오는 물건까지 신의주에 쌓여 있는 데다, 때마침 중국 당국이 눈감아주겠다고 하니 이때를 놓칠세라 대북 사업가들이 급히 물건을 처분하고 있어 단둥 현장은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북·중 관계도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인 9·9절을 계기로 다시 밀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9·9절 행사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별대표로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일행을 파견했다.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9·9절 행사에도 실질적 2인자라 할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서열 4위인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이 참석하는 등 최고지도부가 총출동해 북한과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이어 평양과 다롄(大連) 노선의 전세기 운항도 재개됐다. 북한 고려항공은 9월 13일 오후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에 도착해 승객 67명을 태우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2006년 11월 22일 첫 평양-다롄 노선 전세기를 띄운 이후 약 12년 만에 다시 운항을 시작한 것이다. 앞서 중국은 올해 5월 ‘2차 김정은 방중’ 이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고려항공 전세기 운항을 허가했지만 미국의 반발을 의식해 6월과 7월 각각 취소했다. 이들 노선의 운항도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과 중국이 다시 밀착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9월 15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가 눈길을 끈다. WSJ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소속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석유, 석탄은 물론 무기와 섬유 밀수, 금융거래까지 전방위에 걸쳐 안보리 대북 제재망에 구멍이 뚫렸다’고 보도했다. 보고서는 러시아와 중국 선박에 환적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연료 수입이 대규모로 늘었고, 북한이 감시를 피해 체계적으로 중국 선박에 석탄을 실은 사례도 무수하다고 명시했다.
9 · 9절 계기로 북 · 중 밀착 강화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북한 화물 열차가 단둥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이 보고서는 당초 9월 초 채택될 계획이었지만 러시아가 자신들의 제재 위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9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미국이 9월 17일(현지시각)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으로 향하기 직전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제재를 위반한 증거가 있다”며 러시아 측에 증거 은폐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헤일리 대사는 “과거 러시아가 11차례나 대북제재 결의에 찬성하고 물러선 이유가 무엇인지 그 해답을 안다. 러시아가 속여왔고, 이제 그들은 잡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강력 반발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제재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북한을 건설적인 협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며 “제재는 외교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네벤쟈 대사는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 패널이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처음 준비한 보고서는 그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중국도 러시아 편을 들었다. 마자오쉬(馬朝旭) 주유엔 중국대사는 “중국은 대북제재를 이행하고 있다”고 언급한 뒤 “북한과 대결하는 것은 막다른 길이 될 테고, 힘에 의존하는 것은 재앙적인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야흐로 또다시 미국 대 북·중·러 대결 국면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