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기업

11년간 전국에 ‘작은 도서관’ 76개 세운 KB국민은행

성채현 상무 “‘청소년의 멘토, KB’라는 슬로건에 충실”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10-02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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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군인들은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해가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조선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서책이 없는 집이 없다.’ 문화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프랑스인들이 야만국이라고 깔본 조선에 경의를 표할 정도로 조선의 독서 문화 수준은 높았다. 

    책 좀 읽는다는 조선의 사대부라면 마땅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실천하기를 꿈꿨다. 사내라면 마땅히 읽어야 하는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저 구절 말미에 등장하는 두보의 시 ‘제백학사모옥(題柏學士茅屋)’에 힌트가 있다. 벼슬길을 버리고 깊은 산 초가에 은거한 젊은 학사가 독서에 몰두해 1만 권을 돌파하자 상서로운 구름이 몰려왔다는 시의 내용을 살펴봤을 때 최소 1만 권은 돼야 한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 속 허생은 10년간 책읽기를 계획했으나 아내의 구박에 7년 만에 작폐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정확히 몇 권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글 읽기에 훈련된 선비가 10년간 독서에만 정진해야 겨우 채울 수 있는 분량이 1만 권 아닐까. 오늘날 평범한 독자가 취미 삼아 독서한다 했을 때 평생 가도 채우기 힘든 양이다. 

    한때 그만큼 독서를 사랑한 나라가 150년 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인당 독서량 조사에서 꼴찌를 달리는 나라가 됐다. 이런 부끄러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허생이 약속한 10년 넘게 독서 운동을 펼쳐온 기업이 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전국 문화소외지역과 격오지에 ‘작은 도서관’ 76개를 세워 독서 문화를 꾸준히 일궈온 공로로 8월 31일 제24회 독서문화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KB국민은행이다.

    청소년 멘토링 사업의 연장선

    성채현 KB국민은행 홍보·브랜드 총괄상무 겸 소비자브랜드전략그룹 대표. [박해윤 기자]

    성채현 KB국민은행 홍보·브랜드 총괄상무 겸 소비자브랜드전략그룹 대표. [박해윤 기자]

    KB국민은행이 산간벽지와 섬마을, 문화소외지역 곳곳에 크게 빛이 나지도 않는 독서문화진흥사업을 꾸준히 펼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해당 사업을 총괄하는 성채현(53) KB국민은행 홍보·브랜드 총괄상무 겸 소비자브랜드전략그룹 대표를 9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나 들어봤다. 



    “KB국민은행의 사회공헌 캐치프레이즈가 ‘청소년의 멘토, KB’입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체 금융교육을 실시한 것에서 연원합니다. 당시 신용카드 보급이 크게 늘었지만 신용 관리를 못해 낭패를 보는 성인이 많아 청소년 시절부터 신용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소년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멘토링 사업을 하나둘 늘려와 현재는 진로, 학습, 디지털 등 3개 멘토링 사업으로 정립됐습니다. 진로 멘토링은 청소년에게 미래 유망 직업을 소개해주는 사업입니다. 학습 멘토링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청소년의 학습을 도와주도록 대학생 멘토를 짝지어주는 사업인데 현재 대학생 멘토가 40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디지털 멘토링은 희망하는 학교를 직접 방문해 코딩 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입니다. 독서진흥운동은 이런 청소년 멘토링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내 공감도가 탄탄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교체돼도 중단 없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KB국민은행의 독서 문화 지원 활동은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문화소외지역에 지자체가 공간을 마련하면 KB국민은행이 1억 원 안팎을 투자해 1000권가량의 책과 관련 비품을 제공하는 ‘작은 도서관’ 조성사업이다. 

    ‘작은 도서관’이란 법으로 규정된 공공도서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규모 도서관을 말한다. 공공도서관은 264㎡(약 80평) 이상 면적에 60석 이상의 좌석과 3000권 이상의 도서, 3명 이상의 사서 규모를 갖춰야 한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에 따르면 그 기준 이하의 도서관이되 최소 33㎡(10평)의 면적, 6석 이상 좌석, 1000권 이상의 도서를 갖춘 곳을 작은 도서관이라 한다. 작은 도서관은 2017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6058곳(공립 1407곳, 민간 4651곳)이 있다. KB국민은행이 지원하는 작은 도서관은 대부분 공립에 해당하므로 전체 공립 작은 도서관의 5%가량이 되는 셈이다. 단일 기업이 세운 도서관으로선 가장 많다. 

    “저희는 도서관 개관만 돕는 게 아니라 매년 200~300권의 신간 도서 구입비를 별도로 지원하고 작가와의 만남, 동화 구연, 책연극놀이 같은 독서 문화 프로그램도 도서관별로 연간 3회 이상 꾸준히 지원합니다. 지난해부터는 저희가 지원하는 도서관 사서 분들을 모시고 제주도와 일본 후쿠오카를 돌며 연수를 실시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병영도서카페와 책버스까지

    KB국민은행 지원으로 조성된 작은 도서관들.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KB국민은행 지원으로 조성된 작은 도서관들.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KB국민은행은 특히 군부대 독서 지원에 열심이다. 격오지나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과 가족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15곳 설립했다. 2015년부터는 군복무 중인 병사들을 위해 1000여 권의 책을 갖춘 컨테이너에 ‘병영독서카페’라 이름 붙여 올해까지 11개 관을 보급했다. 

    “격오지 군부대로 발령받으면 5~10년 이상씩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군인 가족, 특히 어린 자녀들이 문화 혜택을 받을 기회가 적기에 저희가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다 젊은 사병들에게도 눈길이 가게 됐는데 군부대 내에 작은 도서관 설치엔 어려움이 있어 사병들이 차 한잔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KB국민은행 여자농구단 KB스타즈가 기증한 버스를 개조한 ‘책버스’와 그 안에서 동화 구연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KB국민은행 여자농구단 KB스타즈가 기증한 버스를 개조한 ‘책버스’와 그 안에서 동화 구연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이와 별도로 2016년 하반기부터는 국민은행 여자농구단 KB스타즈의 버스를 1000권가량의 책을 갖춘 도서관 버스로 개조해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는 책버스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책버스는 2017년에만 연간 200일을 운행하며 발로 뛰는 독서문화진흥사업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KB스타즈가 새 버스를 구입하면서 기존 버스를 기부했고 문체부에서 운영비를 일부 지원해 책버스 운영이 가능했습니다. KB국민은행은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1사1교 경제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지금까지 600개 지점과 자매결연한 학교를 돌았는데 그때 책버스도 함께 출동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KB국민은행의 독서문화진흥사업은 장기 지속과 촘촘한 운영을 자랑한다. 이를 통해 책을 접하기 시작한 어린이 중에서 언젠가 1만 권을 독파하는 백학사가 속출하지 않을까. KB 작은 도서관이 꾸는 큰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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