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오른쪽)이 4월 2일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첼시 FC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델레 알리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동아일보]
대역전승 이면엔 논란도 있었다. 토트넘 에이스로 거듭난 손흥민의 ‘탐욕’이 급작스레 논쟁 주제로 떠올랐다. 짜릿한 승리에도 아쉬운 순간을 거론한, 조금은 이례적인 상황이기도 했다. 후반 20분 알리가 마지막 골을 넣었을 때다. 상대 수비라인 뒤로 침투한 손흥민이 전진 패스를 받았다. 깊숙이 파고든 이후에는 상대 골키퍼 윌리 카바예로와 두 차례 슈팅으로 치고받았다. 모두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기 후에도 회자된 상황은 두 번째 슈팅이었다. 첫 슈팅은 속도를 붙인 손흥민이 마무리할 법도 했다. 반대편에서 쇄도한 알리에게 넘겨줄 수 있었으나, 본인이 욕심을 내도 크게 무리는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팀 동료 에리크 라멜라와 에릭센이 따라와 자리를 잡았다. 동료의 슈팅 각도가 더 크게 열려 있었음에도 손흥민은 패스 대신 재차 슈팅을 택했다. 알리가 흘러나온 공을 다시 차 넣어 득점한 덕에 우선은 일단락됐다. 다만 평소 침착한 캐릭터인 에릭센이 손흥민에게 격한 제스처로 화내는 모습이 중계를 타면서 여론을 달궜다.
만약 득점에 성공했다면
현지에서도 이를 짚고 넘어갔다. 경기 후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를 거론했다. 에릭센은 본인이 항의한 것에 대해 “손흥민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알리가 득점하지 못했다면 패스하지 않은 손흥민에게 조금은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을 넣은 알리는 “손흥민이 패스하지 않았을 때 조금 짜증이 났다”고 돌아봤다. 화면이 아닌 기사 글로만 접하면 정확한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인터뷰 원문으로는 손흥민이 과욕을 부려 실책한 것처럼 읽힐 수 있다.축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결과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가령 손흥민이 두 번째 슈팅으로 득점을 만들었다면? ‘수비진 사이를 절묘하게 통과한 골’ 혹은 ‘뚝심으로 만든 집념의 골’이 되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패스하는 편이 나아 보였을지 모르나, 강요할 수는 없는 대목이었다. 최종 판단은 그 상황에 처한 선수가 직접 내릴 수밖에 없다. 결과에 따른 여러 해석이 덧붙을 수는 있어도, 손흥민이 플레이한 장면만 놓고 보면 ‘꼭 그랬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애초 큰 논란거리도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 축구를 오래 접해온 이라면 경기 도중 같은 팀 선수끼리 주고받는 언쟁을 심심찮게 목격했을 터다. 몇 주 전만 해도 손흥민과 알리가 서로의 판단을 놓고 경기 중 얼굴을 붉혔다. 손흥민과 라멜라가 서로 페널티킥을 차겠다고 옥신각신했다. 국내에서는 손흥민이 화제의 중심이라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흔한 일상이다.
2015년 1월 FC 바르셀로나 후베닐 A 훈련을 며칠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백승호(지로나 FC·현 CF 페랄라다 임대), 이승우(헬라스 베로나)가 속한 팀으로 바르사 B(2군) 직전 단계다. 흔히 ‘유스’로 칭하는 만 16~18세 청소년팀의 마지막 레벨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고교생 선수에게 붙는 바이아웃 금액이 최대 300만 유로(약 39억 원)다. 즉, 계약 기간이 남은 이들을 영입하려면 4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살아남으려면 내가 돋보여야
유럽 유소년 축구팀의 훈련 모습. 한국과 다르게 훈련도 치열한 생존 경쟁의 연장이다. [동아일보]
투지 넘치는 동작에 훈련을 중단하길 여러 번. 부상자는 재빨리 운동장 밖으로 옮기고, 숨이 잠잠해지기 전 재개 휘슬을 울렸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건 그다음이었다. 공격수와 일대일 상황에 놓인 골키퍼가 몸을 던졌다. 타이밍이 겹치며 ‘쿵’ 하고 부딪쳤다. 충돌 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공격수. 급히 일어나 빈 골문으로 가볍게 공을 차 넣자, 골키퍼가 분에 못 이겨 땅을 내리쳤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동료 수비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다. 운동장에 있는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한 골’을 대하는 태도가 유럽은 무척 달랐다. 적어도 같은 연령대의 국내 팀 훈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는 축구를 향한 ‘애정’ 차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유럽은 늦여름 시즌을 시작해 이듬해 4~5월 막을 내린다. 그 반환점인 1월부터는 어린 선수들을 대하는 구단의 태도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구단은 시즌 중 살아남은 선수들과 다른 팀에서 영입한 자원을 추가해 다음 시즌을 구상한다. 선수 풀이 큰 만큼 선수 이동이 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존 다툼으로 경쟁은 극에 달한다. 남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 소위 “제가 쟤보다 잘해요”다. 자연스레 몸동작이 커진다. 의사 표현도 더없이 적극적이다. 때로는 이기적으로 비칠지라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압박감을 이겨야 본인 밥그릇을 지킨다. 양보를 미덕으로 여기는 국내 실정과는 판이하다. 10대 후반부터 유럽에서 구른 손흥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이들이 유별나기에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계속 보여줘야 수만 명 팬 앞에서 다른 팀과 겨룰 자격이 주어진다.
다시 토트넘 이야기. 그래서 에릭센, 알리, 손흥민이 서로 감정이 상해 등을 돌렸느냐고? 알리의 말부터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짜증이 났다”던 그는 구단 공식 채널과 인터뷰에서는 “손흥민을 비난한 게 아니다. 손흥민은 믿을 수 없이 좋은 폼을 유지하고 있고, 그 덕에 내게도 득점 기회가 왔다”며 웃어 보였다. 외부에서 상황에 맞는 판단을 운운할 수는 있어도, 결국 선택과 책임은 개인의 몫. 이마저도 그 선수의 특성이자 생존 방식이다. 또 주변인이 공개석상에서 이를 지적한다 한들, 그것 역시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득점을 갈구한 손흥민이 정녕 팀에 해가 됐다면 감독부터 이 선수를 안 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