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의 서로 다른 V제스처. [출처 ·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립처칠도서관 및 연구센터.(NCLC)]
게리 올드먼에게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그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나치독일이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40년 총리로 취임한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먼 분)이 프랑스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과 프랑스군 34만여 명을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겪은 번민과 반전의 드라마를 그렸다. 영화 속 처칠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승리의 V ’(V for Victory) 제스처를 사진기자들 앞에서 취한다. 하지만 ‘손바닥 V ’가 아니라 ‘손등 V ’였다.
총리실 여성 타이피스트들은 이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린다. 처칠이 왜 웃느냐고 묻자 그의 연설문 타이피스트 엘리자베스 레이튼(릴리 제임스 분)이 한참을 망설이다 대다수 영국인은 그 뜻을 ‘엉덩이를 올려(Up your bum)’라는 성적인 비속어로 받아들인다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처칠은 폭소를 터뜨린다.
영화에서 처칠은 지하철을 한 번도 타보지 않아 서민의 삶을 모르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래서 서민적 비속어를 몰라 실수로 ‘손등 V ’ 제스처를 한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손등 V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유행한 손바닥 V보다 오랜 연원을 지녔다. 일부에선 ‘백년전쟁’(1337~1453)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당시 영국군이 소수 병력으로 프랑스군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장궁(long bow)과 일반 활보다 관통력이 몇 배 더 큰 석궁(cross bow)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 궁수부대에서 외국 부대에 대한 야유와 도발의 뜻으로 손등 V 제스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인구에 회자되곤 한다. 물론 명확한 증거는 없다.
처칠은 장교로 오랜 세월 군복무를 했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해군성 장관이었다. 그런 그가 외국 부대에 대한 도발의 뜻으로 사용된 손등 V를 몰랐을 리 없다. 실제 처칠은 영화에 소개된 사진 이후에도 손바닥 V와 손등 V를 번갈아 사용했다. 처칠의 개인 비서인 존 콜빌은 일기장에 ‘총리가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지만 그 (손등) V 제스처를 계속할 것’이라고 썼다. 처칠 연구가인 마이클 비숍은 “처칠이 손등 V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며 의도적으로 손등 V를 했을 개연성을 제기했다. 손바닥 V는 승리의 자신감을 내비칠 때였고, 손등 V는 나치독일을 포함한 주축국에 대한 도발의 의미로 썼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같은 영어권 국가라도 미국과 캐나다에선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 출신 인기가수 저스틴 비버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손등 V 제스처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