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명. 올해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표인단 숫자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년 내내 꾸준히 야구를 담당한 기자, 아나운서, 해설위원, PD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는 이 중 357명(93.2%)이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538명. 2018시즌 10개 구단 소속 보류 선수(재계약 대상자) 숫자입니다. 전체 프로야구 선수 수와 단순 비교하면 3분의 2(66.4%)에 해당하는 인원이 골든글러브 투표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많아도 참 많은 수입니다. 일반적으로 투표자 수가 늘어나면 민심을 더 잘 대변하게 마련. 골든글러브 투표도 그럴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11월 11일 오후 11시 52분. 아직 올해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입니다. 그래도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올해도 분명 논란이 되는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21세기 들어 해마다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만 유독 예외이기는 힘들 테니까요(아, 2014년에는 논란이 없었나).
골든글러브는 시상 기준 자체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KBO 리그 규정 제13조는 ‘연도의 수비, 공격, 인기도를 종합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투표인단이 선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포지션별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기준의 전부입니다. 수비, 공격, 인기도를 어떤 비율로 반영하라는 규정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투표자가 ‘내가 보기엔 저 선수가 그 포지션에서 최고야’라는 이유로 표를 던진다 해도 이 규정에서 어긋난 게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서 뛴 타이론 우즈(48)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고도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MVP 역시 기자단 투표로 결정합니다. 요컨대 그해 프로야구 취재진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당시 42개)을 새로 쓴 우즈가 리그 전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Most Valuable Player)라고 봤지만 최고 1루수는 아니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승엽(41·전 삼성 라이온즈)이 차지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첫해 우즈가 이승엽보다 확실히 인기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 이 역시 잘못된 투표 결과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표를 던지든 투표자 마음이지만, MVP도 ‘물먹는’ 투표 결과라면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를 통해 1990년대 최고 가수가 현진영이라 발표하고 상을 준 단체가 있다면 평가 기준을 의심해보는 게 상식일 테니까요(현진영 씨, 혹시 이 글을 보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비유일 뿐입니다. ‘현진영 Go 진영 Go’는 제 마음속 최고 노래입니다).
사실 이건 모든 투표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1972년 역대 최연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는 단 한 가지 방식을 제외하면 어떤 투표제도도 선택지가 세 개 이상일 때 공동체의 일관된 선호 순위(ranked preferences)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런 ‘투표의 역설’로부터 자유로운 단 한 가지 방식은 바로 ‘독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기록을 바탕으로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가리자’는 제안에 반대합니다. 이를 ‘세이버메트릭스의 독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투표 결과를 두고 논란이 생긴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야구에 관한 논의가 풍성해진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저는 MVP나 신인상, 골든글러브 등 프로야구 취재기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구를 어떤 이유로 찍었는지를 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해왔습니다. 또 순위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주는 ‘보르다 투표’ 방식으로 프로야구 MVP 투표를 바꾸자고 제안하는 칼럼을 썼고 (정말 그 칼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KBO에서 투표 방식을 이렇게 바꾸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종(관심종자)’이거나 ‘내 말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어 그랬던 건 물론 아닙니다. 그저 논의의 시발점을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가 꾸준히 선거제도를 감시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프로야구 시상 제도도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골든글러브 투표를 이렇게 바꾸자고 제안해봅니다.
①투표인단 수를 줄입시다
‘인기도’가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야구팬이 동의할 터. 대한민국에 정말 ‘야구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400명 가까이 존재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미국에 야구 전문가가 부족해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 가운데 60명(팀당 2명)만 MVP, 사이영상 투표에 참여하는 건 아닐 겁니다.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상 수상자는 코칭스태프 투표로 결정합니다. 예컨대 한국야구기자회원 자격 5년 이상 등으로 투표권을 제한합시다.
②투표 내용을 공개합시다
‘비밀선거’는 선거 4대 원칙 가운데 하나지만 이걸 밝힌다고 야구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미 BBWAA 홈페이지(www.bbwaa.com)는 각 회원이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KBO 또한 각종 기자단 투표를 온라인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투표 내용을 공개하는 것 역시 기자들이 투표 이유에 대한 기사를 더 많이 쓰는 등 ‘어떤 포지션에서는 그 선수가 왜 최고인가’에 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③기록을 반영합시다
골든글러브는 기본적으로 그해 포지션 최고 선수에게 주는 상입니다. ‘인기도’는 투표 이유이기도 하지만 투표 결과이기도 합니다. 공격과 수비, 특히 공격 성과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KBO는 홈페이지를 통해 XR(추정득점)나 GPA(Gross Production Average)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2013년부터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할 때 코칭스태프 투표 결과에 미국야구조사협회(SABR)에서 개발한 수비 지표 SDI(SABR Defensive Index)를 25%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 역시 투표의 역설을 피하지 못하겠지만 현행 제도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합니까.
538명. 2018시즌 10개 구단 소속 보류 선수(재계약 대상자) 숫자입니다. 전체 프로야구 선수 수와 단순 비교하면 3분의 2(66.4%)에 해당하는 인원이 골든글러브 투표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많아도 참 많은 수입니다. 일반적으로 투표자 수가 늘어나면 민심을 더 잘 대변하게 마련. 골든글러브 투표도 그럴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11월 11일 오후 11시 52분. 아직 올해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입니다. 그래도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올해도 분명 논란이 되는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21세기 들어 해마다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만 유독 예외이기는 힘들 테니까요(아, 2014년에는 논란이 없었나).
MVP도 못 낀 황금장갑
야구글러브를 형상화한 골든글러브 트로피. [스포츠동아]
그러니 어떤 투표자가 ‘내가 보기엔 저 선수가 그 포지션에서 최고야’라는 이유로 표를 던진다 해도 이 규정에서 어긋난 게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서 뛴 타이론 우즈(48)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고도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MVP 역시 기자단 투표로 결정합니다. 요컨대 그해 프로야구 취재진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당시 42개)을 새로 쓴 우즈가 리그 전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Most Valuable Player)라고 봤지만 최고 1루수는 아니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승엽(41·전 삼성 라이온즈)이 차지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첫해 우즈가 이승엽보다 확실히 인기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 이 역시 잘못된 투표 결과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표를 던지든 투표자 마음이지만, MVP도 ‘물먹는’ 투표 결과라면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를 통해 1990년대 최고 가수가 현진영이라 발표하고 상을 준 단체가 있다면 평가 기준을 의심해보는 게 상식일 테니까요(현진영 씨, 혹시 이 글을 보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비유일 뿐입니다. ‘현진영 Go 진영 Go’는 제 마음속 최고 노래입니다).
사실 이건 모든 투표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1972년 역대 최연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는 단 한 가지 방식을 제외하면 어떤 투표제도도 선택지가 세 개 이상일 때 공동체의 일관된 선호 순위(ranked preferences)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런 ‘투표의 역설’로부터 자유로운 단 한 가지 방식은 바로 ‘독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기록을 바탕으로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가리자’는 제안에 반대합니다. 이를 ‘세이버메트릭스의 독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투표 결과를 두고 논란이 생긴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야구에 관한 논의가 풍성해진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저는 MVP나 신인상, 골든글러브 등 프로야구 취재기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구를 어떤 이유로 찍었는지를 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해왔습니다. 또 순위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주는 ‘보르다 투표’ 방식으로 프로야구 MVP 투표를 바꾸자고 제안하는 칼럼을 썼고 (정말 그 칼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KBO에서 투표 방식을 이렇게 바꾸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종(관심종자)’이거나 ‘내 말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어 그랬던 건 물론 아닙니다. 그저 논의의 시발점을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가 꾸준히 선거제도를 감시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프로야구 시상 제도도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인기와 기록, 적절히 섞어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자인 이승엽(전 삼성 라이온즈). 그는 데뷔 이후 10번이나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됐다. [스포츠동아]
①투표인단 수를 줄입시다
‘인기도’가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야구팬이 동의할 터. 대한민국에 정말 ‘야구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400명 가까이 존재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미국에 야구 전문가가 부족해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 가운데 60명(팀당 2명)만 MVP, 사이영상 투표에 참여하는 건 아닐 겁니다.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상 수상자는 코칭스태프 투표로 결정합니다. 예컨대 한국야구기자회원 자격 5년 이상 등으로 투표권을 제한합시다.
②투표 내용을 공개합시다
‘비밀선거’는 선거 4대 원칙 가운데 하나지만 이걸 밝힌다고 야구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미 BBWAA 홈페이지(www.bbwaa.com)는 각 회원이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KBO 또한 각종 기자단 투표를 온라인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투표 내용을 공개하는 것 역시 기자들이 투표 이유에 대한 기사를 더 많이 쓰는 등 ‘어떤 포지션에서는 그 선수가 왜 최고인가’에 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③기록을 반영합시다
골든글러브는 기본적으로 그해 포지션 최고 선수에게 주는 상입니다. ‘인기도’는 투표 이유이기도 하지만 투표 결과이기도 합니다. 공격과 수비, 특히 공격 성과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KBO는 홈페이지를 통해 XR(추정득점)나 GPA(Gross Production Average)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2013년부터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할 때 코칭스태프 투표 결과에 미국야구조사협회(SABR)에서 개발한 수비 지표 SDI(SABR Defensive Index)를 25%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 역시 투표의 역설을 피하지 못하겠지만 현행 제도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