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명. 2018시즌 10개 구단 소속 보류 선수(재계약 대상자) 숫자입니다. 전체 프로야구 선수 수와 단순 비교하면 3분의 2(66.4%)에 해당하는 인원이 골든글러브 투표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많아도 참 많은 수입니다. 일반적으로 투표자 수가 늘어나면 민심을 더 잘 대변하게 마련. 골든글러브 투표도 그럴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11월 11일 오후 11시 52분. 아직 올해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입니다. 그래도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올해도 분명 논란이 되는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21세기 들어 해마다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만 유독 예외이기는 힘들 테니까요(아, 2014년에는 논란이 없었나).
MVP도 못 낀 황금장갑
![야구글러브를 형상화한 골든글러브 트로피. [스포츠동아]](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a/37/72/e2/5a3772e21f18d2738de6.jpg)
야구글러브를 형상화한 골든글러브 트로피. [스포츠동아]
그러니 어떤 투표자가 ‘내가 보기엔 저 선수가 그 포지션에서 최고야’라는 이유로 표를 던진다 해도 이 규정에서 어긋난 게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서 뛴 타이론 우즈(48)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고도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MVP 역시 기자단 투표로 결정합니다. 요컨대 그해 프로야구 취재진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당시 42개)을 새로 쓴 우즈가 리그 전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Most Valuable Player)라고 봤지만 최고 1루수는 아니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승엽(41·전 삼성 라이온즈)이 차지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첫해 우즈가 이승엽보다 확실히 인기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 이 역시 잘못된 투표 결과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표를 던지든 투표자 마음이지만, MVP도 ‘물먹는’ 투표 결과라면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를 통해 1990년대 최고 가수가 현진영이라 발표하고 상을 준 단체가 있다면 평가 기준을 의심해보는 게 상식일 테니까요(현진영 씨, 혹시 이 글을 보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비유일 뿐입니다. ‘현진영 Go 진영 Go’는 제 마음속 최고 노래입니다).
사실 이건 모든 투표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1972년 역대 최연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는 단 한 가지 방식을 제외하면 어떤 투표제도도 선택지가 세 개 이상일 때 공동체의 일관된 선호 순위(ranked preferences)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런 ‘투표의 역설’로부터 자유로운 단 한 가지 방식은 바로 ‘독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기록을 바탕으로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가리자’는 제안에 반대합니다. 이를 ‘세이버메트릭스의 독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투표 결과를 두고 논란이 생긴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야구에 관한 논의가 풍성해진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저는 MVP나 신인상, 골든글러브 등 프로야구 취재기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구를 어떤 이유로 찍었는지를 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해왔습니다. 또 순위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주는 ‘보르다 투표’ 방식으로 프로야구 MVP 투표를 바꾸자고 제안하는 칼럼을 썼고 (정말 그 칼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KBO에서 투표 방식을 이렇게 바꾸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종(관심종자)’이거나 ‘내 말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어 그랬던 건 물론 아닙니다. 그저 논의의 시발점을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가 꾸준히 선거제도를 감시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프로야구 시상 제도도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인기와 기록, 적절히 섞어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자인 이승엽(전 삼성 라이온즈). 그는 데뷔 이후 10번이나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됐다. [스포츠동아]](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a/37/72/e7/5a3772e723a3d2738de6.jpg)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자인 이승엽(전 삼성 라이온즈). 그는 데뷔 이후 10번이나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됐다. [스포츠동아]
①투표인단 수를 줄입시다
‘인기도’가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야구팬이 동의할 터. 대한민국에 정말 ‘야구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400명 가까이 존재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미국에 야구 전문가가 부족해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 가운데 60명(팀당 2명)만 MVP, 사이영상 투표에 참여하는 건 아닐 겁니다.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상 수상자는 코칭스태프 투표로 결정합니다. 예컨대 한국야구기자회원 자격 5년 이상 등으로 투표권을 제한합시다.
②투표 내용을 공개합시다
‘비밀선거’는 선거 4대 원칙 가운데 하나지만 이걸 밝힌다고 야구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미 BBWAA 홈페이지(www.bbwaa.com)는 각 회원이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KBO 또한 각종 기자단 투표를 온라인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투표 내용을 공개하는 것 역시 기자들이 투표 이유에 대한 기사를 더 많이 쓰는 등 ‘어떤 포지션에서는 그 선수가 왜 최고인가’에 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③기록을 반영합시다
골든글러브는 기본적으로 그해 포지션 최고 선수에게 주는 상입니다. ‘인기도’는 투표 이유이기도 하지만 투표 결과이기도 합니다. 공격과 수비, 특히 공격 성과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KBO는 홈페이지를 통해 XR(추정득점)나 GPA(Gross Production Average)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2013년부터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할 때 코칭스태프 투표 결과에 미국야구조사협회(SABR)에서 개발한 수비 지표 SDI(SABR Defensive Index)를 25%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 역시 투표의 역설을 피하지 못하겠지만 현행 제도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