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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릴러 혹은 법정드라마에 가까운 ‘세 번째 살인’은 묵직하고 강렬하다. 감독 역시 이 영화를 두고 “가족 이야기에서 시야를 넓혀 일본 사회의 무엇에 절실하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며 “새로운 도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뢰인과 공감 같은 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냉정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강도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가 확실시되는 미스미(야쿠쇼 고지 분)의 변론을 마지못해 맡게 된다. 살인으로 30년간 복역한 바 있는 미스미는 이번엔 일하던 공장의 사장을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웠다고 자백한다. 시게모리는 가능한 한 미스미의 형량을 낮추려 시도하지만 접견할 때마다 미스미의 진술이 바뀌자 혼란스러워한다. 여기에 피해자인 공장 사장의 아내(사이토 유키 분)와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 분)까지 끼어들며 실타래는 더욱 얽히고설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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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 번째 살인’은 미스미가 저지른 두 번의 살인에 이어 미스미에게 행해진 사법부의 살인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감독은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이례적으로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로, 국민 80%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며 “과연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한 번쯤 질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주제지만 배우의 열연이 곁들여져 결코 지루하지 않다(러닝타임 125분). 특히 시게모리와 미스미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접견실 장면이 인상적이다. 엇갈려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점차 가까워지다 나중에는 변호인과 의뢰인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착각까지 준다. 유리벽에서 미스미의 얼굴과 시게모리의 얼굴이 포개지는 장면에선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러 질문이 뒤엉켜 남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은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