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여기 화장실에 종이 수건을 비치하기 시작한 거예요. 제가 처음 왔을 때는 빨아서 쓰는 천 수건이 걸려 있었거든요. 그걸 바꿔놓고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한 번씩 볼 때마다 ‘그래, 나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노의사가 ‘허허’ 소리 내 웃었다. 얼굴 가득 소년 같은 미소가 번졌다. 신완식(67·사진) 요셉의원 의무원장이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100길. 이른바 ‘쪽방’이 모여 있는 서울 도심 속 판자촌 한가운데 노숙인과 행려자를 위한 무료 자선 병원 요셉의원이 있다. 신 원장은 이곳에서 8년 넘게 무상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내과, 일반외과, 신경정신과, 치과 등 20여 개 진료과의 자원봉사 의사 가운데 유일한 상근자다. 다른 의사들은 대학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틈틈이 요셉의원을 찾아 환자를 돌본다. 그러나 신 원장은 2009년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과장직을 내려놓은 뒤 아예 요셉의원으로 옮겨왔다. 이후 지금까지 일하면서 보람찼던 일, 자랑스러운 기억에 대해 물은 참이었다. 그가 처음 꺼낸 것이 ‘종이 수건’ 얘기였다. 대학교수 시절 우리나라 최고 ‘감염질환 전문가’로 불리던 인물다운 대답이긴 했다. 

2003년 ‘동아일보’에 실렸던 신 원장 관련 기사를 보자. 동아일보는 그를 ‘명의’로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면역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서 생기는 감염질환을 치료하는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 세계적 학술지에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환자 등의 항암치료 및 조혈모세포이식 전후 발생하는 감염질환에 대한 논문을 50여 편 발표했다. 유한의학상, 송촌 지석영 GSK의학상 등을 받았다. 대한감염학회 회장, 대한의진균학회 부회장, 한국학술진흥재단지정 중점연구소지원사업 책임자 등을 맡고 있다.’ 

신 원장은 이런 의사였다. 그가 이같은 영광을 뒤로하고 둥지를 튼 곳이 요셉의원이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하루에도 100명 넘게 찾아오는 가난한 환자들을, 그들의 악취와 소란과 때로는 폭력까지 견뎌가며 치료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한번은 어느 할머니가 오셨는데 냄새가 너무 심한 거예요. 도저히 진찰을 할 수가 없어서 ‘할머니, 목욕하고 오시면 아주 잘 봐 드리고 좋은 약도 드릴게요’ 했어요. 여기 1층에 목욕실이 있거든요. 그 옆에는 후원자들이 보내준 옷가지들을 보관해둔 곳이 있어 갈아입을 옷도 받을 수 있고요. 그 할머니가 그날은 그렇게 씻고 옷 갈아입은 뒤 진료를 보고 가셨어요. 그러고는 며칠 뒤 다시 병원에 왔는데, 이번엔 머리핀을 꽂고 오신 거예요. ‘저 예뻐요?’ 하면서. 하하.” 

이런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제가 대학에만 오래 있어 처음엔 사람 대하는 게 좀 어려웠어요. 꼬박꼬박 존대하고 거리를 두니 환자들도 좀 불편했겠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하루는 제가 자주 본 분한테 ‘어이, 동생’ 하고 말을 걸었어요. ‘동생, 몸은 좀 나아졌어? 지난번에 어디 관뒀다더니 다시 취직했나?’ 그랬더니 이분이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여기 오는 분들이 겉으로 아주 두꺼운, 딴딴한 코트를 입고 있는데 그거 한 꺼풀만 벗겨내면 속살이 말할 수 없이 여려요.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자기를 그렇게 생각해주고 기억해준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 뒤부터는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저를 보면 ‘원장님 악수해요’ ‘우리 뽀뽀 한번 해요’ 막 그러고…. 아, 얼굴에 콧물자국이 다 보이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는데 도망갈 수도 없고 이걸 어쩌나…, 했던 그 기억이 나네요. 허허.” 

신 원장은 요셉의원에서 이런 환자들을 만났다. 국민의료보험제도를 운영 중인 우리나라에서 모든 국민은 원칙적으로 전국 어느 병원에서든 원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비는 대부분 국가가 부담하고, 개인이 내는 일부 비용도 필요한 경우 국가에 대납을 요청할 수 있다. 이게 ‘원칙’이다.

“더 나이 들기 전 봉사해야지”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갖가지 이유로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 국민의료보험료를 장기간 체납한 사람, 불법체류 외국인 등 ‘예외’에 속한 이가 적잖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열악한 주거 여건과 식생활 탓에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전국 어느 병원도 맘 편히 찾아가지 못한다. 바로 이들을 위해 열려 있는 곳이 요셉의원이다. 

1987년 고(故) 선우경식 초대원장(내과전문의)이 문을 연 이 공간은 30년간 국가 지원 없이 오직 후원자와 봉사자만의 힘으로 환자 64만 명 이상(9월 말 현재)을 무료 진료해왔다. 2008년 선우 원장이 별세한 후 요셉의원을 맡게 된 신 원장도 이 ‘위대한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한 이다. 

2009년 그가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에 사표를 냈을 때부터 ‘요셉의원행’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고 한다. 당시엔 그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월급을 받지 않고 봉사하며 살겠노라’고만 마음먹은 상태였다. 아직 정년까지 적잖은 시간이 남았고 병원에서 내과 과장·세포치료사업단장 등 각종 보직도 맡고 있을 때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물었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정희영 교수님’ 얘기를 꺼냈다. 우리나라 감염내과 분야의 선구자로 신 원장의 은사였던 정 전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정년퇴임 당시 제자들에게 “퇴임하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게 쉽지 않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뒤 신 원장은 ‘봉사에도 때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건강이 허락할 때 의료봉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제가 가톨릭 신자인데 가톨릭에서는 자기희생이 없으면 봉사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때부터 ‘내가 제대로 봉사하려면 학교를 그만둬야겠구나’ 생각했죠. 그러자면 약간의 경제력, 공동체 적응력 등을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고도 생각했고요. 또 중요한 게 주위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알리는 거였어요. 식구들이 놀라지 않도록 기회가 될 때마다 ‘나는 정년까지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되풀이했죠.” 

그리고 예순이 되기 전 그는 마침내 ‘사고를 쳤다’. 신 원장의 표현 그대로다. 병원에 사표를 내고 최영식 당시 가톨릭중앙의료원장(신부)에게 인사하러 갔을 때 최 신부가 권한 자리가 요셉의원이었다. 선우 원장 별세 후 병원 운영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였다. 신 원장은 두말하지 않고 최 신부의 뜻에 따랐다. 그것이 오늘로 이어졌다. 

“제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처음엔 힘든 면이 없지 않았어요. 일단 병원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부터 적응이 잘 안 됐죠. 대학병원에만 있던 저에겐 잘 씻지 않고 알코올에 찌든 분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좀 낯설었어요. 그리고 여기 환자는 대부분 사회에서 천대와 냉소를 받아온 분들이라 분노 임계치가 매우 낮아요. 진료가 조금만 늦어져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죠. 진료실 앞 유리나 거울을 막 두드려 부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순간들도 있었어요.” 

신 원장의 얘기를 듣는데 이날 오전 요셉의원 입구에 들어설 때 눈에 띈 현관 앞 안내문 내용이 떠올랐다. ‘술 드신 분은 진료가 안 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요셉의원이 지역주민의 자활을 위해 운영하는 음악치료프로그램 교실 입구에도 ‘음주 상태에서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참여자 모두가 간식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신산한 삶에 지친 이들은 쉬이 강퍅해지고 낯선 사람에게 날을 세울 수 있다. 초기엔 그 대상이 신 원장이었던 셈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죠. 요셉의원에 오래 다니던 만성질환자를 진료한 뒤 ‘그동안 이런 약을 드셨는데 이번부터 약 처방을 좀 바꾸겠습니다’ 말씀드리니 버럭 화를 내는 거예요. ‘나는 지금까지 선우경식 원장님 약을 먹고 잘 살았다. 네가 뭔데 갑자기 약을 바꾸겠다는 거냐. 전에 먹은 그 약 그대로, 딱 그렇게 내놓아라.’ 왜 이렇게까지 얘기하나 싶어 당황했어요. 생각해보니 그때는 제가 낯설고 싫었던 거죠. 불안하기도 하고. 무료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고마워하는 마음 한편으로, ‘내가 공짜 환자라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까. 엉터리 진료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갖고 계시거든요. 그런 벽을 차근차근 깨나가면서 환자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촌지

그러면서 신 원장은 비로소 껍데기를 벗은 이들의 맨살을 만나게 됐다. 그 안은 말할 수 없이 여리고 따뜻했다.
 
“여기 병원이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벽 곳곳에 틈이 있죠. 그런 데를 허투루 보면 안 돼요. 가끔 그 속에서 돈이 나오거든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 원장이 다시 설명했다. 

“환자들이 그 속에 슬쩍 돈을 넣어놓고 가요. 얼굴 보고 돈 주기는 쑥스러운데, 또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싶으니까요. 종종 쪽지도 같이 나와요. ‘로또 5등에 당첨돼 돈이 좀 생겼습니다’ 같은 거요. 무료 진료를 받고 가면서 그렇게 1000원짜리, 5000원짜리 마음을 병원 벽 틈에 밀어 넣는 거죠. 초콜릿 하나, 껌 하나 들고 와 진료 책상에 슬쩍 올려놓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걸 받으면 참…. 정말 눈물 나는 촌지죠.” 

그래서 신 원장은 이곳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인연을 ‘환자들’이라고 했다. 

“대학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 후 이리로 달려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또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 선생님들, 아무런 대가 없이 환자를 맞고 청소하고 노숙인들에게 이발, 식사 제공, 목욕 봉사까지 해주는 봉사자분들을 만난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국고 보조 하나 없이 이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 후원자분들도요. 요셉의원의 두 축은 봉사와 후원입니다. 그분들과 함께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 과정에서 신 원장 자신도 참 많이 변했다. 그는 요셉의원에 온 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예전엔 하기보다 들을 일이 더 많은 말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먼저 인사드리는 것, 그리고 마음을 다해 감사를 표현하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누구를 뵙든 먼저 인사하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는 얘기를 들어요.” 

신 원장의 요즘 고민은 요셉의원이 있는 지역이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건물이 헐리면 오직 이곳에 의지하던 많은 환자를 어디서 돌봐야 할지 걱정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요셉의원에서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이 다시 세상에 뛰어들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자활의 기틀을 마련해주고 싶은 욕심이 커지고 있다. 요셉의원 의무원장을 처음 맡을 때 정진석 당시 추기경이 부탁했던, ‘전인적인 치료’의 완성은 결국 자활을 돕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저 다음’에 대한 걱정도 좀 있습니다. 우리 요셉의원의 가장 큰 문제가 ‘대타’가 없다는 거예요. 저뿐 아니라 봉사자들도 하루 빠지면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휴가조차 못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병원의 경우 어느 날 갑자기 한 분이 돌아가셔도 티가 잘 안 나잖아요. 벌써 누군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는 그게 안 돼요. 그게 항상 문제예요.” 

물론 신 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요셉의원에서 일할 생각이다. 그의 꿈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까지 요셉의원 봉사를 계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일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를 생각하면 종종 아찔할 때가 있다고 했다. 

“아마도 제가 여기 있으니 지금은 누구도 ‘제가 선생님의 뒤를 이어 원장 할게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괜찮아요. 뜻있는 분이 있다면 제게 슬쩍 귀띔해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 일 하고 싶다’고요. 언젠가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된다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노숙인의 친구, 요셉의원

요셉의원은 고(故) 선우경식 초대원장(1945~2008)이 1987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처음 문을 연 후 줄곧 노숙인, 행려자, 빈민의 병원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설립 10년 후인 97년 영등포구 판자촌의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에 새로 둥지를 틀고 올해로 20년이 됐다. 

이곳에선 매일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정신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치과 등 20여 개 진료과에서 자원봉사 의사들이 오후 1시부터 5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환자를 진료한다. 종교 탄압을 피해 한국에 입국했으나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들은 노동 중 부상, 며느리는 결핵, 손녀는 심장천공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파키스탄 50대 난민 등 한국 사회에서 어떤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요셉의원 문을 두드린다. 

이곳에서는 의사뿐 아니라 여러 자원봉사자가 이들의 생활을 돌보고, 관계 부처를 수소문해 주민등록을 회복시키거나 의료보호대상자가 되도록 하는 등 갖가지 도움도 제공한다. 현재 신완식 원장 외에도 매달 100여 명의 의료봉사자와 훨씬 더 많은 수의 일반 봉사자가 함께 병원을 꾸려가고 있다. 신 원장은 “주민등록이 생기면 다른 병원에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으라고 그분들을 다른 병원에 보내드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오곤 한다. 요셉의원에서는 봉사자들이 모든 이에게 ‘님’자를 붙이고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우하는데, 다른 병원에 가면 ‘저런 사람이 여기 왜 왔지’ 하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셉의원에서 병을 이기고 마음의 위로를 받은 사람이 자활에 성공한 뒤 봉사자나 후원자가 돼 요셉의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요셉의원 스토리에 감동받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후원에 나서기도 한다. 폐지를 줍는 노부부가 수익금의 20%를 매달 후원하거나, 90대 노인이 평생 아껴온 금반지를 후원금으로 내놓는 등 가슴 찡한 이야기도 많다. 1997년 요셉의원 이전 당시 선우경식 초대원장은 “후원자가 3000명만 돼도 좋겠다”고 했다. 12월 13일 현재 후원자는 1만550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