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계자인 3남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정중부 “문관 쓴 놈은 씨를 남겨두지 말라”
이렇게 시작된 무신정권은 정중부, 경대승(慶大升), 이의민(李義旼), 최충헌(崔忠獻, 1149∼1219) 일가로 이어지면서 100년(1170∼1270)의 무신정권 시대를 열었는데, 그중 최씨 정권이 4대 62년(1196∼1258) 장기 집권했다. 그런데 ‘쿠데타는 쿠데타를 낳는다’는 정치의 격언처럼 정중부는 아들 정균(鄭筠)과 함께 이의방, 이고를 제거하고 시중 벼슬에 오르나 9년 후 26세의 청년 장수 경대승에게 살해됐다. 경대승이 4년 만에 병사하고 경주 천민 출신 이의민이 12년간 정권을 잡았으나 명종 26년(1196) 장군 최충헌에게 살해되면서 최씨 일가의 장기집권 시대가 시작됐다. 최씨 무단정치의 서막을 장식한 최충헌은 과연 누구인가.
최충헌은 우봉 사람으로 상장군 최원호(崔元浩)의 아들인데, 음서로 행정실무를 담당한 도필리(刀筆吏)가 돼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신란 이후 무신들의 권력 장악에 자극받아 도필리를 버리고 무반직으로 바꿨다. 명종 4년(1174)에 발생한 조위총의 난 때 공을 세워 출세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그 후 계속 승진해 섭장군(攝將軍)에 올랐다. 1196년 그의 아우 최충수(崔忠粹)가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자신의 집비둘기를 강탈해 간 것에 항의하다 싸움을 벌이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최충헌이 직접 이의민의 목을 베 저잣거리에 효수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명종에게 ‘봉사 10조’를 올려 국정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명종을 몰아내고 평양공 왕민(王旼)을 신종(神宗)으로 옹립해 왕권까지 장악했다. 이렇게 되자 국가의 모든 권력이 최씨 일가에 집중됐다. 최충헌은 명종, 신종 2명의 왕을 폐하고 신종, 희종, 강종, 고종 4명의 왕을 옹립했는데, 고종대에 들어오면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그가 거동할 때 무장한 위병이 반경 10리를 가득 채웠고, 수행하는 조정의 관원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심지어 거란군이 침략했을 때 관군보다는 최충헌 사병의 군사력이 강했을 정도였다. 그런 최충헌이 71세로 죽자 그의 맏아들 최우(崔瑀, ?∼1249, 후일 최이(崔怡)로 개명)가 자연스럽게 실세 교정도감(敎定都監)의 장(長)인 교정별감에 올라 권력을 이어받았다.
최근 북한 ‘김정일 왕국’은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구축하고, 연일 김정은 우상화 작업을 시도한다. 김정은이 7개 국어를 구사하고 3세 때 한문 시조를 썼다는 황당한 발표를 쏟아내고 있다. 9월 28일 44년 만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식화했다. 김정일은 27세의 아들을 조선인민군 대장이란 군사 칭호와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중앙위 위원으로 선임했다. 사탕알(경제)보다 총알(군사)을 더 중시하는 북한 나름대로의 선군정치(先軍政治) 통치방식에서 군(軍)의 2인자와 당(黨)의 중앙위원 자리를 차지하며 김정은은 순식간에 막강한 위상을 확보했다. 김정일이 1974년 후계자로 지명돼 6년 후인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인된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일이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에는 해외 취재진도 초청해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주석단에서 1만여 명의 병력과 미사일을 앞세운 군사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열병식 장면을 세계 언론에 공개했다. 2000만 북한 인민이 굶어죽는 경제난과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 속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3대 세습이라는 전무후무한 정치쇼를 자행하는 북한의 몰역사적, 몰상식적인 추태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왼쪽)김정은 후계 확정 후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입을 연 김정남이 “나는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말해 북한 후계구도 등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오른쪽)인기리에 방영됐던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의 한 장면.
국가 경영을 가업 계승으로 간주하는 21세기 초 북한의 3대 세습체제는 800여 년 전 고려 최씨 무단정치를 빼닮았다. 최씨 정권의 4대 세습과 군사 의존, 피의 숙청이 지금 북한 땅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노라면 북한 정권도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최충헌(23년 집권)·최우(30년 집권)·최항(崔沆, 1209∼1257, 9년 집권)·최의(崔, ?∼1258, 11개월 집권)로 이어지는 세습구조를 보면 김정은은 3대 세습인 최항에 해당하는데, 최씨 정권의 붕괴는 4대 세습인 최의 때였으나 붕괴 조짐은 3대인 최항 때 이미 나타났다.
특히 최항과 김정은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이 있다. 최우가 처음부터 최항을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고 사위 김약선(金若先)을 내정했다가 철회하고 송광사로 출가한 만전(萬全, 후일의 최항)을 지목했듯, 김정일도 처음엔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삼았으나 3남인 김정은으로 바꿨고, 출생 스토리도 최항이 최우의 적자가 아닌 기생 출신 서연방(瑞蓮房)의 소생으로 서자였듯이 김정은도 김정일의 정실이 아닌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고영희(高英姬, 1953∼2004)의 소생인 서자다.
김정은을 “그깟 놈”으로 비칭한 고(故) 황장엽(黃長燁, 1923∼2010)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3대 세습이 북한 내부 권력다툼의 명분이 돼 김씨 왕조는 망할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실 고려 최씨 정권이 4대 62년으로 종식될 때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세력은 오랫동안 최씨가에 충성을 바친 인물들이었고, 최씨 정권이 의존해온 야별초와 신의군, 도방 같은 사병조직이었음을 북한 김씨 정권은 분명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