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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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해군 소위 신~고합니다

해사 첫 女생도 57기 21명 전원 임관 … 2010년께 함장·女제독 탄생 예고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3-06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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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승! 해군 소위 신~고합니다

    소위 임관식을 앞둔 해사 57기 여생도들의 당당한 모습. 앞에서부터 김경민, 이숙연, 안효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이하 해사)가 금녀(禁女)의 벽을 허문 지 4년. 1999년 57기 21명의 첫 여자 생도들을 맞으며 전용 내무실, 미용실, 취미생활실까지 마련했던 해사가 이제 그들을 내보낼 채비로 분주하다. 3월 중순으로 예정된 졸업 임관식에서 대대장 강정민 생도를 비롯해 21명의 여생도가 소위 계급장을 달게 된다. 이들은 55.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교해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졸업한다. 사관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남자 생도들조차 10~20%가 중도 포기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해사 여생도 1기생들의 전원 졸업은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57기 여생도들에겐 ‘독종’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독종’ 별명 … 해병대에도 2명 지원

    “원래 여생도는 20명만 뽑을 계획이었습니다. 가입교 훈련 직전 한 여생도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교가 불투명해 결원으로 보고 1명을 추가 선발했는데 다리를 다친 생도가 끝내 훈련을 받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21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5주간의 가입교 훈련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두 명은 탈락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여생도 21명 모두 5주가 아니라 4년을 버텨냈어요.”

    57기의 선발과 교육 전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안성기 중령(해사 교육지원과장)은 우려했던 여생도들의 체력문제는 남생도의 85% 수준까지 끌어올린 상태여서 군복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자신했다. 오히려 그들의 넘치는 투지가 남자 생도들까지 자극해 상향평준화됐다고 흐뭇해한다.

    2월28일 오전 해사 연병장에서는 전 생도들이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2주 전 입교한 신입생도들의 상기된 표정 사이로 ‘5학년’이라 불리는 57기 졸업생들의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 보인다. 4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보텀’(배 밑바닥이라는 뜻으로 1학년을 가리키는 말)으로 만났던 이숙연, 안효주, 김경민 생도를 예비 소위의 자격으로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다.



    당시 김경민 생도는 가입교 훈련 도중 입은 다리 골절상으로 수술까지 받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5주간의 가입교 훈련을 이수하지 못할 경우 입교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대로라면 그는 첫번째로 중도 탈락하는 여생도가 될 뻔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사에 지원한 김생도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부상에서 회복되면 그동안 못했던 훈련까지 다 받겠다”며 투지를 불태웠고, 학교측도 그의 고집에 손을 들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지금은 “먹을 것만 주면 하루 종일이라도 수영할 자신이 있다”고 할 만큼 체력의 열세를 극복한 상태. 김생도는 졸업 후 항해 병과를 지원했다.

    필승! 해군 소위 신~고합니다

    내무반에서 만난 그들은 여느 대학생처럼 발랄했다. 민간인 남학생과의 미팅 횟수를 물어보자 웃기만 한다.

    반면 이숙연 생도는 다른 여생도들에 비해 한 뼘쯤 큰 키에다 타고난 운동선수. 고교시절 단거리 선수였던 실력을 십분 발휘해 남생도들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평소 “네가 해병대를 지원하지 않으면 누가 가겠느냐”던 동기들의 ‘조언’대로 해병대를 지원했다. 4년 전 취재노트를 들춰보니 당시 장정길 교장(현 해군참모총장)이 여생도들의 진로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띈다. “해군에는 여성들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병과가 많습니다. 또 매년 해사에서 20명 가량이 해병대에 지원하는데 조만간 여자 해병대원도 나올 겁니다. 모두 본인의 희망에 따를 겁니다.” 예상대로 2명의 여학생이 해병대에 지원했고, 19명이 자신이 희망하는 해군 병과를 찾아갔다.

    항해 병과를 지원한 안효주 생도는 동기들 중에서 유난히 작고 가냘픈 인상이다. 안생도는 “솔직히 구보 같은 체력훈련을 잘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말한다. “1학년 때는 마냥 힘들기만 해서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첫 해사 여생도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나중에는 그만두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더군요.”

    그들이 군복 바지를 군화 속에 넣어 입는지 빼서 입는지조차 모르던 시절, 오히려 훈련교관이나 선배, 남자 동기생들이 더 노심초사했다. “저렇게 의욕만 앞세우다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여생도들에겐 이 또한 불만이었다. 이숙연 생도는 “사실 학교도 여생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해낼 수 있을까, 다치면 어쩌나 하다 보니 훈육교관이나 선배 생도들이 저희를 ‘과보호’한 부분도 있어요. 체력훈련을 하다 여자가 낙오하면 ‘여자가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식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김경민 생도도 새내기 시절 고학년들(사관학교에서는 1·2학년을 저학년, 3·4학년을 고학년이라고 한다)이 여생도를 ‘치외법권’이니 ‘비닐하우스’니 하며 구별 짓는 게 가장 싫었다고 한다.

    오해와 편견 넘고 ‘군인의 길’

    그래서 여생도들은 필요 이상으로 오기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가입교 훈련의 하이라이트라 할 ‘내한훈련’ 때도 조그만 해프닝이 있었다. 2월 초 차가운 겨울바다에 들어가 동료들과 서로 껴안으며 생존술과 단결력을 기르는 훈련. 여훈련교관은 3명의 여생도가 생리중인 것을 알고 연병장 대기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들이 그런 이유로 훈련에 빠질 수 없다며 한사코 참가를 고집해 결국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겨울바다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여생도의 내무실이 남생도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점도 불만이었다. 여생도들이 한목소리로 같은 건물, 같은 층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끝에 57기가 4학년에 올라갈 무렵 이 문제가 해결됐다. 이처럼 금녀의 벽을 허물고 들어온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하나씩 없애갔다. 1월 61기 신입생의 가입교 훈련 때 3학년 김근향 생도가 여생도 최초로 신입생 훈련소대장이 됐다며 매스컴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들은 이미 해사에 여생도가 10%에 이르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결과 아니냐며 못마땅해했다.

    3명의 여생도에게 해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고 했더니 일제히 해상순항훈련이란다. 이들은 지난해 10월8일부터 올 1월30일까지 115일간 구축함인 광개토왕함(3800t급)과 천지함, 제주함 등에 나눠 타고 전 세계를 돌았다. 해사 졸업반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여생도 21명이 함선에 승선해 4만7000km의 태평양 횡단훈련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젯거리였다.

    이렇듯 지난 4년 내내 57기 여생도들은 ‘최초’라는 수식어와 싸워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체력적인 문제는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나를 해군사관생도가 아닌 여자 생도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최초의 해사 여생도를 잊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께 이들이 소령 계급을 달고 최초의 여함장이 될 때, 나아가 여성 최초의 해군제독이 탄생할 때 다시 한번 57기 해사 여생도 21명의 이름을 불러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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