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시설 생활노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정한 기본적 권리와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 (중략) 국가와 시설은 생활노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제정한 ‘시설 생활노인 권리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인요양원 등 노인복지시설 생활자의 상당수가 기본적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일부 노인요양원의 경우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로 만든 급식을 지속적으로 노인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1월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채널A ‘먹거리 X파일’에 따르면 일부 노인요양원은 유통기한이 두 달 이상 지난 식재료를 급식에 사용했다. 한 노인요양원은 유통기한이 지난 소시지를 잘게 썰어 일부는 기르는 닭의 사료로 쓰고, 나머지는 노인들 밥상에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로 첫째, 정부의 관리 감독 소홀을 꼽았다. 서울 강북구에서 노인요양원을 운영하는 강모 씨는 “관할구청에서 1년에 한두 차례 불시 점검을 나오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는 수준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점검을 나오는데, 보통 식단표가 잘 걸려 있는지 살펴보는 정도의 점검”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노인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케어라이츠’의 한수연 대표는 “먹거리는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 요소다. 미국의 경우 노인요양시설을 관리 감독할 때 특히 급식의 질과 안전성 부분을 꼼꼼하게 살피는데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이 부분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느슨한 관리 감독, 솜방망이 처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여러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강모(23) 씨도 “노인요양원들이 남는 식재료를 처리하기 위해 하루 한 끼 정도는 당초 식단표와 다른 메뉴를 내놓는다.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인 건강을 위해 영양의 균형을 맞춘 식단표를 짜고 이를 지키는 것이 노인요양시설의 기본 책임이라고 할 때 이러한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노인요양시설의 식품안전규정 위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음식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15일 영업 정지 처분을 받지만, 노인요양원의 경우 30만~50만 원의 과태료만 부과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감독기관이 노인요양원의 식자재 유통 과정을 관리 감독하는 일에도 소홀하다고 비판했다. 상당수 노인요양원은 입찰을 통해 식자재 유통업자를 선정하는 대신 지인 등 사적인 통로를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재료가 ‘덤’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전국상인연합회 관계자는 “거래 관행상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심지어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폐기하지 않는 상인들도 일부 있다. 이를 막으려면 납품 과정에 대한 관리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업무수행지침’에 따르면 시설에 사는 노인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이는 행위는 폭행, 신체구속 등과 다르지 않은 ‘노인 학대’ 행위다. 한수연 대표는 “노인요양원의 존재 이유는 노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노인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철학 정립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