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땐가 무술영화에 심취해 태권도장엘 나갔습니다. 몇 달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가만히 보니 사범이라는 자가 아주 편하게 돈을 벌더군요. 만날 똑같은 지르기, 발차기 연습만 시키다가 시간 좀 지나면 품세 하나 달랑 가르쳐주고 승급 심사비를 챙겼습니다. 이 정도면 집에서 혼자 태권도교본 보며 해도 되겠다 싶어 바로 그만뒀습니다. 소년 무도인의 꿈은 그걸로 땡!
고교시절엔 여러 번 자퇴할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 다 참고서에 나오는데, 왜 밤늦도록 서슬 시퍼런 교사들 등쌀에 시달리며 이 고생을 하나 싶었습니다. ‘그까이 꺼 대충’ 독학해도 검정고시 패스하고 내신등급 올려 얼마든지 좋은 학교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행여나 실천에 옮겼다면? 게을러터진 자퇴생은 讀書‘無’遍義自‘滅’로 치달았겠지요.
까칠한 낯가림에다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더해져 남에게서 뭔가를 진득하게 배워내질 못합니다. 남이 내 고유의 리듬을 무시하며 끼어드는 게 싫고, 남이 잠시나마 내 자유를 구속한다는 뻑뻑한 느낌이 싫습니다. 그래서 기타는 사흘을 배우다 말았고, 내 몸과 차의 일체화 과정을 못 기다려주는 강사가 꼴 보기 싫어 도로연수도 딱 두 시간 받고 끝냈습니다. 덕분에 여전히 악보를 못 읽고, 나이 먹어도 방어운전에 미숙합니다. 와인이 좋으면 조용히 즐길 것이지, 동호회다 뭐다 몰려다니며 스월링한답시고 시끄럽게 잔 딸그락거리고 해마다 11월이면 보졸레 누보를 전세기 가득 들여와 유난 떠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덕분에 여전히 라벨을 볼 줄 몰라 그저 주머니 사정에 맞춰 와인을 집어듭니다.
결과적으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이렇게 살면 늘 갑(甲)의 배포로 호기를 부릴 수 있기에 아드레날린이 덜 나와 뱃속은 참 편안합니다. 그러나 이런 학습관은 취미생활에나 적용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생계와 직결되는 배움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내 가족이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낯가림과 자만심은 절대 금물. 꼼꼼한 독학도 워밍업, 스트레칭에 불과합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발품을 팔아서 재야 고수들의 가르침에 겸손하게 귀 기울여야겠지요.
![讀書百遍義自見](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9/04/10/200904100500001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