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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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보수가 동결’은 의사협 선전포고

의약분업 철폐 ‘선택분업’ 쟁취 또 선언 … 정부·약사회 “2.65% 인상 내부 불만 무마하려는 행동”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2-11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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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보수가 동결’은 의사협 선전포고

    2000년 7월 ‘올바른 의약분업’을 주장하며 파업에 나선 대한의사협회 회원들. 이들은 최근 이 ‘올바른 의약분업’이 바로 ‘선택분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인상을 반대합니다. 의료수가를 동결하겠습니다.”

    12월2일 대한의사협회(회장 김재정·이하 의협)가 한 중앙 일간지에 실은 광고는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미 11월28일 정부가 내년에 건강보험료를 6.75%, 의료수가(의료행위에 대한 가격)를 2.65% 인상하겠다고 확정 발표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광고 내용이 기존 의협의 주장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의사들도 보험가입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환자를 치료한 대가로 정부(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강공단)로부터 받는 보험급여(의료수가)를 동결하겠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이다. 이는 곧 노조가 스스로 협상권을 포기하고 임금을 동결하기로 한 것과 마찬가지다.

    진료과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의료수가는 곧 의사의 소득 정도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다. 물가가 매년 오르는데 의료수가를 동결하면 의사들은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의협은 2000년 7월 이후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해 정부로부터 총 5차례에 걸쳐 40%에 가까운 의료수가 인상을 이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의료대란’으로 불린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고, 당시 회장이자 현 회장이기도 한 김재정씨가 구속되는 사태(현재 대법원 계류 중)도 빚어졌다. 그런 의협이 갑작스럽게, 그것도 일간지 광고를 통해 의료수가를 동결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실제로 의협은 광고를 낸 다음날인 3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2004년도 의료수가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정된 보험료 및 의료수가를 원상태로 환원시켜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광고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에 그동안 의료수가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시민단체는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의협의 발표 이면에 감추어진 저의를 알아내기 위해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도대체 의사 사회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수가 원상태 환원시켜달라” 공문



    ‘의보수가 동결’은 의사협 선전포고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중앙 일간지에 게재한 광고.

    표면적으로 나타난 모습을 보면 의협은 ‘의료수가 동결’이라는 극단적인 대응을 통해 ‘의약분업 철폐’라는 숙원을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완전 철폐까지는 아니더라도 철폐하자는 분위기라도 조성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의협은 이번 광고를 통해 건강보험료를 절감하는 대안으로 ‘선택분업’을 내놓았다.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택분업은 처방전은 의사가 발행하되, 그에 따른 약의 조제권은 의사와 약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제도.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는 처방전을 받은 병·의원이나 약국 중 어디서 약을 받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시민단체와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는 “선택분업 상황에서 귀찮게 누가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겠느냐”며 “선택분업을 하자는 것은 의약분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해왔다.

    의협은 의약분업 도입 당시 이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의약분업을 해도 ‘올바른 분업’을 해야 한다”고 외쳐왔다. 여태껏 자신들이 바라는 올바른 분업이 바로 ‘선택분업’임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대외에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협은 이번 광고를 통해 그동안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지지해온 정부와 시민단체, 약사회 등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약품 판매에 따른 마진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약품 판매에 대한 권리를 의사측이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선택분업만 되면 한 해 동안 의료수가를 동결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의협은 우선 정부와 약사회를 겨누어 포문을 열었다.

    “의사의 조제권을 빼앗아 강제 시행된 현 조제위임제도(의약분업)는 조제료란 항목으로 2000년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4조7000억원을 낭비한 실패한 제도입니다.(미국·영국·독일 등 거의 모든 국가에는 조제료가 없습니다.) 투약 조제는 현행 의료법상 의료행위입니다.(대법원 판례, 보건복지부 유권해석)”

    ‘의보수가 동결’은 의사협 선전포고

    12월2일 보건복지부 기자실에서 의료수가 동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회장과 간부들.

    그러자 약사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약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궤변과 억지주장의 되풀이며 오만과 편견에는 치료약이 없음을 재확인시켜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약사회 관계자는 “의협이 의료수가와 보험료의 인상률을 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회(이하 건정심)에 10.6%의 의료수가 인상을 제시했다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자 내부 비판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겉과 속이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맹공격했다. 약사회는 “미국 영국 독일 등에도 조제료는 존재한다”며 “보험재정을 축낸 주체는 약사들이 아니라 고가약 처방, 부당청구 등으로 의약분업 후 27조1000억원을 가져간 의사들”이라고 반박했다.

    의협의 다음 공격 상대는 건강보험 요금의 부과 및 징수와 보험급여 지급을 담당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강공단). 의협은 “건강공단이 1만명 이상의 인력과 매년 1조원 이상의 경비를 소모하면서 파업만 일삼고, 구조조정 대상인 2300명을 보건소의 건강증진사업에 전용하려고 한다”며 “연간 1000억원 이상인 건강공단 부속병원 적자를 국민의 보험료로 메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건정심’ 투표 직전 일방적 탈퇴

    건강공단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광고 내용 전체가 사실과 전혀 다르고, 의협이 잘못된 광고를 통해 국민에게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고 건강공단의 운영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비난하고 의협에 대해 명예훼손 등 법적인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협의 공격에 더욱 열받은 곳은 오히려 건강공단과 평소 불협화음을 내던 전국사회보험노조(이하 보험노조). 보험노조는 공문을 통해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넘는 34.2%가 감원됐는데 무슨 헛소리냐”며 의협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보험노조의 한 관계자는 “의협이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고 의료수가 동결을 주장하는 것은 의료수가 인상 협상에 실패한 의협 지도부의 과오를 의약분업과 거기에 동참한 다른 단체에게 돌리려는 무마책”이라고 덧붙였다. 의협과 보험노조는 서로 공문을 주고받으며 반박전을 펴다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TV토론에 합의하고 일단은 싸움을 중지한 상태다.

    건강공단과 보험노조, 약사회의 반박 내용을 종합해보면 의협이 갑자기 의료수가 동결과 선택분업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은 무리한 수가 인상안을 냈다 협상에 실패한 의협 지도부가 의료수가 동결로 국민들의 동정 여론을 이끌어내고, 의약분업 철폐와 선택분업 쟁취 투쟁에 나섬으로써 회원들의 비난이나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이다.

    사실 내년 의료수가 협상을 두고 시민단체는 일찌감치 의협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쳐왔다. 2003년 보험재정 당기수익이 예상을 깨고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복지부의 발표가 있자 시민단체는 건강보험료를 동결하고 흑자 분을 급여 혜택 확대에 사용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의협은 의료정책연구소와 인제대 경영연구소의 수가 분석을 들어 10.6% 인상안을 내놓았다. 11월28일 열린 건정심은 어느 한쪽의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보험료 6.75%, 의료수가 2.65% 인상을 결정했다. 건정심은 의료 공급자측 8명(의협,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등)과 공익대표 8명, 가입자측 8명(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소비자연합 등) 등 총 24명이 협의와 투표 절차를 거쳐 다음해의 보험료와 의료수가를 결정하는데 의협측 위원 2명이 투표 직전 퇴장했다. 의협은 건정심이 끝난 후 “건정심의 수가 결정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이라며 ‘건정심 탈퇴’를 선언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건정심은 절차상 전혀 하자가 없었다”며 “이미 결정된 의료수가 인상안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은 의협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왜 생떼를 쓰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건정심의 공급자측 위원 중 의협을 빼고는 그 누구도 의료수가를 동결할 마음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수가 동결’ 광고를 내는 것은 일종의 제스처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과연 의협의 ‘의료수가 동결 선언’에 숨어 있는 진의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국민들의 시선은 의약분업 철폐 논쟁과 건강공단에 대한 험담보다 의사들의 ‘의료수가 동결’ 자체에 고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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