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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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끌어내라, 우리가 상관하리라”

소돔 남자들 ‘롯’ 구하러 간 천사 위협 … 성적 타락 온갖 죄악 결국 유황불로 심판

  • 조성기/ 소설가

    입력2003-12-11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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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 끌어내라, 우리가 상관하리라”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소돔을 빠져나가는 롯의 가족들.

    동성애자를 영어로 ‘호모섹슈얼(homosexual)’이라고 하고 그중에서도 남성 동성애자, 즉 남색자를 ‘소도마이트(sodomite)’라고 한다. 소도마이트는 원래는 문자 그대로 ‘소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소돔 사람들이라는 말이 남색자를 의미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소돔 사람들이 남색을 즐긴 증거가 성경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 조카 롯도 함께 데리고 나왔는데, 아브라함과 롯이 차츰 재산이 많아지자 집안 싸움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이 집안의 화합을 위하여 롯에게 땅에 대한 선택권을 먼저 주어 자기를 떠나도록 하자 롯은 소돔 쪽을 택하고 그곳으로 가서 기거했다.

    소돔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은 군사를 동원하여 롯을 구해주기도 했다.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하였으나 아브라함은 일체 선물을 거부했다. 소돔지역이 얼마나 부패했고 더러운 죄악에 빠져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색은 ‘소도미’ 남색자는 ‘소도마이트’



    소돔이 얼마나 죄악에 빠져 있었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사건을 통하여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천사 세 명이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그중 두 명이 롯을 구하기 위해 날이 저물 무렵 소돔으로 들어간다. 롯이 그들을 맞아 손님 접대를 하고 있는데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그 손님들을 내놓으라고 시위를 한다.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하리라’를 뜻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원래는 ‘알다’ ‘깨닫다’는 뜻이지만 성적 결합을 의미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할 때의 동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도 ‘야다’다.

    성적 결합이 상대방을 완전히 알아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적으로 결합한다고 해서 상대방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성적 결합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롯의 집에 온 손님들은 사실 천사였기 때문에 그 외모가 수려하여 남색자들이 탐할 만하였을 것이다. 소돔 남자들이 그 손님들을 윤간이라도 할 듯이 위협하자 롯은 손님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기 딸들을 내놓겠다고 제안했다. 롯이 소돔 사람들한테 동성애로 성적 쾌락을 맛보려 하지 말고 이성애자가 되라고 제안한 셈이다.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딸들을 내놓겠다는 롯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딸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 롯이 원망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롯이 자기 딸들을 소돔 사람들에게 성적인 노리개로 내놓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미인계를 써서 그들의 마음을 잠시 달래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롯의 손님들을 탐하는 소돔 사람들은 롯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 안으로 밀치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손님으로 가장하고 있던 천사들이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 문을 찾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에 의해 멸망하였다. 성적 타락을 비롯한 온갖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었다.

    “손님 끌어내라, 우리가 상관하리라”

    성경 속의 ‘소돔’지역은 현재 중동지방의 사해 근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 소돔은 고모라와 더불어 죄악의 도시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특히 남색자들의 도시라는 수치를 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색을 ‘소도미(sodomy)’라고 하고, 남색자를 소도마이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사디즘’(성적 상대한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얻는 이상 성행위)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사드 공작의 소설 ‘소돔 120일’을 보면 온갖 동성애와 남색의 양태들이 구역질 날 정도로 노골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드 공작이 노린 것이 바로 독자들의 구역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구역질 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간접체험을 통해서나마 맛보라는 것이다.

    성경 또한 구역질 나는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책이다. 인간이 동물과도 교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레위기’에서는 그에 관한 규정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성경서 엄금 ‘동성애’ 새 각도에서 조명 움직임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서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이런 수간(獸姦) 관습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하게 언급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남자가 남자와 교합하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성경에 그에 관한 규정도 마련해놓았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 율법에서는 여자들의 동성애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원래 율법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남자들한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남색에 관한 규정만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여자들의 동성애가 드문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킨제이 보고서(인간의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밝힌 연구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여자 동성애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킨제이는 여성 피실험자 중 20%가 한 번쯤은 동성애 경험이 있으며 그중 13%는 오르가슴에까지 이르렀고, 그 가운데 2%는 자기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그런데 킨제이보다 2000년 먼저 여자들의 동성애에 관하여 언급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바울이라는 사도다. 그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로마의 타락상을 염두에 두고 동성애에 관하여 언급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요즈음 일반 학계나 신학계에서 이와 같이 성경에서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동성애에 관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조건 정죄(定罪)하고 경원시하기보다 그 근본 원인을 찾아보고, 치료가 필요하다면 치료법에 관해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생화학적 내지는 생물학적 접근이요, 또 하나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이다.

    동성애가 과연 치료의 대상인가에 관한 논란도 끊임없이 일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동성애 부부를 정식 부부로 인정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벨(A.P.Bell) 같은 학자는 동성애 연구에 대하여 모라토리움(moratorium·대외 채무에 대한 지불유예)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는 동성애에 관하여 섣불리 결론 내리지 말고 동성애의 본질에 관하여 더욱 폭넓게 탐구하고 연구한 연후에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동성애에 관한 연구는 연구자 자신의 태도, 가치관, 신앙 등이 오히려 연구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울 역시 동성애자를 무조건 정죄했다기보다 스스로‘상당한 보응’을 받고 있는 그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워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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