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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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혀와 입술의 무용, 무용은 온몸으로 하는 언어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춤은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체험 같은 것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1-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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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속 숫자들의 나열은 무엇일까. 필자가 ‘dance’라는 제목으로 쓴 시(詩)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가 그린 같은 제목(La danse)의 그림은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도 있고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술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숫자가 8까지만 반복되는 이유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의 시 ‘dance’는 숫자 1부터 8까지가 반복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김재준 제공]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의 시 ‘dance’는 숫자 1부터 8까지가 반복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김재준 제공]

    두 가지 질문을 해보려 한다. 첫 번째 질문, 숫자만으로 시가 될까. 당연히 된다. 시의 재료는 말이고 숫자와 기호 모두 언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 필자는 시에서 왜 8까지만 쓴 뒤 다시 처음부터 반복할까. 실제로 춤을 춰 보면 그 의문이 풀린다. 무용 선생님은 끊임없이 숫자를 세는데,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센다.

    “One, two, three, four, five, six, seven, eight.”

    대부분의 춤이 그러하듯 4분의 4박자에 맞추어 스텝을 밟다 보면 9와 10은 없다. 예를 들어 발레의 기본 용어는 모두 프랑스어다. 발레를 추며 숫자를 세면 엉(un), 두(deux), 트와(trois), 꺄트흐(quatre), 쌍끄(cinq), 씨스(six), 쎄뜨(sept), 위뜨(huit) 이렇게 된다. 마찬가지로 살사나 탱고 같은 라틴댄스를 배우면 스페인어로 숫자를 세야 한다. 우노(uno), 도수(dos), 뜨레스(tres), 꽈뜨로(cuatro), 씬꼬(cinco), 쎄이스(seis), 씨에떼(siete), 오쵸(ocho) 이런 식이다. 별개로 숫자 8을 제외하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 들어 춤을 배우는 한국인은 아주 많다. 춤이 원래 좋아서 배우기도 하지만 바른 자세와 건강을 위해서도 배운다. “내가 정말 몸치일까”하는 의문에서 취미로 발레에 도전하는 사람도 적잖다.



    필자는 연구년을 맞아 미국 스탠퍼드대에 갔을 때 ‘움직임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한 학기 수강했다. 로버트 윌슨의 공연에 참가도 했던 무용가가 15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는데 전속 피아노 반주자도 있었다. 발레의 기본 동작부터 시작해서 현대무용 작품 발표까지 시킨다. 수업에서 강조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몸짓으로 표현하기’다. 즉 창의성이 강조된다.

    시작은 정말 어렵다. 특히 “선생님이 할 땐 저렇게 쉬워 보이는 동작이 나에게는 왜 이리 힘이 들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몸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왜 힘이 들어갈까. 몸의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다. 몸에 힘이 있어야 진정한 ‘힘 빼기’가 가능하다.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양의 힘으로 빠르고 가볍게, 음악의 박자를 타고 몸이 날아다닌다.

    춤을 추며 어린아이로 돌아가기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춤’. [동아DB]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춤’. [동아DB]

    춤을 처음 출 때 겪는 ‘최초의 부끄러움 혹은 수줍음’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깊게 고민하지 말고 ‘멍청이’ 같이 춤을 춰 보자. 춤과 관련된 수업에서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춤을 추면 우리는 습관적인 수줍음과 두려움, 내성적인 태도를 버리고 눈부신 낯섦과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단 한 시간이라도 미친 듯이 춤을 추면 우리의 정상성이나 심각성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이 결정적으로 흔들릴 것이다.”

    일종의 ‘리셋 효과’가 아닐까.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체험 말이다. 필자가 무용 세미나를 연다면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언어가 혀와 입술의 무용이라면 무용은 온몸으로 하는 언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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