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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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붉은 사막에서 ‘타닥타닥’… 화성에서 최초로 관측된 번개 소리

[이종림의 사이언스 랩] 강한 바람이 만든 미니 번개 55차례 확인… 생명체 탐구에도 중요 단서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5-12-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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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정찰 궤도선이 포착한 먼지 소용돌이.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정찰 궤도선이 포착한 먼지 소용돌이.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붉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가는 모래만 흩날리는 고요한 풍경. 우리가 화성을 떠올릴 때 그려지는 모습은 먼지바람만 맴도는 침묵의 행성이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타닥’ 하고 스파크 튀는 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 인류가 지난 60여 년 동안 화성의 지질과 물 흔적, 고대 생명체 가능성을 추적해온 가운데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가 화성의 숨겨진 대기 환경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결정적 증거를 포착했다. 화성 대기에서 전기적 방전, 즉 번개 소리를 처음으로 기록한 것이다.

    정전기 수준의 미약한 번개 관찰

    번개는 대기 중에 쌓인 전하가 한순간에 방전될 때 나타나는 전기 현상이다. 이것이 일어나려면 입자들이 반복적으로 충돌해 정전기를 만들어내고, 그 전하가 충분히 축적돼야 한다. 그러나 화성은 대기압이 지구의 약 1% 수준으로 매우 낮고 기체 밀도도 희박해 지구처럼 거대한 방전 통로가 형성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화성에서는 번개가 발생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오랫동안 우세했다.

    그러나 조건을 조금 다르게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화성의 붉은 모래와 먼지는 대부분 규산염 광물로 이뤄진 절연체라 한 번 쌓인 전하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런 입자들이 모래 폭풍 속에서 수없이 충돌하면 표면 전하가 계속 축적된다. 여기에 이산화탄소로 이뤄진 건조하고 희박한 대기가 공기 중으로 전하가 흩어지는 것을 막아 시간이 지날수록 정전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축적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2009년 지상 관측 장비가 화성의 거대한 먼지 폭풍에서 비정상적인 마이크로파 신호를 포착했고, 최근 먼지 소용돌이(dust devil)를 모사한 실험에서도 전기장이 형성되는 과정이 관측됨으로써 화성에서 번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점차 커졌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쉽게 포착되지 않았다. 화성에서 예상되는 방전은 지구에서처럼 번쩍거리며 치솟는 번개가 아니라, 모래 입자 사이에서 수㎝ 크기로 스파크가 튀는 미니 번개(mini-lightning)에 가깝기 때문이다.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고 음향과 전자기 신호를 동시에 측정해야만 구별이 가능한데, 기존 탐사 장비는 이런 미약한 신호를 민감하게 잡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퍼서비어런스가 2화성년(지구 시간으로 약 4년) 동안 화성 대기에서 전기적 방전 음향을 총 55차례 기록했다. 목성과 토성에서는 이미 번개가 포착됐고 해왕성과 천왕성에서도 방전 신호가 감지된 바 있지만, 화성에서 번개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프랑스 툴루즈 천체물리·행성과학 연구소(IRAP),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 애리조나대 공동 연구진이 정밀 분석한 결과 퍼서비어런스가 감지한 신호는 단순한 소음이 아닌, 실제 방전에 따른 번개 소리라는 것이 확인됐다. 퍼서비어런스의 슈퍼캠 마이크가 바람과 모래 충돌음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대기 중 방전이 발생해 전자기 간섭이 일어나 소리와 전자기 신호가 함께 기록된 것이다.  

    이 2가지 신호는 일정한 순서를 따른다. 고주파 전자기 펄스가 먼저 감지되고, 수천 분의 1초 뒤 ‘타닥’ 하는 충격음이 이어진다. 전자기파는 즉시 방출되지만, 팽창한 공기가 만든 압력파는 느리게 이동하며 소리로 변한다. 이 시간차는 지구에서 번개가 칠 때와 동일한 패턴을 보여 실제 전기적 방전이 일어났음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화성의 번개는 강한 바람이 불 때 발생하고, 먼지 폭풍 전선과 관련 있다. 지구의 낙뢰는 약 10억 줄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반면, 화성의 번개는 0.1~150나노줄로 겨울철 정전기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화성에서는 번개가 하늘에서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지면 부근에서 외부로 퍼져나간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화성 대기 새 연구 분야 열어

    이번 발견은 화성 대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NASA의 MAVEN(Mars Atmosphere and Volatile EvolutioN·화성 대기와 휘발성 진화) 탐사선은 2014년부터 화성 상층 대기에서 태양풍과 충돌해 형성된 강한 전기장이 대기 이온을 우주 공간으로 끌어내는 ‘전기풍(electric wind)’ 현상을 관측해왔다. 이번 관측을 통해 화성의 상층 대기에서는 태양풍과 부딪치는 거대한 전기 흐름이, 지표 가까이에서는 먼지 폭풍이 만들어낸 미세한 방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화성의 기후 모델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전기장이 대기 흐름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기후 예측 정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전기 방전이 장기적으로 누적될 경우 센서 잡음과 광학 장비 오류, 통신 장애, 배터리 제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탐사 장비와 거주 모듈, 우주복 설계에도 이러한 전기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화성 탐사 장비로 대기의 전기 활동을 계측할 고감도 마이크와 전자기 센서가 표준 장비로 탑재될 가능성이 크며 로버, 궤도선, 착륙선을 연결하는 전기 관측 네트워크 구축도 논의되고 있다.

    이번 분석 결과는 화성의 화학적 환경과 생명체 탐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지구상에서 번개가 생명체 형성에 필요한 화학 성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이론이 있다. 화성의 번개 또한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연구진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화성에서 번개가 발생한다는 증거는 화성의 먼지 역학과 대기 화학, 유인 탐사 및 인류 거주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번 발견은 화성 대기에 대한 중요한 연구 분야를 열었으며, 전기 현상을 반영한 새로운 대기 모델 개발을 촉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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