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고기 중심의 고단백 식단은 아미노산 조성에 따라 세포에 다른 신호를 준다. GETTYIMAGES
붉은 고기 속 ‘이소류신’이 노화 촉진
단백질은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영양소로 여겨진다. 고단백 식단과 단백질 보충제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건강관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이런 단백질 만능주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연구진은 단백질 양보다 어떤 아미노산을 선택하느냐가 노화 속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총칼로리와 전체 단백질량은 유지하되, 특정 아미노산 비율만 조절해도 수명과 건강 지표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게재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연구진은 유전적 배경이 다양한 실험용 생쥐(HET3)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일반 식단, 전체 아미노산을 제한한 식단, 그리고 특정 아미노산만 선택적으로 줄인 식단을 각각 적용해 장기간 대사 상태와 건강 지표를 추적했다. 이때 조절한 필수 아미노산은 ‘이소류신(isoleucine)’이다. 이소류신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붉은 고기뿐 아니라 달걀과 유제품, 닭고기, 생선 등 다양한 식품에 들어 있는 필수 아미노산이다.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원에도 이소류신이 포함돼 있지만, 아미노산 조성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동물성 단백질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앞선 실험에서 이소류신 섭취를 제한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수컷 생쥐는 평균 33%, 암컷은 7%가량 수명이 연장됐으며, 근력과 지구력이 향상되고, 노화 관련 건강 지표들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이소류신을 적게 섭취한 생쥐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칼로리를 먹었음에도 체중이 과도하게 늘지 않았고, 혈당과 에너지 대사 지표가 더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 배경으로 세포의 영양 상태를 감지하는 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 경로를 꼽는다. mTOR은 세포가 성장 모드로 갈지, 유지·복구 모드로 전환할지를 결정하는 스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이소류신을 포함한 아미노산이 풍부할 때 mTOR은 성장과 합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이 신호가 장기간 유지되면 세포 내부의 손상된 구성 요소를 제거하는 자가포식(autophagy) 과정이 억제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공장 기계를 24시간 풀가동하느라 고장 난 부품을 고치고 내부를 청소하는 정비 시간이 줄어 기계가 빠르게 노후화되는 셈이다. 아미노산 제한은 이 과열된 스위치를 잠시 꺼놓음으로써 세포가 스스로를 청소하고 복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단백질은 세포에 보내는 신호
이번 연구는 단백질을 단순한 영양소가 아니라, 인체 상태를 조절하는 하나의 ‘신호’로 바라보는 최근 노화 연구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맥락은 또 다른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methionine) 제한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동물실험에서 단백질 총량을 크게 줄이지 않고 메티오닌 섭취만 낮춰도 체중 증가가 완만해지고, 혈당과 지방 대사가 비교적 안정되며, 노화 과정에 동반되는 기능 저하 속도가 더뎌지는 결과가 나왔다.BCAA(가지사슬 아미노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BCAA는 단백질 보충제에 쓰이면서 널리 소비돼왔다. 그러나 BCAA가 지속적으로 다량 공급될 경우 몸이 성장과 합성 신호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에너지 대사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런 상태가 인슐린 저항성 증가나 대사 부담과 연관될 가능성도 지적한다.
최근에는 나이 든 동물 개체를 대상으로 특정 아미노산을 제한해도 대사 건강에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실험 결과들도 보고됐다. 젊은 시기뿐 아니라, 비교적 늦은 시점에도 에너지 소비 증가와 대사 지표 개선이 관찰된 것이다. 이는 아미노산 조절이 노화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단기간 임상 연구에서는 메티오닌과 시스테인 같은 황아미노산 섭취를 낮추기 위해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고 식물성 단백질 비중을 높인 저황아미노산 식단이 체중과 혈당, 콜레스테롤 같은 대사 지표를 개선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메티오닌과 시스테인 섭취를 낮추자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대사 부담이 완화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들은 아미노산 제한과 노화의 연관성을 제시할 뿐, 이를 근거로 “아미노산 제한이 인간 수명을 늘린다”고 단정하기에는 좀 더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아미노산 섭취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최근 연구들은 끼니마다 아미노산을 계산하기보다 식단 방향을 조정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붉은 고기 중심의 식사를 콩이나 두부 같은 식물성 단백질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아미노산 신호의 강도를 낮춰 대사 부담과 장기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일정 기간 단백질 섭취를 완만하게 줄이거나 간헐적 단식 같이 식사 시간을 제한하면 몸이 ‘유지와 복구’ 모드로 전환되기 쉽다.
다만 이런 접근은 생애 주기에 따라 적용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 신체 성장이 완료되고 대사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중년기(40~64세)에는 동물성 단백질과 이소류신 섭취를 어느 정도 조절하는 전략이 노화 대응이나 대사질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반면 고령기(65세 이상)에는 무리하게 단백질을 제한하기보다 근감소증을 막기 위해 질 좋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