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가 다시 발생했다. 농가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전북 군산의 오골계 종계 농장에서 유통된 닭에서 시작된 AI가 순식간에 제주를 비롯한 전국 곳곳으로 퍼졌다. AI 바이러스가 이미 닭에서 오리로 옮은 다음이어서 또다시 겨울처럼 장기간 유행할 가능성도 있다.
그나마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가 단순한 데다, 바이러스의 활동성도 떨어지는 여름철이라 방역 당국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AI 유행을 비교적 빠른 시간에 잡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더 무서운 일은 따로 있다.
AI가 유행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다. ‘AI에 감염된 닭이나 오리를 사람이 먹어도 안전한가요?’ 안전하다! 설령 AI에 감염된 닭이나 오리라도 섭씨 75도 이상에서 30초 이상 익혀 먹으면 바이러스가 죽는다. 그러니 삶거나 튀겨서 먹는 닭이나 오리로 AI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 더구나 시중에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이나 오리가 유통되고 있을 확률도 거의 없다.
AI 바이러스, 돌연변이가 문제다
또 다른 걱정은 AI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는 일이다. 겨울에 우리나라에서 AI가 유행할 때 홍콩, 중국 등지에서는 AI 사망자가 나왔다. 그러나 이렇게 AI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흔히 AI 혹은 ‘조류독감’이라고 통칭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변종이 있다.당연히 각 변종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홍콩, 중국에서 환자가 나왔던 AI 바이러스는 H7N9형이다. 이 바이러스는 닭이나 오리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치명적이다. 2013년 3월부터 올해 5월 현재까지 중국에서 계속 환자가 나오고 있다(1512명). 이 가운데 600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약 40%에 이른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유행하는 것과 다르다. 이번에 확인된 바이러스는 H5N8형. 이 바이러스는 닭이나 오리를 집단 폐사로 몰고갈 정도로 위력적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인체 감염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AI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유행하는 H7N9형 바이러스가 2009년 ‘신종플루’처럼 전 세계로 퍼질 가능성은 없을까. 이 대목에서도 인류는 운이 좋았다. 지금까지 발생한 1500명가량의 환자는 대부분 닭이나 오리와 접촉한 환자였다. 그러니까 계절성 독감이나 2009년 신종플루처럼 공기를 통해 사람 대 사람(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전염된 것이 아니다. 독성이 강하지만 전염이 약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일은 아니다. AI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변종이 나오고 있고, 그 가운데 별종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 세계 보건 당국자들이 AI가 유행할 때마다, 또 새로운 AI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마다 바짝 긴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돼지는 닭이나 오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와 사람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모두 몸에 지니고 있다. 돼지 안에서 공기 중으로 전염이 가능한 사람 독감 바이러스와 독성이 강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만나 우연히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독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 있다.
정말로 이런 바이러스가 나온다면 인류에게는 대재앙이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인류 종말 시나리오가 나온다. 과학자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시나리오가 바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탄생한 전염성 강하고 독한 독감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이다(그 과정을 생생히 그린 소설이 스티븐 킹의 ‘스탠드’다. 피서용 소설로 제격이다).
영화나 소설 얘기가 아니다. 1918년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을 들어봤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최대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인구의 약 5%였다. 그런데 과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전 세계를 휩쓴 그 스페인독감을 유발한 바이러스는 H1N1형으로, AI 바이러스와 같은 종류였다.
AI 바이러스 공격, 인류의 자업자득
1997년 H5N1형 AI 바이러스가 조류뿐 아니라 종 간 장벽을 넘어 사람에게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약 80년 전, 또 다른 변종 AI 바이러스가 사람 대 사람 간 감염을 일으키며 대유행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치로 미뤄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AI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스페인독감 같은 끔찍한 대유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이 문제를 놓고 토론한 과학자 여럿의 의견은 똑같았다. “AI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시간문제다. 우리는 인류가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다.”
따져보면 자업자득이다. 오랫동안 닭이나 오리 같은 조류와 AI 바이러스는 평형 상태를 유지해왔다. 철새 등 야생조류가 몸속에 AI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데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가 단백질 공급원을 손쉽게 얻으려 닭이나 오리를 대량 밀집사육하고, 도시를 만들고 공장을 짓고자 야생조류 서식처를 파괴하면서 이 평형 상태가 깨졌다.
서식처가 파괴돼 갈 곳이 없어진 야생 조류는 전보다 훨씬 자주 인류의 삶터를 기웃거린다. 덩달아 야생조류 몸속의 바이러스도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대량 밀집사육하는 닭이나 오리는 저항성이 약하고 집단감염에도 취약하다. 바이러스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상의 숙주다. 그렇게 닭이나 오리를 점령한 바이러스가 이제 인간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전염병(감염병) 방역체계를 재점검하는 것이 시급하다. 2015년 메르스(MERS · 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을 때 우리는 대한민국의 전염병 방역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지금 이 시점에 메르스보다 ‘더 센 놈’이 덮친다면 그때와 다를까. 낙관하기 쉽지 않다.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굳이 언급하자면 해마다 독감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받기를 권한다. 몸의 면역계가 가급적 다양한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될수록 좋다.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을 때 몸의 면역계가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인류가 계속해서 운이 좋을 수 있을까. AI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고자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는 닭이나 오리의 신세가 왠지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