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관절통 등 각종 통증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그러니 대부분 약으로 손쉽게 해결하려 한다. 통증은 불쾌한 느낌이나 짜증 같은 감정까지 동반하는데, 진통제를 복용하면 한순간 싹 사라질 때도 있다. 그런데 효과 좋은 진통제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중독을 걱정하게 된다.
주의할 것은 많은 사람이 ‘중독’이라는 단어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잘 듣던 약이 어느 날 갑자기 효과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거나(내성·tolerance), 약효가 좋아 자꾸 약을 찾게 될 때(의존성·dependence) 중독을 걱정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중독이란 말은 남용 행동에 대한 조절 능력 상실, 심리적·신체적 부작용, 부적응적인 행동 양식, 집착, 갈망 등으로 규정된다. 쉽게 말해 어떤 약이 먹고 싶어 약국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거나 약사를 흉기로 위협해서라도 그 약을 구하려 할 때 비로소 중독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진통제에 ‘중독’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이 진짜 걱정하는 게 ‘내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카페인을 함유한 복합 성분의 진통제는 내성이 생긴다.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데, 지속적으로 하루에 3회 이상 복용할 경우 진통 효과가 점차 감소한다.
반면 우리가 많이 복용하는 단일 성분 진통제는 내성이나 중독보다 신장 독성, 간 독성, 위장 장애 같은 ‘부작용’이 문제가 된다. 진통제가 잘 듣지 않는 것은 내성이나 중독 때문이 아니라 통증에 맞는 약을 고르지 못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
이와 달리 실제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진통제도 있는데 바로 마약성(아편계) 진통제다. 마약성 진통제는 주로 암 환자나 교통사고 환자 등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때 처방하는데, 통증을 가라앉힐 뿐 아니라 쾌감, 환각을 주기도 한다.
아편계라고 부르는 것은 마약성 진통제가 뇌에 존재하는 아편 유사 수용체에 작용해 마치 아편을 먹은 듯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약을 찾는 행위(drug-seeking behavior)나 중독(addiction)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유독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을 꺼리는 환자가 많다. ‘마약성 진통제=마약’이라는 오해 탓에 꼭 필요한 환자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마약감시기구(INCB)가 “한국은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너무 적다.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을 정도다.
그런데 약물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통증을 방치하는 것이다. 그 경우 신경계가 변형돼 통증이 만성화된다.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률은 0.0001~0.19%로 보고돼 있다. 의학적으로 중독을 우려해 약 사용을 꺼릴 만한 수치는 아니다. 만성 통증을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통증 자체가 우리 몸의 면역력을 약화해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고, 환자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쳐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통증은 스쳐 지나가는 증상이 아니라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봐야 한다. 통증 치료는 육체는 물론,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과정이다. 적절한 진통제 사용과 통증 관리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