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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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법치 훼손 우려”

법제는 ‘보이지 않는 사회간접자본’…‘법제한류’로 아시아 공동번영 뒷받침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7-06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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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법 개정안, 법치 훼손 우려”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여론과 국민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박근혜의 거부권 행사 이유보다 정치인 박근혜의 거부권 행사 배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국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친박근혜(친박)계 대 비박근혜(비박)계의 여권 내 파워게임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부 수반인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도대체 어떤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는지가 좀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다.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점에서다. 7월 1일 오후 세종시 법제처장실에서 제정부 처장(사진)을 만났다. 법제처는 행정입법의 보루로, 대한민국 행정기관의 법과 제도가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도록 법제의 조율을 담당하는 곳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법률은 그 의미와 내용이 명확해야 제대로 지켜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법 개정안은 그 의미가 명확지 않아 해석상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 해석상 논란이라면 ‘강제성’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상임위)가 행정입법의 수정, 변경을 요청할 수 있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요청받은 사항을 처리해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수정, 변경 요청받은 내용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명확지가 않아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회에서조차 ‘강제성’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행정입법권 침해=국민 피해

    ▼ 만약 ‘강제성’을 띤다면….

    “정부가 행정입법의 내용을 국회 상임위 요청대로 수정, 변경해야 한다면 상임위가 행정입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더욱이 본회의 의결이 아닌 상임위가 행정입법을 고치도록 한 것은 행정입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삼권분립이란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6월 25일 법제처는 ‘습지보전법 시행규칙’을 예로 들어 국회 상임위의 수정, 변경 요청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 공동 부령으로 돼 있는 습지보전법 시행규칙에 대해 환경부를 관장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해양수산부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같은 조문에 대해 각각 다른 내용으로 고치라고 하는 경우 상임위의 수정, 변경 요청이 상충돼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 제 처장은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입법권 침해뿐 아니라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행정입법에 대한 심사권까지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107조 제2항에서는 명령, 규칙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법원이 심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국회법 개정안과 같이) 국회 상임위가 행정입법의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정입법을 수정, 변경하도록 한다면 행정입법에 대한 심사권을 법원에 부여한 헌법에 위반될 여지가 있는 거죠. 행정입법권 침해로 정부의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행정입법이 갑자기 바뀌면 행정입법이 계속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경제활동을 한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여야 합의로 5월 29일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 244명 가운데 211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해 통과시켰던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과연 국회는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어떻게 처리할까.

    숨은 규제 정비 사업

    행정고시 25회 출신인 제 처장은 법제처에서 33년을 근무한 ‘정통 법제맨’. 그는 “국토와 국민이 국가를 구성하는 하드웨어라면 법과 제도는 국가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운영체제 같은 소프트웨어”라며 “법과 제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국민의 삶과 사회발전에 꼭 필요한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이라고 강조했다.

    ▼ 법제처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이 무엇입니까.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기업의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규제 법령과 숨은 규제를 찾아 고치는 ‘숨은 규제 정비’에 초점을 맞춰왔어요. 역대 정부 최초로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전체 훈령과 예규, 고시, 지침 등 행정규칙 1만2000건과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조례 6만 건을 전부 조사해 ‘숨은 규제’를 집중적으로 정비하고 있습니다.”

    ▼ 숨은 규제가 많던가요.

    “지난해 경제, 사회 부처의 행정규칙 7000건을 검토해 300건이 넘는 숨은 규제를 찾아내, 이 가운데 150건 이상의 행정규칙을 고쳤어요. 조례의 경우 서울시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방자치단체 10곳의 조례 2600여 건을 전면 검토해 지역 주민에게 부담을 주거나 지역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규제 660여 건을 정비 과제로 확정해 정비 중에 있습니다. 자치법규는 지역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자치법규 속 숨은 규제를 정비하고 자치법규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곧 지역 주민의 행복 및 지역 경제 활력 증진과 직결됩니다. 조례 속에 숨은 규제를 찾아내 정비하는 것 못지않게 그런 규제가 조례에 신설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조례 시행 전 법령 위반 사항과 규제사항을 차단하는 자치법규 입법 컨설팅도 실시할 계획입니다.”

    ▼ 우리의 법제 경험을 다른 국가와 공유하는 ‘법제한류’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 아시아 각국에서 우리나라 법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하던 때의 법제와 우리가 현재 강점을 가진 정보기술(IT), 금융, 건설, 환경, 부패 방지, 공정거래 등에 대한 자료 요청이 많습니다. 지난해에는 1960~70년대 우리나라 고도성장기 법제를 영문으로 정리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56개국에 배포했습니다. 베트남 등 12개 국가와는 법제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아시아국가 간 법제 관련 회의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제도가 다른 나라 법제에 반영되면 해당 국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활동에도 도움이 됩니다. 법제한류의 지속적인 확산으로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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