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6월 IMF체제가 몰고 온 구조조정 바람이 금융권을 강타했을 때 일이다. 당시 동화은행 이사대우였던 이형택씨는 대통령의 처조카라는 신분 때문에 퇴출 위기에 몰린 동화은행을 구출할 유일한 인물로 통했다. 부장에서 이사대우로 승진한 그는 이재진 당시 행장 등과 연일 대책회의를 가졌고 “살려달라”는 임직원들의 애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얼마 뒤 은행 직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청와대로 향했다.
당시 동화은행 고위관계자를 만나 퇴출 과정을 취재했던 한 언론인의 설명. “동화은행이 퇴출되기 전날인 6월26일 이형택씨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나온 후 임원들에게 ‘(퇴출 명단에서) 빠졌다. 안심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시 이행장과 임원들은 그가 이희호 여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형택씨의 책상 다이어리에는 일개 금융기관 임원으로서는 만나기 어려운 경제부처 고위 공직자들과의 회동 스케줄이 빽빽이 메모돼 있었고, 이를 알고 있는 은행 임직원들은 이형택씨의 말을 100% 믿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6월27일 토요일 상황이 급변했다. 느닷없이 신한은행 직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다른 퇴출은행들은 은행 문을 봉쇄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동화은행은 이씨 말만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격을 당한 것. ‘점령군’들은 곧바로 동화은행 무장해제에 들어갔고 동화은행은 퇴출의 길을 걸어야 했다. 대통령 처조카 이씨의 첫번째 로비는 이렇게 ‘1일 천하’로 끝났다.
98년 새 정부 출범 이후 이형택씨는 그 이전까지 DJ 처조카라는 ‘특수 신분’이 가져다준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특별대우를 받았다. 동화은행 퇴출 이듬해인 1999년 1월까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몇몇 재벌기업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표적인 기업이 H그룹. H그룹은 98년 후반기 이씨에게 사람을 보내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다. 자리는 당연히 임원급. 당시 재벌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정책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와 별다른 연이 없는 기업일수록 불안감은 더 컸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통할 수 있는 로비스트 확보에 필사적이었고 H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그러나 이형택씨는 이 재벌기업의 제의를 뿌리쳤고 얼마 후 H그룹은 혹독한 세무조사를 당했다. 그 직후 이씨는 “주변 인사들로부터 ‘그때 그 자리에 갔으면 대통령께 큰 누를 끼칠 뻔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02년 1월, 진도 앞바다의 작은 섬 죽도를 무대로 한 이형택씨의 로비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이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마치 탐정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물섬’ 파동에 대해 “이형택씨답다”고 말한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조용한 그의 평소 스타일과 어울린다는 것. 그러나 보물찾기란 황당한 사업에 청와대와 국정원, 해군 등 국가 유력기관이 총동원된 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의 역량과 활동 영역을 아는 사람들일수록 이 점에 대해 의혹을 표한다. 과연 이형택씨 혼자 힘으로 국가기관들을 동원한 것인가.
1월25일 오전,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매우 긴장한 얼굴로 취재진과 마주 앉았다. 그는 취재진이 이형택씨 관련설을 묻자 시종일관 ‘사실무근’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날 저녁 조간신문 가판에 청와대 고위인사 개입설이 보도되자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이형택씨의 부탁을 받고 국정원 엄익준 전 차장에게 관련 정보 확인을 요청했다”고 시인하고 나선 것.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이형택씨와 청와대가 ‘이용호 게이트’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은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불길은 청와대와 로열 패밀리를 향해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
현재 파악된 바에 의하면 이씨와 국가기관을 맺어준 인물은 이기호 수석이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의문은 이수석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개입했느냐는 점. 대통령 경제수석이 일개 금융기관 간부를 만난 것부터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설혹 그가 대통령의 처조카라 하더라도 그의 민원 해결을 위해 국정원에 부탁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수석 역시 누군가의 지시나 부탁으로 보물찾기 프로젝트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형택씨 또한 막무가내로 청와대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사전에 ‘채널’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의혹은 부인에서 시인으로 바뀐 1월25일 이수석의 엇갈린 처신에서 기인한 바 크다. 그가 말을 바꾼 배경이 의혹을 부채질한 것.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180도 달라진 그의 태도에 대해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처음에 부인하다 나중에 시인한 것은 몸통 보호를 위한 꼬리 자르기 아니냐”고 ‘몸통론’을 들고 나왔다.
이런 정치 공세 외에 한나라당 일부에서 나오는 지적들은 좀더 정교하고 치밀하다. 한나라당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이수석의 발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더 이상의 권력 실세가 있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장부대변인은 26일 “이수석 관련 사항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이어 던진 4개의 논평도 ‘준비된’ 것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당3역 회의에서 “보물선 사업에 참여했던 조모씨 등이 ‘이희호 여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이형택씨에게서 들었다는데 이에 대해 해명하라”고 치고 나왔다.
한나라당은 이형택씨와 이희호 여사의 각별한 관계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주목해 왔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민주당에서도 읽힌다. 민주당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여사는 친정 쪽 피붙이인 이씨를 아꼈다고 한다. 이여사에게 깍듯했던 이기호 경제수석 역시 이런 모습을 보고 이씨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었다는 것. 이 인사는 “이형택씨가 이여사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그는 한때 ‘청와대로 통하는 비밀 통로’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민원과 청탁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이형택씨의 움직임을 지켜봤던 재계 한 인사도 비슷한 생각을 토로했다. “이씨는 과거 김대통령의 정치자금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청와대에서도 유독 그를 챙기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동화은행 퇴출 후 재벌기업의 영입 제의를 뿌리친 것도 청와대 차원의 ‘자리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당시 재계에 팽배했다. 퇴출기관 임원이 퇴출기관은 물론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발탁되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는 사실상 이변으로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재계에서는 청와대 경제관련 모 비서관이 자리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특검팀 수사에서 김대통령 차남 홍업씨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특검은 최근 이용호씨가 KBS 이모 부장과 5억원의 차명계좌를 운영해 온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은 이용호씨가 이부장에게 금품을 준 것은 김대통령 차남인 홍업씨에게 접근하기 위한 ‘시드 머니’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모 부장은 지난 97년 대선 때부터 홍업씨와 상당한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이형택씨가 이러한 배경을 동원해 전방위 로비에 나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통령 처조카라는 특수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몰고 온 어지러운 이권 개입 및 로비 행태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기호 경제수석의 도움을 받은 그는 국가정보원 엄익준 당시 2차장(사망)과 만났다. “보물 발굴사업이 성공하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될 테니 지원해 달라”는 그의 말에 국정원은 보물선 발굴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게 했다. 이형택씨는 이어 2000년 1월 충남 논산 계룡대에서 오승렬 해군 정보작전참모부장(현 해군 참모차장)을 만나 “발굴사업을 하고 있는데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기관은 이씨의 요청을 받고 사실상 보물찾기에 동참했다. 부도 직전의 건설사가 발행한 220억원의 회사채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인수하고 그 건설사에 무보수 물막이 공사를 시킨 점도 의혹이다.
황당한 보물섬 프로젝트는 한 편의 거대한 국가사업으로 포장되어 증권시장을 왜곡하고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2000년 상반기 보물발굴을 재료로 급등한 삼애인더스의 시세차익으로 이용호씨가 벌어들인 돈은 150억원. 이를 제대로 파헤칠 경우 로비 대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개입 인사들이 드러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김대통령은 청와대로 번진 불길을 차단하기 위해 개각이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대통령의 친인척 하청기관으로 전락, 농락당한 충격을 개각 카드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검과 야당 그리고 언론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 ‘몸통’을 찾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동화은행 고위관계자를 만나 퇴출 과정을 취재했던 한 언론인의 설명. “동화은행이 퇴출되기 전날인 6월26일 이형택씨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나온 후 임원들에게 ‘(퇴출 명단에서) 빠졌다. 안심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시 이행장과 임원들은 그가 이희호 여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형택씨의 책상 다이어리에는 일개 금융기관 임원으로서는 만나기 어려운 경제부처 고위 공직자들과의 회동 스케줄이 빽빽이 메모돼 있었고, 이를 알고 있는 은행 임직원들은 이형택씨의 말을 100% 믿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6월27일 토요일 상황이 급변했다. 느닷없이 신한은행 직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다른 퇴출은행들은 은행 문을 봉쇄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동화은행은 이씨 말만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격을 당한 것. ‘점령군’들은 곧바로 동화은행 무장해제에 들어갔고 동화은행은 퇴출의 길을 걸어야 했다. 대통령 처조카 이씨의 첫번째 로비는 이렇게 ‘1일 천하’로 끝났다.
98년 새 정부 출범 이후 이형택씨는 그 이전까지 DJ 처조카라는 ‘특수 신분’이 가져다준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특별대우를 받았다. 동화은행 퇴출 이듬해인 1999년 1월까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몇몇 재벌기업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표적인 기업이 H그룹. H그룹은 98년 후반기 이씨에게 사람을 보내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다. 자리는 당연히 임원급. 당시 재벌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정책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와 별다른 연이 없는 기업일수록 불안감은 더 컸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통할 수 있는 로비스트 확보에 필사적이었고 H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그러나 이형택씨는 이 재벌기업의 제의를 뿌리쳤고 얼마 후 H그룹은 혹독한 세무조사를 당했다. 그 직후 이씨는 “주변 인사들로부터 ‘그때 그 자리에 갔으면 대통령께 큰 누를 끼칠 뻔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02년 1월, 진도 앞바다의 작은 섬 죽도를 무대로 한 이형택씨의 로비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이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마치 탐정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물섬’ 파동에 대해 “이형택씨답다”고 말한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조용한 그의 평소 스타일과 어울린다는 것. 그러나 보물찾기란 황당한 사업에 청와대와 국정원, 해군 등 국가 유력기관이 총동원된 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의 역량과 활동 영역을 아는 사람들일수록 이 점에 대해 의혹을 표한다. 과연 이형택씨 혼자 힘으로 국가기관들을 동원한 것인가.
1월25일 오전,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매우 긴장한 얼굴로 취재진과 마주 앉았다. 그는 취재진이 이형택씨 관련설을 묻자 시종일관 ‘사실무근’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날 저녁 조간신문 가판에 청와대 고위인사 개입설이 보도되자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이형택씨의 부탁을 받고 국정원 엄익준 전 차장에게 관련 정보 확인을 요청했다”고 시인하고 나선 것.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이형택씨와 청와대가 ‘이용호 게이트’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은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불길은 청와대와 로열 패밀리를 향해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
현재 파악된 바에 의하면 이씨와 국가기관을 맺어준 인물은 이기호 수석이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의문은 이수석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개입했느냐는 점. 대통령 경제수석이 일개 금융기관 간부를 만난 것부터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설혹 그가 대통령의 처조카라 하더라도 그의 민원 해결을 위해 국정원에 부탁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수석 역시 누군가의 지시나 부탁으로 보물찾기 프로젝트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형택씨 또한 막무가내로 청와대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사전에 ‘채널’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의혹은 부인에서 시인으로 바뀐 1월25일 이수석의 엇갈린 처신에서 기인한 바 크다. 그가 말을 바꾼 배경이 의혹을 부채질한 것.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180도 달라진 그의 태도에 대해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처음에 부인하다 나중에 시인한 것은 몸통 보호를 위한 꼬리 자르기 아니냐”고 ‘몸통론’을 들고 나왔다.
이런 정치 공세 외에 한나라당 일부에서 나오는 지적들은 좀더 정교하고 치밀하다. 한나라당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이수석의 발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더 이상의 권력 실세가 있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장부대변인은 26일 “이수석 관련 사항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이어 던진 4개의 논평도 ‘준비된’ 것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당3역 회의에서 “보물선 사업에 참여했던 조모씨 등이 ‘이희호 여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이형택씨에게서 들었다는데 이에 대해 해명하라”고 치고 나왔다.
한나라당은 이형택씨와 이희호 여사의 각별한 관계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주목해 왔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민주당에서도 읽힌다. 민주당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여사는 친정 쪽 피붙이인 이씨를 아꼈다고 한다. 이여사에게 깍듯했던 이기호 경제수석 역시 이런 모습을 보고 이씨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었다는 것. 이 인사는 “이형택씨가 이여사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그는 한때 ‘청와대로 통하는 비밀 통로’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민원과 청탁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이형택씨의 움직임을 지켜봤던 재계 한 인사도 비슷한 생각을 토로했다. “이씨는 과거 김대통령의 정치자금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청와대에서도 유독 그를 챙기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동화은행 퇴출 후 재벌기업의 영입 제의를 뿌리친 것도 청와대 차원의 ‘자리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당시 재계에 팽배했다. 퇴출기관 임원이 퇴출기관은 물론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발탁되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는 사실상 이변으로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재계에서는 청와대 경제관련 모 비서관이 자리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특검팀 수사에서 김대통령 차남 홍업씨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특검은 최근 이용호씨가 KBS 이모 부장과 5억원의 차명계좌를 운영해 온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은 이용호씨가 이부장에게 금품을 준 것은 김대통령 차남인 홍업씨에게 접근하기 위한 ‘시드 머니’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모 부장은 지난 97년 대선 때부터 홍업씨와 상당한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이형택씨가 이러한 배경을 동원해 전방위 로비에 나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통령 처조카라는 특수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몰고 온 어지러운 이권 개입 및 로비 행태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기호 경제수석의 도움을 받은 그는 국가정보원 엄익준 당시 2차장(사망)과 만났다. “보물 발굴사업이 성공하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될 테니 지원해 달라”는 그의 말에 국정원은 보물선 발굴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게 했다. 이형택씨는 이어 2000년 1월 충남 논산 계룡대에서 오승렬 해군 정보작전참모부장(현 해군 참모차장)을 만나 “발굴사업을 하고 있는데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기관은 이씨의 요청을 받고 사실상 보물찾기에 동참했다. 부도 직전의 건설사가 발행한 220억원의 회사채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인수하고 그 건설사에 무보수 물막이 공사를 시킨 점도 의혹이다.
황당한 보물섬 프로젝트는 한 편의 거대한 국가사업으로 포장되어 증권시장을 왜곡하고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2000년 상반기 보물발굴을 재료로 급등한 삼애인더스의 시세차익으로 이용호씨가 벌어들인 돈은 150억원. 이를 제대로 파헤칠 경우 로비 대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개입 인사들이 드러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김대통령은 청와대로 번진 불길을 차단하기 위해 개각이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대통령의 친인척 하청기관으로 전락, 농락당한 충격을 개각 카드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검과 야당 그리고 언론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 ‘몸통’을 찾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