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의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 [뉴스1]
선박용 에너지원으로 가치 높은 SMR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 들어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조감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SMR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대형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기와 출력이 작은 탓에 대형 원전보다 발전 단가가 높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로 한동안 외면받던 SMR은 최근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데다, 탄소중립 요구가 커지면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원자력발전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기본 원리는 이렇다. 핵분열 반응에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기를 가동하는 것이다. 흔히 쓰이는 가압수형 경수로의 경우 1·2차 냉각재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량이 풍부한 큰 강이나 바다 주변에 지어야 한다. 원전에는 원자로는 물론, 냉각수를 고압 상태로 만드는 가압 장치와 냉각수 대류를 위한 펌프 등 민감한 구성 요소가 많다. 이 같은 부품들을 한데 보호하려면 거대한 구조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편이다,
한국 재래식 잠수함, 지속잠항 능력 부족
북한은 2022년 10월 내륙 저수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뉴시스]
그럼에도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면 SMR은 반드시 개발·보급해야 하는 미래 에너지원이다. 원전 부지를 확보하는 데 제약이 적고 안전성도 우수해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서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SMR은 선박, 나아가 잠수함용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동력원이 될 수 있다. 잠수함 건조와 SMR 부문에서 모두 세계 최정상급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SMR을 활용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은 장보고급 9척, 손원일급 9척, 도산 안창호급 3척 등 20척 넘는 잠수함을 보유 중이지만, 하나같이 재래식이라는 한계가 있다. 디젤 발전기와 납축전지를 사용하는 구형 잠수함 장보고급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신기술이 적용됐다는 손원일급마저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지속잠항 능력에 뚜렷한 한계가 있다. 조선업계나 운용국 정부가 발표하는 기술 자료를 보면 AIP 시스템을 갖춘 잠수함의 지속잠항 능력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4주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잠수함이 해류에 밀려 복원력을 상실하지 않는 수준의 최소 동력만 사용했을 때 얘기다. 최대속도로 물속을 달리면 단 몇 시간 만에 배터리가 바닥날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한국 해군 잠수함은 최근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 중인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전략잠수함에 대응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중은 대잠 작전이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출항 후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을 막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북한 잠수함 기지 인근 수중에 매복해 있다가 타깃이 출항하면 근접 거리에서 추적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응 전술이다. 지속잠항 능력이 부족한 한국 해군 잠수함은 그럴 능력이 없다.
수차례 무위에 그친 한국 핵잠의 꿈
북한이 지난해 9월 진수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 [뉴시스]
한국군의 미사일 조기 경보 레이더는 모두 북쪽을 보고 있다. 북한 잠수함이 동해 공해상으로 빠져나와 레이더 사각지대에서 SLBM을 쏠 경우 막기 어렵다. 더욱이 북한은 자기네 SLBM에 핵탄두가 탑재됐다고 주장한다. SLBM 대응 수단을 갖추지 못하면 한국은 북한의 기습 핵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한국 해군에 장기간 수중 잠항이 가능한 핵잠수함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한국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핵잠수함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362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핵잠수함 도입을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됐다. 다만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데다, 여러 변수로 실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선 공약에 따라 핵잠수함 타당성 검토 연구가 시작됐다. 당시 필자와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가 주도한 연구에서 “정치적 문제만 해결되면 10년 안에 핵잠수함 도입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남포 앞바다에서 SLBM 쏘면 3분 만에 평양 타격
고무적인 연구 결과에도 핵잠수함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은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우선 한국이 핵물질을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려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핵잠수함에 들어가는 원자로의 연료 농축도가 몇%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대상이며, 한국은 이를 외부로부터 공급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IAEA와 핵공급국그룹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동의와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일부 군 인사가 한국 핵잠수함의 가공할 위력이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결국 핵잠수함 사업은 다시 사장됐다.
한국 핵잠수함은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이라는 심각한 안보 위협을 간단히 무력화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승조원 체력만 받쳐준다면 몇 달이든 물속에서 매복할 수 있어 북한 잠수함이 감히 바다로 나올 생각을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핵잠수함이 기존 KSS-Ⅲ 배치(batch) 1·2급 잠수함처럼 탄도미사일 수직발사관을 갖춘다면 유사시 원산만이나 남포 앞바다에서 북한의 허를 찌를 수도 있다. 북한도 레이더 대부분이 남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측면에서 갑자기 발사된 탄도미사일에 대단히 취약하다. 특히 남포 앞바다에서 탄도미사일을 쏠 경우 평양까지 3분 안에 도달한다. 한국형 핵잠수함에서 쏘아 올린 미사일은 북한 지도부가 피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 있다. 게임 체인저를 넘어 ‘터미네이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간 한국은 주변 나라들의 치열한 건함 경쟁에도 해군력 증강에 소홀했다. 핵잠수함 개발은 주변국과 크게 벌어진 해군력 격차를 만회하는 자산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북한의 위협이 심화하고 국제 정세가 크게 악화되면서 이제 한국에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한국형 핵잠수함의 조기 전력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국민 또한 이를 적극 응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