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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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분리막을 더 튼튼하게”… 열폭주 방지 기술 경쟁 치열

K-배터리, 안전 신기술로 신뢰성 높여… 설계 단계부터 효율적 열 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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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4-08-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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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열폭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열폭주의 직접적 원인은 배터리 내부 분리막 손상이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陽極)의 리튬이온이 반대편 음극(陰極)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기가 생긴다. 여기서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 단락(短絡)되는 것을 막아준다. 크기가 매우 작은 리튬이온이 분리막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서서히 이동해 안전하게 전기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분리막이 손상되면 다량의 리튬이온이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대량의 열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전해질이 증발하고 밀폐된 배터리 셀이 폭발한다. 폭발로 인한 화재가 다른 배터리 셀까지 연쇄적으로 파급되면 걷잡을 수 없이 열폭주가 일어난다.

    분리막이 손상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대표적 원인으로 △배터리 셀 제조 과정에서 불량 △외부 충격에 의한 물리적 훼손 △과충전 △덴드리머 결정(結晶) 등이 꼽힌다. 우선 배터리 결함이나 교통사고 등 외부 충격으로 분리막이 찢어지면 열폭주 위험성이 커진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오류 등으로 배터리가 과충전되는 경우에도 사고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 배터리 전해질 안에서 생성되는 뾰족한 덴드리머 결정도 분리막 손상 원인으로 꼽힌다. 덴드리머 결정은 생성 속도가 느리고 크기가 매우 작아 현 기술로선 예방이 어렵다. 이번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를 일으킨 전기차의 경우 주차 상태였고, 이렇다 할 외부 충격도 확인된 바 없다. 향후 당국의 정밀 감식을 통해 구체적인 원인이 규명돼야 하지만, 배터리 내부 단락에 의한 사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배터리 화재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기차의 미래가치와 효용을 감안해 지금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이지, 근거 없는 ‘포비아’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미래가치 높은 전기차, 지속적 연구개발 필요”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열폭주 현상 메커니즘을 규명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임종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김원배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삼성SDI 공동연구팀은 배터리 열폭주 현상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방사광 가속기 기반의 X선 회절 기법으로 배터리 안을 관찰한 결과, 양극과 음극 사이 화학종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자가 증폭’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자가 증폭 과정이 급속도로 발생하면 열폭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존에는 열폭주 과정에서 배터리 셀 내부 전극과 전해질이 구체적으로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관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연구진은 음극재를 자체 개발한 코팅 기술로 감싸 음극에서 시작되는 자가 증폭을 막는 기술도 개발했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어떤 물질을 썼는지에 따라 크게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나뉜다. 고성능 전기차에는 주로 강한 출력과 높은 에너지 밀도가 특징인 삼원계 배터리가 쓰인다. 그 덕에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지만 열 안정성이 낮아 열폭주 위험성을 안고 있다. LFP 배터리는 화재 위험성은 비교적 낮은 반면, 출력이 떨어지는 게 흠이다. 국내 이차전지업계는 부가가치가 높은 삼원계 배터리에 주력하고 있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면서도 열 안전성을 확보하는 게 K-배터리 산업의 노하우다. 그간 저가 제품인 LFP를 주로 생산하던 중국 기업들도 삼원계 배터리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산 삼원계 배터리가 열폭주 원인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분리막 기술 높이고, 배터리 안전점검 의무화해야”

    국내 이차전지 제조업체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K-배터리’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04년 세계 최초로 세라믹이 코팅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개발 및 양산에 성공하는 등 기술 노하우를 확보했다. 프리미엄 하이니켈 제품의 경우 최적화된 설계를 통해 효율적으로 열을 제어하는 동시에, 모듈과 팩에 쿨링 시스템을 적용해 열 전이를 원천 차단한다. 올해 하반기 양산에 돌입하는 차세대 원통형 46시리즈에는 배터리 내부 폭발 에너지를 빠르게 배출해 발화를 막는 ‘디렉셔널 벤팅(Directional Venting)’ 기술이 적용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BMS 고도화에도 적극적이다. BMS 관련 특허 7000여 개를 바탕으로 안전진단 알고리즘의 예측 정확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셀·모듈·배터리 팩을 연계한 열전파 방지 기술을 개발해 적용 중이다. 자동차 메이커와 기술 공유를 통해 제품 개발 초기부터 최적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배터리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해 열전파 방지 기술개발과 검증, 적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로 각형 제품을 주력 생산하고 있다. 알루미늄 외장 덕에 외부 충격과 열에 강하다는 게 장점이다. 여기에 가스 배출 특수 장치도 적용했다.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 내부에 가스가 발생하면 이를 즉각 배출함으로써 사고 위험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SK온은 분리막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쌓는 ‘Z-폴딩’ 공법으로 제품 안전성을 높였다. 배터리 셀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동시에 양극·음극 접촉 가능성을 막아 화재 위험성을 낮춘 것이다. 향후 SK온은 배터리 셀 사이 공간에 방호재를 삽입해 열 확산을 막는 ‘S-팩’ 기술도 상용화할 계획이다.

    이차전지와 전기차는 한국의 미래 먹을거리 산업일 뿐 아니라, 인류의 편의를 높이는 첨단기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불신보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안전 기술을 높이는 일이다. 대한화학회장을 지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화재 위험성 탓에 전기차를 포기하자는 것은 패배주의적 태도”라면서 “결국 배터리 분리막을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하며, 정부가 기업을 독려해 안전 기술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20세기 초 등장한 비행기는 오늘날 전기차에 비해 훨씬 위험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술 수준을 높인 덕에 오늘날 항공기 사고율은 승객 100만 명 중 39명으로 자동차 사고 사망률과 비교해도 훨씬 낮다. 전기차 안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크게 두 갈래 해법이 필요하다. 우선 지속적인 연구개발이다. 중장기적으로 배터리 분리막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게 과제다. 이는 기업과 과학자, 엔지니어의 몫이며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둘째는 제도 개선으로, 당장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점검을 의무화해야 한다. 배터리에 이상이 없는지 수시로 점검해 혹시 모를 사고 위험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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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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