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랜드마크인 성 바울 성당의 성벽. [크라우드픽]
동서양을 잇는 거점 도시
마카오 역사는 포르투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카오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과거부터 유럽과 중국, 아시아를 바닷길로 연결하는 중개무역항이었다. 서구 열강이 앞다퉈 바닷길을 개척하던 시절, 포르투갈 탐험가 조르즈 알바르스는 1513년 중국 남쪽 끝 마카오에 첫발을 내디뎠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명나라로부터 거주권과 교역권을 따냈고 마카오에 눌러앉았다. 이후 포르투갈 정부의 후원을 받아 1575년 마카오에 로마 교황청 해외 관구가 설립되면서 동서양을 잇는 아시아 거점 도시로 성장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이 아편전쟁에서 승리해 홍콩을 지배하게 되는데, 마카오는 덩달아 포르투갈 땅으로 귀속돼 식민지 역사를 걸어야 했다. 마카오는 440여 년 동안이나 포르투갈 통치를 받았고, 1999년 12월이 돼서야 주권 회복과 함께 중국에 반환됐다.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유럽식도, 중국식도 아닌 마카오만의 특별한 스타일이 생겨났다. 이를 포르투갈인과 중국인 피가 섞인 혼혈인을 가리키는 매캐니즈(Macanese)에 빗대어 ‘매캐니즈 문화’라고 부른다. 이런 마카오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무엇인지는 마카오 반도 구시가지 주변에 가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마카오 그랜드 리소보아 카지노 호텔. [GettyImages]
마카오의 심장, 성 바울 성당
포르투갈 양식으로 지은 옛 건물들이 이색적인 ‘세나도 광장’. [위키피디아]
마카오는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천주교를 전파한 아시아 선교 활동의 전초 기지였다. 한국 최초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6년간 신학을 공부했던 곳도 바로 여기다. 꽃들의 성당으로 불리는 ‘성 안토니오 성당’은 김대건 신부의 발등 뼛조각을, 마카오 최초 성당인 ‘성 도미니크 성당’은 김대건 신부의 목상을 전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로렌스 성당’ ‘성 아우구스틴 성당’ ‘성 요셉 신학교와 성당’ ‘대성당’ ‘성 바울 성당의 유적’ ‘신교도 묘지’ 등 천주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축물들이 구도심 곳곳에 모여 있다. 한편에는 이곳이 중국 땅임을 잊지 말라는 듯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어민들을 보호하는 여신인 ‘마조’를 모시는 사찰인 ‘아마 사원’을 필두로 ‘콴타이 사원’ ‘나차 사원’ 등 중국 전통 사원들이 역사지구 곳곳에 빼곡하게 남아 있어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청 왕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에 서양식과 중국색이 가미된 이층집 ‘로우카우 맨션(Lou Kau Mansion)’을 비롯해 ‘무어리시 배럭(항무국)’ ‘로버트 호 퉁 경의 도서관’ ‘릴 세나도 빌딩’ ‘구시가지 성벽’ ‘몬테 요새’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주요 명소도 촘촘히 이어져 있어 여행길의 즐거움을 더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이자 등대인 ‘기아 요새’, 중국의 첫 서양식 극장인 ‘돔 페드로 5세 극장’, 마카오 역사지구 오르막길 한쪽에 자리 잡은 ‘만다린 하우스’도 꼭 둘러봐야 할 포인트다.
이 중 마카오의 상징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성 바울 성당’이다. 성당은 아시아 최초 유럽 스타일 대학인 성바울대의 일부였다. 17세기 초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인 카를루 스피놀라(1564~1622)의 감독 아래 종교 박해를 피해 온 일본인 천주교 석공들에 의해 1644년 완공됐다. 이 때문에 바로크풍의 유럽 건축물임에도 외벽에는 한자가 새겨져 있고 국화(菊花) 문양도 조각돼 있다. 이후 1835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화재로 건물의 목조 부분이 모두 타버렸고, 석조로 만든 성당의 전면부(파사드)와 지하실, 일부 벽면과 계단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하지만 넓고 길게 뻗은 위엄 있는 66개 계단과 그 위에 우뚝 솟은 성당의 우아한 색조는 언덕 구조의 지형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이 때문에 고풍스러운 파사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다른 일행이 등장하지 않는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는 편이 낫다. 성당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동서양 세계관을 담은 부조로도 유명하다. 바로크 양식의 가톨릭 건축물에 한자 문장이 새겨져 있어 역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해 질 무렵 성당 담벼락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마카오 전경 또한 이방인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마카오 세계문화유산 중 상당수는 극장이나 도서관, 공공기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동시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소중함과 의미를 공유했으면 하는 뜻도 담겨 있다. 동서양의 건축문화 예술이 융합된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카오만의 이국적인 매력과 정취를 만끽해보자.
미식의 도시, 마카오
여행 마무리는 역시 먹는 것이 최고다.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미식의 도시인 마카오에 왔으니 먹부림은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될 수 있다. 마카오에서는 중국요리 중에서도 가장 창의적이고 호화로운 요리인 광둥식 음식부터 정통 포르투갈 요리, 그리고 일명 ‘매캐니즈 푸드’로 불리는 퓨전 요리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마카오 하면 떠오르는 에그타르트, 육포, 아몬드 쿠키도 즐길 만한 간식거리다.
마카오는 묘한 매력을 가진 도시다. 한 문장으로 이 도시를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바다와 대륙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지형과 온화한 기후, 유럽 정취가 진하게 배인 중세 건축물 뒤로 자리 잡은 중국 전통문화부터 밤이 되면 호텔과 리조트에서 품어 나오는 형형색색 화려한 불빛까지 단순히 예쁘다는 표현에 가두기에는 마카오의 매력이 너무 아깝다. 오랜 역사와 함께 현대와 미래 모습을 간직한 마카오야말로 특별한 여행을 꿈꾸는 이에게 안성맞춤형 여행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