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태영호 의원(가운데)이 즉석에서 랩을 선보이고 있다. 윤선영 비서(왼쪽)와 이지민 비서(오른쪽)가 이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다. [조영철 기자]
윤선영(29) 비서가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진 촬영 중인 국민의힘 태영호(59) 의원에게 갑작스레 랩을 요청했다. 이순이 코앞인 태 의원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시작부터 화났나, 인터뷰 망했다’ 등의 생각이 스치는 찰나, 눈을 치켜뜬 태 의원 입에서 랩이 튀어나왔다.
“Yo~! 이번에는 2번일세, 2번 찍어 이겨낼세. 이번만이 이기는 길. 이번에는 2번일세.”
엇박(엇박자)과 정박을 넘나드는 독특한 플로. 단정하게 맨 넥타이와 그렇지 못한 손동작. 이곳은 미국 디트로이트인가, 국회 의원회관인가. 태 의원은 한껏 얼굴을 찡그린 채 “랩에도 이론이 있다. 바를 정(正) 자를 파괴하는 얼굴이 나와야 한다. 입을 비트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5분간 그의 랩 이론을 들은 후에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조선 것들아, 보고 좀 배워라”
태영호 의원과 보좌진이 만든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원 콘텐츠 영상 갈무리. [사진 제공 · 태영호 의원실]
화룡점정은 선거 이틀 후 ‘이대녀’(20대 여자) 표심 발언. 태 의원은 4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대의 마음을 이끌었다는 안도보다 왜 여전히 이대녀들의 표심을 얻지 못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썼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 지지율에서 오세훈 시장이 40.9%를 기록하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박영선 후보(44.0%)에 뒤처진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야권이 선거 승리에 지나치게 취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자성의 목소리였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4월 11일 페이스북에서 “남조선 것들아, 보고 좀 배워라”고 일갈했다.
한국 망명 6년 차 정치인은 어떻게 2030 마음을 잡을 수 있었을까. 국민의힘 내에서는 그를 두고 “만들어진 스타”라는 농담을 던진다. 젊은 보좌진의 콘텐츠 기획력이 ‘지금의 태영호’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태 의원도 이에 공감한다. 유튜브 이야기가 나오자 곧장 “담당 보좌진 3명이 모두 20대다. 이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유튜브용 컴퓨터도 4대 장만했다”고 자랑했다. 다만 보좌진의 공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젊은 보좌진이 콘텐츠를 기획해 가져가도 체면 구긴다며 반려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태 의원실의 윤 비서는 “주변에서 상관이 꼰대라 안 할 게 뻔하다며 기획안을 주기도 한다”면서 웃었다.
태 의원은 자신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정치에 대한 무지’를 꼽았다. 그는 “한국에 오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 문화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다”며 “수시로 보좌진의 생각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해선 안 된다는 확신이 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좌진의 생각을 따른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은 의원이 안 된다고 하면 그만둔다는데 이 친구들은 도리어 ‘생각이 잘못됐다’ ‘현실을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 정치 경험이 적다는 공통분모가 있어 오히려 말이 잘 통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래퍼 태미넴(태영호+에미넴) 역시 이렇게 탄생했다. 출근 시간대 유세차에서 큰 소리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전통적 방식의 선거운동이 효과적인지라는 의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보좌진이 내놓은 해법은 ‘랩과 막춤’이었다. 거부할 법도 하건만 태 의원은 곧바로 흰 모자를 돌려 쓴 채 랩을 하고 막춤을 췄다. 해당 모습은 현장은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이슈가 됐다. 관련 영상의 누적 조회수가 45만 회에 달한다. 성악을 전공한 윤 비서는 “기본적으로 음정과 박자가 엇나가는 스타일이라 직접 랩 연습을 도왔다. 최근 뮤직비디오 촬영을 앞두고도 2시간 가르쳤다. 실전에만 돌입하면 원래대로 되더라. 전공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대녀, 민주당은 과장, 국민의힘은 상무로 여긴다더라”
태영호 의원(오른쪽)이 4월 28일 의원실에 마련된 간이 스튜디오에서 보좌진의 요구에 맞춰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이대녀 표심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됐다. 해당 논평은 태 의원이 이대녀 보좌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입장문을 개고하면서 등장했다. 태 의원은 “보좌진에게 물으니 이대녀는 민주당은 회사 과장쯤으로, 국민의힘은 상무쯤으로 느낀다더라. 친구는 어렵더라도 과장급으로는 내려와야 하지 않겠나. 1차적으로는 젊은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웃음은 2030세대와 어울리는 단초다. 2030세대가 정치권에 가진 거부감을 웃음으로 허물어뜨린 후 이들을 정치 현안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청년들이 직접 입법 활동을 하는 ‘태입법프로젝트’도 이렇게 시작됐다. 태 의원은 의원실에 빽빽하게 놓인 컴퓨터와 책상을 가리키며 “2030세대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지역 청년들이 직접 입법조사처 정보를 활용해 입법(보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여러 대 설치해 협업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이 의원하고는 같이 일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30세대에 긍정적 변화를 주고 싶었다지만 자신 역시 이들을 만나면서 변했다. 사쿠란보 사건이 대표적 예다. 3월 중순 함께 봉사 활동을 한 20대 청년들이 웃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2’에서 주석경 역을 맡은 배우 한지현이 오오츠카 아이의 노래 ‘사쿠란보(さくらんぼ)’에 맞춰 춤추는 영상이었다. 청년들이 따라 춰볼 것을 권했지만 태 의원은 친일 프레임이 걱정된다며 주저했다. 태 의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이 요즘 유행하는 거라며 따라 해보라고 권했다. 친일 프레임이 우려된다고 하자 ‘의원님, 꼰대들이나 친일·반일을 말합니다. 20대는 일본에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20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하더라. 2030세대는 한국이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얼마든지 즐긴다는 것이다. ‘그래 해보자’ 하고 춤췄다.”
촬영은 금방 마쳤지만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영상 편집을 마치고도 게시하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간 자기 안의 편견과 싸웠다. 일주일간 고민 끝에 영상을 게시하기로 결정했다. 우려했던 친일 프레임은 없었다. 유튜브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당 영상이 이슈가 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청년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이해할 순 없지만 보좌진이 시켜서 했다”는 로제떡볶이 먹방도 이렇게 시작됐다. 보좌진은 “태 의원이 사쿠란보 영상 촬영 이후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보좌진분들, 의원님 괴롭히지 마세요”
가시적 성과도 나타났다. 당장 유튜브 채널 태영호TV의 구독자 층위가 다양해졌다. 1년 전만 해도 ‘65세 이상 남자’가 구독자의 80%를 차지했다. 지금은 2030세대가 25%에 이른다. 남녀 비율도 1 대 1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구독자 수는 4월 29일 기준 25만9000명에 달한다. 의원실 중앙에는 미국 구글 본사에서 10만 구독자를 달성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에게 수여하는 ‘실버 버튼’이 놓여 있었다.2030 시청자들은 꼰대가 판치는 현실에서 ‘비서 눈치 보는 국회의원’이 등장하자 열광했다. 이지민(26) 비서는 “의원님은 유튜브 촬영을 하면서 끊임없이 보좌진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돌발 행동에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면 즉각 반응한다”고 말했다. 보좌진은 춤추다 흥이 올라 일어서려 하는 태 의원을 자제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방송 시청자 수가 1000명이 넘으면 랩을 하라고 현장에서 주문하기도 한다. 태 의원 영상에는 “소통 잘하시고 보좌관 말 잘 들으시고” “보좌진분들 의원님 괴롭히지 마세요” “보좌진 눈치 보느라 로제떡볶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네” 등의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다. 윤 비서는 “의원님과 시청자 모두 점점 강력한 콘텐츠를 요구해 큰일이다. 랩보다 더 강력한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웃픈’ 고민을 전했다. ‘보좌진 바보’ 태 의원의 다음 콘텐츠는 무엇일까. 태 의원은 재보선 다음 날 보디 프로필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로 보좌진과 약속했지만 이내 흐지부지됐다. 태 의원은 “평소 소식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는 체질이다. 큰일이다”라며 이마를 짚었다. 보좌진은 포기하지 않은 듯하다. 윤 비서가 웃으면서 말했다.
“결국 따라주지 않을까요? 늘 그랬듯이 말이에요.”
※ 매거진동아 유튜브 채널에서 인터뷰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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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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