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동아DB]
지금 나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중도층이 민주당을 떠났음을 보여준다. 당연한 결과다. 지난해 3월 “금태섭 의원의 공천 탈락을 계기로 중도층의 마음이 떠날 것이라는 분석은 안 해봤냐”는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의 물음에 당시 총선 후보 경선을 관리하던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중도층은 미신이다. 쟁점마다 다른 투표를 하는 층이 있을 뿐이다. 중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영향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본다.”
그들이 중도층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 이유는 그들의 표가 절대 탄핵당한 정당으로 향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두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은 그들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봤던 그 상황, 즉 중도층이 보수층과 결합하는 상황이 정치적 현실이 됐음을 의미한다.
물론 예단은 이르다. 민주당은 마침 최악의 상황에 놓였고, 국민의힘은 잠깐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고로 시간이 흐를수록 지지율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중도층이 선뜻 표를 줄 만큼 국민의힘 개혁이 진전된 것도 아니고, 민주당에게는 서울시 모든 구청을 장악한 조직력이 있다.
이해찬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후 세 번째로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동아DB]
물론 아직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 희망도 없던 야당에게 막연하고 추상적이나마 재집권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20년 집권’을 공언하던 여당에게 빨간불이 들어왔다. 상왕 이해찬 전 대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들이 지금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과연 그가 민주당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가 보궐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가 민주당이 처한 전략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도층을 아예 없는 존재로 간주하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운동권 정치를 기획·실행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 전략으로 그는 지난 총선에서 180석 압승을 거뒀다. 그 승리의 기억이 있기에 그가 전략을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략은 중도층이 보수층에 붙지 않을 때나 효과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초점이 방역에서 백신으로 옮겨갔다. 이 전 대표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자체’다.
이 전 대표가 서울 보궐선거만 보고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니리라. 그의 재등장은 직접 대선 관리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 전 대표를 만났다.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입장에서 이 지사는 불안한 후보이나, 지금이 어디 이것저것 따질 상황인가. 조금이라도 더 경쟁력 있는 후보를 택할 수밖에.
어차피 보궐선거에서 패하면 얼마 전까지 당대표를 지낸 이낙연 대선후보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연스레 ‘아웃’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쪽에 남은 후보는 이 지사뿐. 그러니 앞으로 킹메이커로서 이 지사와 친노·친문 및 강성 지지자들 간 갈등을 봉합하고, 그 둘을 접합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순수 ‘뇌피셜’인데, 여든 야든 이미 호남 후보는 ‘아웃’된 것으로 보는 듯하다. 얼마 전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후 세 번째로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월 단체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진정성까지 의심할 것은 아니나, 이낙연 후보의 탈락을 예상해 미리 자락을 깔아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4월 8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경우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대선 관리까지 맡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국민의힘에는 아직 전략적 사고를 할 만한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이번 대선은 김종인과 이해찬 두 책사의 대결인 셈이다.
시대정신을 잡아라
대선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았다. 한국 정치에서 1년은 조선왕조 500년만큼이나 긴 시간이다. 그사이 온갖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만 정권의 실정과 독선에 대한 국민적 불만만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대선은 ‘과거’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그동안 한국 사회를 만들어온 2개의 위대한 이야기는 종언을 고했다. 산업화 서사는 오래전 생명력을 잃었고, 민주화 서사는 이번 정권에서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 여전히 정권을 지탱하는 40, 50대의 연대, 즉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세대’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세대’의 연합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국민은 그들의 실체를 봤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이야기를 누가 쓰느냐’다. 대권을 결정하는 것은 이리저리 재는 정략적 머리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여당, 야당 다 겪어보고 두루 좌절한 국민에게 ‘복음’을 들려줄 자, 누구인가.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은 이 사회에 나아갈 ‘길’을 보여줄 자, 누구인가.
진중권은… 날카롭고 정교한 논리로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논객. 진보에 대한 비판을 넘어 보수진영에 혁신과 재건을 제시한 책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