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표 출마한 후보들 “서울·부산 시장 무공천” 주장 안 보여
2017년 민주당 혁신안 포기하는 셈
재보선 원인 제공자에 대한 무공천은 책임정치 논리에서 나온 것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 [뉴스1]
당장 이 조항의 해석을 놓고 논란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성폭력이 ‘부정부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박원순 전 시장의 경우에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료돼 ‘중대한 잘못’을 가릴 수 없고, 오거돈 전 시장의 경우에도 재판 결과를 끝까지 봐야 ‘중대한 잘못’에 해당하는 지 여부를 판단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속에 최민희 전 의원은 민주당만 이런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며, 아예 당헌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당헌의 해석을 넉넉하게 하건 당헌을 개정하건, 일단 공천은 하고 보자는 주장이 대세인 듯하다. 실제로 민주당은 당헌 제96조 2항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성폭력 의혹으로 그만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자리에 양승조 현 충남지사를 공천했고 당선까지 시켰다. 전례가 없지 않은 것이다.
이런 흐름을 눈치챈 야당들은 지난 7월 28일 중대한 과실이나 성추행 같은 사유로 시행되는 재보궐 선거에서는 원인을 제공한 당선인을 추천했던 정당이 후보자를 낼 수 없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 이른바 ‘박원순·오거돈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 발의자에 미래통합당 의원 38명, 국민의당 권은희·이태규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 41명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민주당이 원내에서 압도적 다수인 상황이라 이 법안이 내년 재보선 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입법활동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당헌 위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정권 재창출 때문이다. 내년 재보선에서 두 지역을 내주면 차기 대권을 유리하게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서울시와 부산시는 유권자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징성이 크다. 내년 재보선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치러진다. 당연히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패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말기 레임덕 흐름까지 더해지면서 정권 재창출은 점점 더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현직 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에 대한 조직적 정책적 영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뒤따를 것으로 봐야 한다. 서울시장도, 부산시장도 현직 프리미엄이 상당하다. 동원할 수 있는 정무직 공무원도 의외로 많다. 이들이 대선에 나서주는 것과 나서주지 않는 것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당과 통합당의 정당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갤럽의 8월 1주차 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37%로 전주보다 1%포인트 내렸다. 반면에 통합당은 25%로 5%포인트 상승했다. 두 정당의 지지율 격차가 12%포인트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리얼미터의 8월 1주차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5.6%, 통합당은 34.8%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2.7%포인트 내렸고, 통합당은 3.1%포인트 올랐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가 불과 0.8%포인트로 줄어든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신뢰수준은 95%였고, 응답률은 12%다. 리얼미터 조사는 전국 18세 이상 성인 3만3057명에게 전화를 시도해 응답한 최종 151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는 ±2.5%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얼미터 조사 내용 중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서울 지역의 정당 지지율 변화다. 통합당 지지율이 37.1%로 민주당 지지율 34.9%를 앞지른 것이다. 지난 총선 결과 부산시 유권자의 표심이 통합당 쪽으로 기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서울시 유권자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민주당으로서는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공천을 결정할 주체는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당 대표에 출마한 이낙연 후보는 신중론을 유지하는 중이다. 지난 7일 전남도의회에서 열린 초청 간담회에서도 후보 선출 문제로 벌써 당내에서 티격태격할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 “다른 급한 일도 많은데 그 일부터 끄집어내서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일의 순서에도 맞지 않는다……당 안팎의 지혜를 얻어서 연말 이전에 결정하면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박주민 후보도 일단 신중론이다. 다만 결정 시기는 이 후보보다 앞당기자는 입장이다. 지난 7월 29일 대구 MBC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후보를 내자, 내지 말자는 것보다 차기 지도부가 당원과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신중히 고민해서 결정하면 된다…… 연말보다는 빨리 결정해서 설득의 시간도 가질 필요가 있고, 보궐선거의 유리함만 쫓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에게 명확하게 보여드릴 필요가 있다.” 반면에 김부겸 후보는 공천 찬성론이다. 같은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당이라는 게 명분만 잡기는 어려운 현실에 대해 호소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것을 앞장서서 막아주면서 후보들을 보호하고 그 후보들이 본선에서 제대로 된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선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까지 명시적으로 무공천을 주장하고 있는 당 대표 후보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결국 시점의 문제일 뿐, 공천 쪽으로 결론이 날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런데 무리를 해서 공천을 한 결과, 낙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결과가 빚어진다.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재보선 패배가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더 빨라지게 할 것으로 봐야 한다. 당연히 정권 재창출도 어려워진다. 차라리 명분을 따라 두 곳에 공천을 주지 아니한 것만 못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두 전 시장의 성폭력 의혹에 대한 국민 분노가 높다. 그런데 공천을 강행하면, 그것 자체로 여론을 더 악화시켜 선거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 내에서 당헌 제96조 2항의 해석을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본래 무공천 조항을 삽입한 취지와 거리가 있는 공방이다. 정치권에서 처음 재보선 무공천 논의가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단순히 원인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거공영제와 관련이 깊다. 재보선을 치르면 또다시 선거공영제에 따라 국가 그리고 국민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에 재보선 원인을 제공한 선출직 공직자에게 보전해준 선거비용을 청구해서 온전하게 받아 내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해당 정당이 책임정치 차원에서 무공천을 하기로 하자는 논리였다. 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가 2017년 11월 혁신안에서 재보선 원인을 제공한 정당은 후보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이와 같은 논리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당시 정당발전위원회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동안 재보선 비용으로 1470억원이 들어갔다며, “부정부패로 재보선이 이뤄지면 선거관리 경비 등 막대한 부담이 국민에 전가되지만 원인을 제공한 후보자나 추천정당엔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선거보전 비용을 재보선 원인 제공자로부터 전액 환수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선거법 위반이나 부정부패 혐의로 재보선이 치러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성폭력 의혹으로 사퇴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재보선이 치러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가와 국민으로서는 불필요한 혈세를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그야말로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 민주당은 내년 재보선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공천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당이 ‘적폐세력’으로 보는 통합당조차 과거 같은 맥락에서 무공천을 한 전례가 있다.
무공천으로 결론을 내면 반드시 불리할까? 그것도 아니다. 적어도 명분은 지킬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정의당 등과 선거연대를 해서 범진보 후보를 내보낸다면 의외로 당선이라는 실리를 거두게 될지도 모른다. 온전하게 패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0.26 재보선 당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당시 민주당이 무공천을 한 덕분이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패하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크게 억울할 것은 없다. 부산지역은 이미 지난 총선 때부터 돌아선 마당이기 때문이다. 부산시장 선거에서 이기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하면,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지역이 넘어갔다는 점에서 경계심은 고조될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이 공천을 강행한 결과 2곳 모두에서 승리하더라도 본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던 자치단체장 자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금 유권자의 지지를 확인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 다시 승리할 가능성도 높아진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작용은 없을까? 일단 혁신 차원에서 도입한 당헌 제96조 2항이 무력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현직 선출직 공직자가 어떤 나쁜 일로 중도하차를 하건 또다시 공천을 줘서 누군가를 내보내려 들 것이다. 책임정치가 실종되는 것이다. 지난 총선 당시 명분과 원칙을 버리고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했지만 민주당은 압승했다. 이후 국회에서 민주당은 야당의 통제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추경안도 부동산 정책 관련 법안도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도 거침없이 통과시키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심의도 생략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재보선까지 압승한다면, 이러한 국정의 일방독주도 더 심해질 것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