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충북 제천 산비탈에 설치됐던 태양광발전설비가 최근 집중호우로 무너져 있다. [뉴시스]
‘15도 경사’ 규제는 역부족
산사태의 한 원인으로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시설(이하 산지 태양광)이 지목된다. 최근 2~3년 새 급증한 산지 태양광이 산의 홍수 조절 기능을 약화시켜 산사태 유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그래프 참조).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3년(2017~2019년)간 산지 태양광 설치를 위해 전국 임야에서 총 23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갔다. 이에 미래통합당 등 야권은 ‘태양광 국정조사’ 추진에 나섰다. 이채익 미래통합당 탈원전대책특위 위원장은 10일 성명에서 “태양광 패널이 햇빛을 최대한 오랫동안 받을 수 있도록 일정 경사 이상의 산비탈을 골라 설치하는데, 그 과정에서 폭우에 견딜 나무나 토지 기반이 무너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이후 정부는 산지 태양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섰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성윤모 장관의 집중호우 대비 차원 산지 태양광 현장 방문 보도자료를 내면서 언급한 ‘경사도 허가기준 강화’가 그 한 예다. 이는 산지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려면 산지의 평균 경사도가 15도 이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2018년 12월 도입됐다. 기존 25도에서 산지 태양광 인허가 요건을 한층 강화한 것인데, 경사도가 낮아지면 그만큼 강우로 인한 토사 유출이 줄어들 것이란 논리에서다. 이 밖에도 정부는 ▲태양광 산지 일시사용허가제도 도입(2018년 12월) ▲산지 태양광 신재생에너지인증서(REC) 가중치 축소(2018년 9월) ▲정기점검 의무화(2020년 6월) 등을 도입했다. 이처럼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자 실제 산지 태양광의 신규 인허가 건수는 크게 줄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산지 태양광 신규 증축 면적은 1024ha로, 전년(2443ha) 대비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경사로 제한으로는 산사태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여 년 간 지방자치단체들에 태양광 설비 구조에 대해 자문해온 이영재 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경사로를 낮춰 산사태를 예방한다는 것은 청년의 암 완치율이 노인보다 높다고 믿는 것과 다름없다”며 “각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또한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일수록 토사 유출이 덜 될 수는 있지만, 정부가 적용하는 기준은 태양광발전시설이 들어서는 현장이 아닌 해당 산지의 평균 경사도란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같은 산지라도 경사가 가파른 곳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짓는다면 ‘평균 경사로 15도 이하’ 제한은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산림청 현장점검에도 산사태 속출
8월 3일 오전 경기 가평군 호명산 아래 한 건물이 무너져 3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대원들이 매몰자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사면안정성 검토란 경사지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할 때 토양의 종류, 단단한 정도, 마찰각, 안식각(흙을 쌓거나 깎아낼 때 생기는 경사면이 수평면과 이루는 각) 등 토양의 성질과 해당 지역에서 최근 50년간 발생한 폭우, 태풍 등의 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조물의 적정한 규모와 설계를 도출하는 것을 말한다. 태양광발전설비는 각 지자체가 도시계획위원회를 통해 인허가를 내주는데, 이러한 사면안정성 검토를 인허가 의무 사항으로 도입한 지자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지역 몇몇 지자체의 도시계획위원으로 활동해온 이영재 교수는 “구조물의 기초가 부실하지 않은지, 전복 위험은 없는지 등을 살피는 구조 안정성 검토 역시 태양광발전설비에 대해서는 법적 의무가 아니라서 요식 수준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며 “안전성을 담보하는 설계는 하지 않고 경사도만 제한한다고 해서 산사태를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산림청은 이번 장마로 인한 전체 산사태 피해(1079건) 중 태양광발전시설로 인해 발생한 산사태 피해는 12건으로 전체 피해 건수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산림청 입장에 대해 이수곤 전 교수는 “너무 안일한 대응”이라고 질타했다. 11일 오후 산지 태양광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일부 민가가 매몰된 전남 함평군 대동면을 찾은 그는 “산지 태양광에서 아래쪽으로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마을이 있다면 최소 2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옹벽을 세워놨어야 하는데, 그러한 구조물 없는 탓에 인재(人災)가 발생했다.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허가를 내준 것도, 이후 점검에서도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며 “이번 집중호우로 흙이 약해져 앞으로 적은 비가 오더라도 산지 태양광이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산지 태양광으로 인한 산사태 피해는 지금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산사태가 태양광발전시설이 아닌 그 위에서 발생해 태양광발전시설을 덮친 뒤 더 아래 농지와 민가로 내려왔다고 하더라도, 태양광발전시설은 산사태 규모와 피해를 더 키우는 역할을 한다”며 “이를 예방하려면 산지 태양광 위쪽에 옹벽 등 산사태를 막아줄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설치하지 않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도 덧붙였다.
산림청은 장마철이나 해빙기를 앞두고 산지 태양광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한다. 하지만 토사 유출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배수로에 문제가 있진 않은지 현장 점검하는 수준에 그쳐 반복되는 태양광발 산사태를 예방하는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번에 산사태가 발생한 12곳의 산지 태양광도 장마철을 앞두고 산림청의 현장 점검을 받은 곳들이다. 산림청 산지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5~6월 전국 1만2721개의 산지 태양광은 전수 현장 점검했다”며 “이번에 산지 태양광 산사태 비율이 1% 수준으로 낮은 것은 이러한 사전 점검 덕분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