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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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해진 자의식이 문제 좋은 과거를 축적하라”

‘살아야 하는 이유’ 펴낸 강상중 도쿄대 교수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2-12-17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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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해진 자의식이 문제 좋은 과거를 축적하라”

    ●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출생<br>● 1970~79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학부, 석사, 박사<br>● 1979~81년 독일 뉘른베르크대학 유학(정치학, 정치사상사 전공)<br>● 1998년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 부임<br>● 저서 ‘고민하는 힘’ ‘내셔널리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등

    “소가 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세. 우리는 어떡하든 말이 되고 싶어 하지만, 소는 웬만해선 될 수 없네. 나같이 늙고 교활한 사람이라도, 소와 말이 교미하여 잉태한 아이 정도일 걸세. 서둘러서는 안 되네. 머리를 너무 써서는 안 되네. 참을성이 있어야 하네. 세상은 참을성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을 알고 있나? 불꽃은 순간의 기억밖에 주지 않네. 힘차게, 죽을 때까지 밀고 가는 걸세.”

    -나쓰메 소세키,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 중에서

    강상중(62) 도쿄대 교수가 최근 ‘살아야 하는 이유’를 펴냈다. 이 책을 읽자 “소가 되어야 한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 생각났다.

    강 교수는 1998년 재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인물로, 에세이 ‘고민하는 힘’ 등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아들을 잃어 살아갈 힘조차 없을 법한 그가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전남대 강연 차 한국에 온 그를 12월 10일 광주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에 책 내용을 더해 재구성한 것이다.

    ▼ 글을 왜 쓰나. 정치사상사 전공 교수가 에세이나 소설을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엔 재일한국인으로서 내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지금은 대중과 소통하려고 대중에게 친숙한 글쓰기를 한다. 특히 이 책(‘살아야 하는 이유’)은 서문에 밝힌 것처럼 개인적 아픔 때문에 썼다. 불치병이라고도 하는 극도의 신경증에 걸린 아들은 살아생전 자신의 출생을 저주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 언제까지고 건강하기를,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아들이 죽고 몇 달이 지나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비참한데도 꼭 살아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아들 잃은 뒤 삶 고민

    그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역시 학력, 소득, 지위 격차가 심해 사람들의 삶이 불안정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회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삶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그런데 강 교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 주목한다.

    ▼ 많은 사람이 자살을 택한다.

    “요즘 사람은 먹고사는 데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수입을 바라고, 소소한 취미 활동이나 교제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직장에 다녀야 하는데, 이왕 다닐 바에는 보람 있는 일을 하길 원한다. 열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다투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할 반려자가 있기를 바란다. 아이도 몇 명 있었으면 하고, 건강도 챙긴다.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돼 있길 바란다. 그런 것이 충족돼야만 행복한 삶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그런 가치를 모두 향유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여기고 세상을 등진다.”

    ▼ 그런 것을 바라는 게 위험한가.

    “조건은 평범해 보이지만 이를 충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만 해도 연간 3만 명 이상이 자살하고 100만 명 이상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건 그런 조건을 충족할 수 없어서일 것이다. 사람 수만큼 행복을 느끼는 방식도 다양해야 좋은데, 언제부턴가 그런 것이 없어져버려 안타깝다. 자유경쟁이라는 규칙에 따라 부적응자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각은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사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목적으로 구할 수도 없다. 행복을 손에 넣으려고 뭔가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다.”

    ▼ 그렇다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자의식을 줄여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자의식에 갇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예전 사람들은 신과 자신이 연결돼 있다 생각했고, 인간은 이 세계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자아 개념이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근대에 그 연결이 끊어지면서 개인이 자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고민하는 사람(호모 파티엔스)’은 이 시대의 본질적 인간 유형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불안을 해소하는 치료법도 만들어냈다고 했다. “사람들의 머리를 실컷 두들겨 패놓고 그다음 진통제를 파는 악덕상술 같은 문화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당신 책도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묻자 “세속적인 위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비슷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책은 과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존 자기계발서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를 중시하는 것은 인생을 중시한다는 의미고, 가능성이라는 말만 연발하면서 미래만 보려는 것은 인생에 무책임한 태도”라고 설명했다.

    언제든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

    ▼ 비대해진 자의식을 줄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나쓰메는 ‘진짜 자기를 찾으라’고 하지 않고 반대로 ‘자신을 잊어라’고 말했다. ‘행복론’을 쓴 버트런드 러셀도 ‘자기에게만 흥미를 갖지 마라’고 했다. 인생에서 얼마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졌는지 아닌지에 달렸다. 당장은 뭐라도 괜찮다. 애인, 친구, 아내, 신, 일, 어느 것에라도 의미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믿는 대상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자, 그 대상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자기 세계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나만 해도 진보하는 역사와 성경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마음만 있으면 발휘할 수 있는 ‘태도’였다. 그 역시 자기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상황과 아픔을 끌어안고 힘을 내는 ‘태도’로 열심히 살아간다. 행복하지 않다며 생을 놓으려는 이들에게 그는 어떤 태도를 권할까. 책 말미에 그 답이 있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가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 생각돼도 인생이 끝나기 1초 전까지는 언제든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특별히 적극적으로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 같은 건 없다.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다 보면, 나중에 돌아봤을 땐 저절로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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