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말 편찬한 북방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老乞大)’를 보면, 1350년경 중국 베이징에 물건을 팔러 갔던 고려 상인이 돌아오는 길에 사온 중국 물건들은 적당히 싼 물건이나 가짜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욕심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지, 조선시대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1762~1849)은 서울 사는 부자 손 노인이 감쪽같이 속아 가짜 중국 골동품인 벼루, 찻잔 등을 사들이다 살림이 거덜났다고 전한다. 10여 년 전, 필자는 ‘베이징의 인사동’으로 유명한 류리창에서 전문적으로 가짜 중국 서화작품을 파는 롱싱이랑(榮興藝廊) 사장으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작품을 사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다.
뻔히 가짜 알면서도 구매하는 사람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이왕가박물관이 1918년 박준화로부터 사들인 ‘정곤수 초상’(그림1)은 가짜다. 최근 X선을 투과해 촬영한 결과(그림2) 이를 입증할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육안으로 보이는 초상화 밑에 중국 청나라 관리의 옷차림이 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미술사학계는 정곤수(1538~1602)가 임진왜란 때인 1592년과 1597년 두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기에 ‘정곤수 초상’의 제작 시기를 그때쯤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곤수 초상’은 중국의 가짜 초상화를 사다가 수정하고 덧그려서 조선시대 작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는 서양화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위조자가 그린 가짜다.
만일 X선을 투과한 결과 그림 밑에서 명나라(1368~1644) 관리의 옷차림(그림3)이 보였다면, 누구도 정곤수의 얼굴을 모르니 그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린 초상화라고 했을 것이다. ‘다행히’ 청나라(1644~1911) 관리의 옷차림(그림4)이어서 중국에서 그린 가짜 초상화가 우리나라 위조자에 의해 고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 고서화 작품 위조는 대략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단계는 위조하고자 하는 작가가 활동하던 때 사용했던 종이나 안료 등 창작 재료를 구한다. 2단계는 각각 그림과 글씨, 도장을 위조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분업을 통해 작품을 위조한다. 3단계는 표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기술을 동원해 오래된 작품 같은 상태와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상적’ 작품으로 둔갑해 팔려
다행인 것은 가짜 ‘정곤수 초상’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고서화 작품의 위조는 대체로 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무조건 지저분하면 오래된 것이고, 특정인의 도장만 찍혀 있으면 특정인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살펴보면 엉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에서 중국 청나라 황제의 가짜 작품이 조선역관 작품으로 둔갑해 팔리기도 했다.
2003년 서울옥션 제84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필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상적(1804~1865)의 ‘시고대련’(그림5)에는 이미 청나라 강희제(1654~1722) 작품이라는 의미로 위조한 도장인 ‘강희신한(康熙宸翰)’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 역관인 이상적의 작품으로 둔갑해 경매 당시 치열한 경합을 거쳐 시작가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 중국산 가짜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위조했는지 그 과정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조자들은 먼저 싼값에 강희제의 가짜 작품(그림6)을 사들였다. 그다음 강희제의 가짜 도장을 지워야 했지만 종이 바탕에 무늬가 있어 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결국 위조자는 강희제의 가짜 도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가짜 서명을 하려고 작품 좌우를 바꿨다. 그리고 작품 왼쪽 빈 공간에 이상적의 작품이란 의미로 ‘조선(朝鮮) 이우선(李船)’이라 서명하고 가짜 도장을 찍었다.
이상적은 명필도 아니고 이름난 유학자도 아니다. 다만 김정희(1786~1856)가 제주 유배 중에 그의 지조 있는 인품을 높이 사서 ‘세한도’를 그려줬다는 사실이 김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위조자들이 이용했던 것이다.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1762~1849)은 서울 사는 부자 손 노인이 감쪽같이 속아 가짜 중국 골동품인 벼루, 찻잔 등을 사들이다 살림이 거덜났다고 전한다. 10여 년 전, 필자는 ‘베이징의 인사동’으로 유명한 류리창에서 전문적으로 가짜 중국 서화작품을 파는 롱싱이랑(榮興藝廊) 사장으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작품을 사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다.
뻔히 가짜 알면서도 구매하는 사람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이왕가박물관이 1918년 박준화로부터 사들인 ‘정곤수 초상’(그림1)은 가짜다. 최근 X선을 투과해 촬영한 결과(그림2) 이를 입증할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육안으로 보이는 초상화 밑에 중국 청나라 관리의 옷차림이 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미술사학계는 정곤수(1538~1602)가 임진왜란 때인 1592년과 1597년 두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기에 ‘정곤수 초상’의 제작 시기를 그때쯤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곤수 초상’은 중국의 가짜 초상화를 사다가 수정하고 덧그려서 조선시대 작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는 서양화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위조자가 그린 가짜다.
만일 X선을 투과한 결과 그림 밑에서 명나라(1368~1644) 관리의 옷차림(그림3)이 보였다면, 누구도 정곤수의 얼굴을 모르니 그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린 초상화라고 했을 것이다. ‘다행히’ 청나라(1644~1911) 관리의 옷차림(그림4)이어서 중국에서 그린 가짜 초상화가 우리나라 위조자에 의해 고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 고서화 작품 위조는 대략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단계는 위조하고자 하는 작가가 활동하던 때 사용했던 종이나 안료 등 창작 재료를 구한다. 2단계는 각각 그림과 글씨, 도장을 위조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분업을 통해 작품을 위조한다. 3단계는 표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기술을 동원해 오래된 작품 같은 상태와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상적’ 작품으로 둔갑해 팔려
다행인 것은 가짜 ‘정곤수 초상’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고서화 작품의 위조는 대체로 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무조건 지저분하면 오래된 것이고, 특정인의 도장만 찍혀 있으면 특정인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살펴보면 엉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에서 중국 청나라 황제의 가짜 작품이 조선역관 작품으로 둔갑해 팔리기도 했다.
2003년 서울옥션 제84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필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상적(1804~1865)의 ‘시고대련’(그림5)에는 이미 청나라 강희제(1654~1722) 작품이라는 의미로 위조한 도장인 ‘강희신한(康熙宸翰)’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 역관인 이상적의 작품으로 둔갑해 경매 당시 치열한 경합을 거쳐 시작가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 중국산 가짜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위조했는지 그 과정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조자들은 먼저 싼값에 강희제의 가짜 작품(그림6)을 사들였다. 그다음 강희제의 가짜 도장을 지워야 했지만 종이 바탕에 무늬가 있어 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결국 위조자는 강희제의 가짜 도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가짜 서명을 하려고 작품 좌우를 바꿨다. 그리고 작품 왼쪽 빈 공간에 이상적의 작품이란 의미로 ‘조선(朝鮮) 이우선(李船)’이라 서명하고 가짜 도장을 찍었다.
이상적은 명필도 아니고 이름난 유학자도 아니다. 다만 김정희(1786~1856)가 제주 유배 중에 그의 지조 있는 인품을 높이 사서 ‘세한도’를 그려줬다는 사실이 김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위조자들이 이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