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인 이상화의 ‘마돈나’, 백석의 ‘나타샤’는 우리 문학의 베아트리체다. 단테가 사랑한 여인이 천상의 존재처럼 여겨진다면, 우리 식민지 시인의 여인들은 언제나 이 땅에 뿌리박고 있다. 나타샤… 그녀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다. 백석이 이렇게 ‘푹푹’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간절할 따름이다(마가리 : 오막살이, 출출이 : 뱁새, 고조곤히 : 고요히의 북쪽 지방 방언). ─ 원재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