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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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칩시다, 양극화와 불통이 해결됩니다”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04-16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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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칩시다, 양극화와 불통이 해결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기는 정신적 유산은 죽어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물려주는 것이다. 오늘 산 나의 삶이 결국 아이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문용린(65) 서울대 교수가 쓴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이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아차’ 싶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4월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문 교수는 “책의 힘, 글의 힘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한다면, 진보니 보수니 가난하니 부유하니 해도 책을 연결고리로 소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3월 9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정하고, 국고와 기금 등 108억 원을 투입해 독서를 장려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이날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으로서 맡은 임무는 무엇인가요.



    “출판계, 도서관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학계 등에 몸담은 독서 관련 인사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제가 거기서 간판을 하나 더 단 셈이에요. 독서 증진을 위해 국가가 나서고, 민간 전문가가 참여했으니 독서를 장려하는 임무 분담을 잘 해야죠.”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가 위기 수준이라고 보나요.

    “위기죠.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 비율이 66.8%예요. 한때 75%가 넘었는데 매년 낮아지고 있어요(문화부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독서율은 2004년 76.3%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일본과 미국, 유럽이 80%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하면 위기죠. 더욱이 지난해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라면 그 전에도 안 읽었을 개연성이 높잖아요.”

    ▼그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고 있나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 소통이 안 돼요. 소통을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 교양과 상식이고, 교양과 상식은 독서를 통해 쌓이는데 이렇게 독서율이 낮으니 곳곳에서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아침에 읽은 신문기사를 갖고도 대화할 수 있는 건데, 읽지를 않으니 그럴 수 없잖아요. 역사에 대한 독서가 부족하니 어느 한 사람이 이렇다 하고 떠들면 휩쓸려버리고.”

    문 교수는 “독서와 관련한 더블 양극화현상 또한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서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고,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에 이끌려 독서 편식도 심하다는 것.

    “전문인 물리학 서적을 내도 기본 5000권은 팔린다고 해요. 아마추어 물리학자가 많은 거죠. 책을 읽는 사람은 특정 분야의 마니아가 될 정도로 파고드는 반면, 안 읽는 사람은 몇 년이 지나도록 책 한 권 손에 쥐지 않아요. 심한 양극화죠. 특정 신문만 읽고 또 어떤 작가가 쓴 책은 절대 읽지 않는 이념적 양극화 역시 우리 사회의 소통을 막고 있어요. 이런 갈등은 인문학 서적을 통한 깊이 있는 독서로 해소 가능한데, 인문학 책은 사람들이 더 안 읽잖아요.”

    높은 교육열과 낮은 독서율

    ▼우리나라가 교육열이나 교육 수준에 비해 독서율이 낮은 건 왜일까요.

    “교육의 본질은 상식과 교양을 높이는 것인데, 출세와 성공을 위한 것으로 변질돼서 그래요. 과거제도를 도입한 이후 교육의 본질이 계속해서 세속화한 탓이죠. 우리나라에선 불행하게도 교양과 상식이 교육과 겹치지 않고 분리되고 말았어요.”

    교양과 상식을 넓히려는 책 읽기,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고 전형인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출세를 위한 스펙 쌓기일 뿐 독서와 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과도한 교육열의 부작용으로 학생들이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는커녕 독서와는 담을 쌓으니 “학교교육을 위해 평생교육을 잡아먹는다”는 그의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TV의 영향은 어떤가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활자화한 정보를 접하는 것은 종이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디지털 형식을 빌린 독서가 좋다 나쁘다 따져볼 겨를도 없이 정보통신 기기가 빠르게 바뀌고, 업체 간 경쟁이 가격과 디자인에 치중하는 점은 안타깝죠. 활자 크기와 밝기, 색상 등이 소비자 건강과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봐요.”

    ▼TV 등이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은 어떻게 보나요.

    “영상문화는 하나의 즐길 거리로 가치가 있지만 두뇌에 별로 이로울 건 없어요. 같은 경치를 놓고도 활자로 읽으면 머릿속에 영상을 떠올리고 거기에 내 몸이 반응하지만, 영상으로 접하면 뇌가 작동을 멈추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니까요. 생각을 멈춰버리는 거죠.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 한류를 타고 수출하는 등 영상문화로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적지 않아요. 드라마 시청률이 50%를 넘었다고 자랑하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TV 앞에 매달렸다는 이야기니까요. 외국에 나가면 곳곳에서 책 읽는 사람을 만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 심심한 사람에게 TV가 파고든 거죠.”

    ‘독서오디션’ ‘독서희망열차’ 추진

    문 교수는 “공중파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 같다”며 “우리 국민의 숨은 지성을 깨워줄 독서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주 특정 인물,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나 이마누엘 칸트 등을 주제로 정하고 퀴즈대결을 펼치면 시청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독서문화 확산에 도움이 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식인이나 유명 저자들을 버스에 가득 태워 시골에 있는 중학교를 방문하는 ‘독서희망열차’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가서 학생들을 만나 자신이 직접 쓰거나 읽은 책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요. 지식인들은 1년에 딱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비스한다 생각하고 시골에 가서 마을을 휘젓고 오는 거죠. 책도 좀 나눠주고. 독서의 해 표어가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인데, 이렇게 해야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웃음).”

    문 교수에 따르면 교육 선진국 핀란드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을 개인이 선택한 결과로 보지 않는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 적극적으로 돕는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양극화를 해소하고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게 하려면 그들이 책을 읽도록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국가독서교육진흥청을 만들어 끊임없이 독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세계인의 독서 증진을 위해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자녀가 있다면 독서하는 즐거움을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주고, 지인에게는 자신이 먼저 읽고 감명 받은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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