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부럽네!” 노인들의 천국 프랑스

올해부터 거동 불편자에 月 최고 120만원 수당 지급 … 60세 이상 80만명 혜택

  • < 민유기/ 파리 통신원 > YKMIN@aol.com

    입력2004-10-18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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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럽네!” 노인들의 천국 프랑스
    파리의 중산층 거주지역 중 하나인 15구 조르주 브라셍스 공원. 모처럼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시몬 할머니(74)는 40대 중반에 이혼하고 두 딸이 독립한 후 줄곧 혼자 살아왔다. 유치원 보모로 일한 그녀는 매달 지급받는 국민연금 1만 프랑(175만원)으로 자녀들의 도움 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시몬 할머니에게도 걱정은 있다.

    시몬 할머니의 생활자금 명세서를 보자. 그녀는 주 2회 2시간씩 월 8시간의 가사보조 파출부 고용으로 월 1600프랑(28만원)을 지불하고 집세 4500프랑과 각종 공과금을 제하고 남는 2000프랑(35만원) 정도로 살아간다.

    “아직까지는 거동에 큰 불편이 없지만 앞으로 몸이 불편해지면 파출부도 일주일에 네 번쯤으로 늘려야 하고 여기저기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걱정이야.” 시몬 할머니는 “생각 같아서는 수당을 2000프랑 정도 더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올해부터 시몬 할머니와 같은 노인들이 걱정을 덜게 되었다. ‘노년인구의 자율권 수당(APA)’이라는 노인 대상 보조금이 1월부터 새롭게 지급되면서 정부의 노인정책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의 노인수당은 60세 이상 인구 중 인간으로서의 자율적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모든 이에게 지급된다. 눕고 일어나기, 움직이기, 옷 입기, 화장실 사용, 음식 준비, 청소하기, 외출하기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혼자 힘으로 불가능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이라면 신청 즉시 의사 및 사회복지사와의 면담을 통해 매달 적게는 91유로(약 11만원)에서 많게는 1067유로(약 120만원)의 수당을 받게 된다. 이 수당은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4단계로 구분되고 퇴직 후 받는 국민연금 액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가족과 함께 살든, 양로원·요양원이나 병원 같은 사회적 기관에 거주하든 상관없이 모든 노인에게 지급된다.



    “부럽네!” 노인들의 천국 프랑스
    이 조처는 주무부서인 고용과 연대부 장관 엘리자베스 기구의 표현대로 ‘노년인구와 그 가족들에게 일종의 역사적 진보’로 간주되며, 97년 출범한 현 사회당 정부가 그간 입법하고 실행해 온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새로운 직종의 일자리 창출, 주 35시간 노동, 저소득 계층의 의료보험 무료화 등에 이은 네 번째 주요 사회법안으로 평가된다.

    노인수당이 신설된 것은 프랑스 전체인구에서 노년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인구의 21.3%가 60세 이상이며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그동안 시행돼 온 의존노인 수당, 즉 가족이나 요양기관 등 타인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인들에게만 지급되던 특별수당이 일부 노인들에게는 지급되지 않아 형평성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이자벨 할머니(72)도 의존노인 특별수당을 신청했지만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이유로 수당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새로운 노인수당이 시행되자 첫번째로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않은 채 “실비지만 새로운 보조금을 받게 돼 기쁘다”면서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동네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거나 미술관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로 도입된 노인수당의 수혜 대상자는 60세 이상 노인 중 거동이 불편한 80만명 정도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의 의존노인 특별수당 수혜자인 13만9000명의 거의 6배에 달하는 수치다. 신설된 노인수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동으로 향후 2년간 165억 프랑(2조8000억원)이 소요되고 이후에는 규모가 더욱 늘어나 해마다 220억∼230억 프랑(3조7000억∼3조9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부럽네!” 노인들의 천국 프랑스
    또한 노년인구를 돕는 일종의 사회복지사 일자리에 향후 4만여명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며 기존의 노년인구 가사 보조자 자격증을 대체할 ‘사회적 삶의 보조자’ 자격증이 신설된다. ‘사회적 삶의 보조자’들은 단순한 가사의 도움을 넘어 노인들에게 신체적·심리적·사회적 도움을 주도록 교육받으며 이를 위해 3억5000만 프랑(600억원)의 직업교육 예산도 확보했다.

    정부가 파악한 수혜 대상자 80만명중에는 25만명의 양로원, 요양원, 병원 장기 입원자와 55만명의 개인주택 거주자가 포함돼 있다. 개인주택 거주자들은 대부분 노인 부부만 살거나 노인 혼자 사는 경우다. 새로 도입된 수당은 요양시설 거주자들에게는 가족이나 본인이 부담하고 있는 요양시설 거주비용의 일부를 떠맡게 될 전망이다. 또 개인주택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이 이 수당을 이용해 보조인력을 구하는 것도 좀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젊은 자녀가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회적 관습에 따라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며, 20세기 초부터 도입한 국민연금 덕택에 부모들은 50∼60대 중반에 은퇴한 후 경제적으로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가사나 외출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시간당 평균 70프랑(1만2000원)의 경비가 소요된다.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프랑스 노인들은 스스로 또는 자녀들에 의해 요양원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프랑스 가정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낮시간 동안 돌봐줄 사람이 없는 집에서 거주하기가 힘들고, 매일 반나절씩 자택에서 가사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데도 적지 않은 경비가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부담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독립적으로 살아온 노인들은 요양원 같은 집단시설을 매우 싫어한다. 이들은 본인이나 자녀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개인주택에서 사는 것에 더 큰 행복과 자유를 느낀다. 프랑스 정부가 신설한 노인수당은 이런 노인들의 인간적인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개인이나 가족보다도 사회나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유교적 전통 속에서 가족이 경제적 부담은 물론 노인문제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프랑스의 노인수당 신설이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노년인구도 국민의 일부이므로 당연히 국가가 이들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는 프랑스의 노인수당은 노인정책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관련해 좋은 성찰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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