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와 그 파트너인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블랙웰’ 생산 차질을 두고 책임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 삼각동맹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가 TSMC의 패키징 기술에 문제를 제기하자, TSMC는 애초 설계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으로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GPU(그래픽처리장치)를, SK하이닉스는 HBM3(고대역폭메모리)를, TSMC는 파운드리를 거의 독점 생산하며 삼각동맹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의 협력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3사 모두 심적으로는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돼 있지만 당장 대체할 업체가 없어 당분간 동맹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독점 구조가 무너지면 언제든 삼각동맹은 깨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10월 21일 이 대표를 만나 시장에 제기되고 있는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 삼각동맹 파트너십 균열 설을 짚어보고 투자전략을 들었다.
AI 반도체 옥석 가리기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 [박해윤 기자]
“최근 반도체 기업 실적 발표를 통해 확인된 것은 ‘AI 옥석 가리기’다. AI 관련 B2B(기업 간 거래)와 PC·스마트폰 관련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의 실적 온도차가 확실했다. 엔비디아와 TSMC, SK하이닉스처럼 AI 관련 기업의 실적은 좋지만, 그 외 기업은 실적이 좋지 않다.”
TSMC는 3분기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14조 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제조업체가 이 정도 이익을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실적이다. TSMC 매출에서 원가를 제외한 ‘매출총이익률’이 57.8%에 달했다. 이런 깜짝 실적은 독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래 TSMC는 삼성전자가 3㎚ 공정이 가능하다고 하고, 인텔이 1.8㎚까지 도전한다고 하자 긴장했다. 하지만 막상 패를 까 보니까 TSMC만 선단 공정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영업이익과 매출총이익률이 점프했다. TSMC는 더 나아가 ‘매출총이익률은 75% 정도가 이상적’이라고 말하며 마진을 올리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처럼 TSMC가 마음 놓고 가격을 올리는 상황의 1등 공신은 삼성전자, 2등 공신은 인텔이다.”
TSMC는 언제까지 호실적을 이어갈까.
“TSMC 실적은 내년까지 우상향할 것으로 보인다. 공급 측면에서 독점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 빅테크 기업은 내년에도 AI 투자를 이어갈 전망이라 수요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TSMC의 파트너십이 흔들리고 있다던데.
“엔비디아 입장에서 TSMC가 마음에 안 차는 부분들이 있지 않겠나. 양사 모두 심적으로는 언제든 배신할 각오가 돼 있지만 당장 대체재가 없는 상황이다. 엔비디아는 TSMC 외에 AI 가속기를 만들어줄 파운드리가 없고, TSMC는 엔비디아만 한 고객이 없다. 물론 애플이 있지만 성장 추이로 보면 애플보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성장률이 훨씬 좋다. 그래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도 결국 다시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번 블랙웰 생산 차질을 두고 벌인 책임 공방도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파트너십 깨질 가능성 적어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 삼각동맹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보나.“엔비디아는 지속적으로 파운드리와 HBM의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TSMC와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당분간은 삼각동맹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단 서로에게 대체재가 나오면 언제든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삼성 파운드리는 TSMC와 시장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데.
“AMD가 6개월 전 TSMC 외에 삼성 파운드리도 쓰겠다는 로드맵을 공개했지만, 10월 15일(현지 시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레노버 테크월드 2024’ 행사에서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공식적으로 TSMC 외에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삼성 파운드리를 제외한 것이다. 수많은 샘플 테스트를 통해 삼성 파운드리를 검토했지만 안 되겠다고 결론 내린 것 같다.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삼성 파운드리는 7㎚ 이하 선단 공정 라인의 일부 전원을 껐다. 반도체 라인은 철강 고로와 비슷하다. 한 번 끄면 다시 재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 수주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 파운드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D램에는 경쟁력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까지 포기하고 D램에 사활을 걸었는데 왜 HBM 기술을 못 쫓아가나.
“그동안에는 삼성전자가 어드밴스드 패키징에 소홀했다는 평이었는데 최근 D램 1a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혀지면서 1a 개선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삼성전자는 D램 부문에서 경쟁사 대비 한두 세대 정도 기술이 앞서가는 회사였다. 하지만 14㎚ 공정인 1a부터 뒤집혔다. 현재는 1a 부문에서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차라리 다음 세대인 1b를 확실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에서 주목할 부분은.
“SK하이닉스는 경쟁사에 비해 HBM, DDR5 같은 선단 공정 비중이 크지만 범용 메모리 반도체 비중도 큰 편이다. 따라서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에서 제일 주목할 부분은 D램 영업이익률과 평균판매가격(ASP)이다. D램 영업이익률은 40% 초반이면 안 좋지만 40%대 후반이면 굉장히 잘 나오는 것이다. ASP는 20%대가 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범용 D램 대비 5~8배가량 비싼 HBM 같은 고부가 제품이 이번 사이클을 얼마나 주도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주도권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내년까지는 주도권을 이어갈 것이 확실하다. SK하이닉스는 HBM3E 8단을 6개월 전 양산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12단도 곧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받고 있는 제품이 HBM3E 8단이다. 따라서 HBM3E 부문에서 삼성전자나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를 위협할 가능성은 적다. 무엇보다 내년 HBM은 D램 전체에서 공급 Bit(비트) 기준 약 6%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 기준으로는 30%를 넘어선다. HBM은 연 단위 계약이라 SK하이닉스가 예상보다 좀 더 유리하게 가격을 협상했을 가능성도 크다.”
2026년 HBM4가 출시되면 시장 상황이 달라질까.
“HBM4는 블랙웰 다음 버전인 루빈에 들어가는데, 삼성전자가 ‘HBM4부터 판을 뒤집겠다’는 생각이라서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 HBM4부터는 기술이 많이 바뀌기 때문이다. HBM3에 들어가는 D램은 1024개인데 HBM4부터 2048개로 2배가 늘어나고, 칩들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기술이 기존 TC 본딩(D램 사이를 접합하는 기술)에서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바뀐다. 베이스 다이도 주문형 로직 칩으로 바뀐다. 이 로직 칩은 많은 기능이 적용되며, 고객사 맞춤으로 제작된다. 또한 HBM4 베이스 다이의 로직 칩은 파운드리가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원래 HBM4 베이스 다이를 TSMC 5㎚ 공정에서, 삼성전자는 자사 4㎚에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HBM 사업부가 베이스 다이를 TSMC와 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수장이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바뀌면서 자존심을 버리고 D램및 HBM 경쟁력 회복에 총력을 쏟고 있다.”
시장은 엔비디아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다.
“엔비디아 주가는 단기적으로 다음 실적 발표가 허들이 될 수 있다. 지난 분기 엔비디아는 매출성장률 122%를 기록했지만, 전분기 260%와 비교해 성장률이 꺾였다는 이유로 주가가 하락했다. 이번 분기도 비슷한 모습일 것으로 예측된다. 주가가 어느 정도 조정받고 나면 다시 상승할 것이다. 시장에서 AI 외에는 성장할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AI 혁명 사이클의 또 다른 수혜 기업도 주목해야 한다.”
통신 분야 주목해야
구체적으로 투자자는 어떤 AI 분야를 주목하면 좋을까.“통신이다. AI 혁명 사이클에서 투자 키워드는 쇼티지(공급 부족)다. AI 혁명에서 엔비디아 AI 칩→TSMC의 CoWos 어드밴스드 패키징→HBM→데이터센터→전기 순으로 쇼티지가 발생했다. 최근 반도체 간, 서버 간, 데이터센터 간 빠른 통신을 위해 광자 통신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도체 간 광자 통신에는 구리 선 대신 실리콘 포토닉스(광반도체)가 사용된다. 광자 통신을 하려면 광신호를 전기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 트랜시버라는 전환 장치가 반도체 패키지에 들어간다. 서버 간 통신에는 구리 선 대신 광케이블이 사용되면서 고속 스위치 같은 통신 네트워크 장비의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결과 최근 아리스타 네트웍스, 코히런트 같은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통신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분야가 있나.
“반도체 간 통신이 광자로 바뀌면 기존 플라스틱 기판에서 유리 기판으로 바뀐다. 그래서 유리 기판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유리 기판 관련 기업으로는 필옵틱스, HB테크놀러지 등이 있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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