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밀로셰비치 적반하장 기가 막히네

전범 재판서 “내가 뭘 잘못” 되레 큰소리 … ‘발칸의 상처’ 치유 멀고 힘든 과정 예고

  •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18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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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로셰비치 적반하장 기가 막히네
    역사적 심판이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60)에 대한 재판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밀로셰비치 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와 도쿄 군사법정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전범재판으로 꼽힌다. 그러나 헤이그 구(舊)유고전범법정(ICTY)에 선 밀로셰비치는 당당하다. 1990년대 초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의 잇따른 독립선언으로 유고연방이 해체될 때 벨그라드 주재 마지막 미국 대사를 지낸 인물이 워런 짐머만. 그는 자신의 회고록 ‘재난의 근원: 유고와 그 파괴자들’(1996년 판)에서 밀로셰비치의 강한 자존심과 함께 자신의 논리에만 집착해 상대를 압도하려는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해 4월 체포된 뒤 대량학살 등의 혐의로 올해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재판받고 있는 밀로셰비치의 요즘 모습은 짐머만 전 대사의 회고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자비한 인종 청소 20만명 사망

    밀로셰비치 적반하장 기가 막히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참혹한 만행으로 꼽히는 전쟁이 1990년대 발칸 전쟁이다. 20만명이 숨지고 3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발칸 전쟁을 말할 때 밀로셰비치를 빼놓을 수 없다. ‘위대한 세르비아’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1989년 권력을 잡은 그는 무자비한 인종 청소의 최고 책임자로 꼽혀왔다. 법정에 선 밀로셰비치는 크로아티아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1992∼95년), 코소보 전쟁(1998∼99년)에서 인종 학살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보스니아 내전 막바지에 7000명 이상의 이슬람교도가 살해된 스레브레니차 학살사건(1995년 7월)과 관련, “사건 진상을 조사한 결과 일부 혐의자를 검거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석방했다”고 얼버무린다.

    밀로셰비치는 되레 “발칸 유혈사태의 주범은 분열을 부추긴 서방 지도자들”이란 주장을 편다. 자신은 “광란의 국수주의를 타파하려 했으나 서방 열강의 분열지배 압력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는 것. 그는 따라서 “진실은 나의 편이며 그렇기에 나는 도덕적 우월감과 함께 승리를 거둔 것으로 생각한다”고 엄숙하게 말한다. 그러나 밀로셰비치에겐 발칸 반도를 피로 물들인 잇따른 내전에서 저질러진 살인ㆍ고문ㆍ강간 등 잔혹행위를 총지휘한 혐의가 따른다. 이렇다 할 변수가 없는 한, 무려 66개 범죄항목이 따라붙은 밀로셰비치에겐 무기징역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밀로셰비치의 법정투쟁은 지켜보는 이들이 질릴 만큼 꿋꿋하다. 첫 증인으로 나온 코소보 알바니아계 정치인 마흐무트 바칼리(66)는 밀로셰비치의 노회한 반격에 완패했다는 평가다. “내가 학살을 지시했다는 구체적 증거를 내놓으라”는 밀로셰비치의 논리를 꺾기는커녕 이마에 땀을 닦으며 물러났다. 이에 따라 칼라 델 폰테 수석검사를 비롯한 헤이그 법정 검사들은 앞으로의 전략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이들은 밀로셰비치가 그토록 고집스레, 그리고 자신의 법정논리에 따라 버틸지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밀로셰비치가 정치인이 아니고 변호사로 나섰더라면 크게 성공했으리란 얘기마저 헤이그 법정 주변에서 나돈다.



    필자가 보기에 밀로셰비치의 저력은 자존심이다. 지난해 4월, 벨그라드 대통령궁에서 체포될 당시에도 그는 완강히 버텼다. 권총을 휘두르며 “나는 살아서 이 집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외쳤다. 이는 그의 퍼스낼리티를 잘 드러낸다. 클린턴 정권 당시 미국 유엔 대사를 지낸 리처드 홀부르크는 발칸 전쟁을 끝내기 위해 밀로셰비치와의 막후협상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는 회고록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1998년 판)에서 협상 과정을 소개했다. 요점은, 밀로셰비치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한 벼랑 끝 전술(brinksmanship)로 홀부르크를 진땀나게 했다는 것. 심리학자들이 말하듯 밀로셰비치는 ‘아주 자존심이 강한 사람’(egomaniacs)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필자는 밀로셰비치가 체포될 무렵 “자존심 강한 그가 감옥에서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었다. 밀로셰비치의 딸 마리야도 그에게 “자결하시라”고 권했다. 그러나 헤이그 구(舊) 유고전범법정으로 압송된 뒤의 밀로셰비치를 보면, 그는 결코 자결할 인물이 아닌 듯하다. 그는 구(舊)유고전범법정이 코소보 공습을 이끌었던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대변하고 있어 공정한 재판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법정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호사 선임도 하지 않았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납치당했다”고 주장한다. 부패 등 국내법상 범법 혐의로 수감돼 있던 벨그라드 교도소에서 법정으로 넘겨진 것은 납치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혼자 법정투쟁을 벌이면서 적어도 겉으론 당당하다. 오히려 법정을 비웃으며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를 증인으로 부르라”고 큰소리친다.

    밀로셰비치는 자신을 법정에 세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중 잣대로 자신을 욕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방 국가들이 과격 무장세력들을 ‘테러리스트’라 규정하면서도 세르비아 세력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 코소보해방군(KLA)을 테러조직이 아닌 ‘자유투사들’로 보는 ‘이중의 기준’을 적용했다고 비난한다. 그는 “오사마 빈 라덴이 개인적으로 알바니아를 방문하고 코소보에 알 카에다 대원을 파견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런 연결고리를 지닌 코소보인들을 탄압한 것은 부시 미국 대통령보다 앞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는 논리가 된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면 부시와 밀로셰비치는 빈 라덴 세력에 맞서 싸운 동지가 되는 셈인가.

    발칸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정신적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이름하여 발칸 전쟁 증후군이다. 전쟁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는 발칸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코소보 서부 산간마을 쿠스닌. 코소보 전쟁이 끝난 지 꼭 1년 뒤인 2000년 6월 이곳 산간마을 소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았다. 코소보 어린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 시골 아이들은 순진하고 맑은 눈망울을 지녔다. 그러나 선생님과 둘러앉아 코소보 전쟁 때 겪은 체험들을 말하는 순간 아이들은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세르비아 민병대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피살ㆍ강간ㆍ납치당하고 집이 불탄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발칸 전쟁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따져 보면 밀로셰비치가 남긴 상처다.

    아직 밀로셰비치 재판은 초기나 다름없다. 이 재판은 앞으로 2년을 끌 참이다. 발칸 전쟁 범죄와 관련한 생존자들의 증언과 밀로셰비치의 반론이 이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군에게 조직적 강간을 당한 부녀자들이 증언대에 설 경우 밀로셰비치도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나토군이 주축이 된 코소보평화유지군(KFOR)과 함께 1999년 6월 코소보로 들어갔을 때 만난 알바니아계 사람들은 “밀로셰비치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난의 원인 제공자”라고 비난했다. 밀로셰비치와 함께 전범으로 지목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정치인 라도반 카라지치와 군 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는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세르비아인들은 이들을 ‘우리들의 영웅’이라 부르며 감싸고 돈다. 그래서 보스니아 주둔 나토군(SFOR)도 그들을 잡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들이 모두 잡힌다면 발칸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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