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이 드라마틱한 사건 소식으로 10월 24일 프랑스의 아침은 시작됐다. 새벽 5시 파리 외곽에 위치한 이블린 지역 아파트 2층에 거주하는 마뉴엘 아르망은 거세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예기치 못한 손님은 3층에 사는 남자인 E. 평범한 아내, 4명의 자녀와 함께 다복하게 사는 듯 보였던 그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피범벅이 돼 아파트 복도에 서 있었던 것. 끔찍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마뉴엘은 E가 요구하는 대로 바지, 셔츠 등 당장 입을 수 있는 옷가지를 내주고 집으로 들어와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E의 목소리를 들었다.
“악마를 따라가선 안 돼. 그들에게 속고 있는 거야.”
E의 비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마뉴엘은 아파트 밖으로 피해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도착한 수색대는 현장의 참담한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뉴엘 집 앞 복도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마르지 않은 핏자국을 따라 도착한 E의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거실의 열린 창 너머로 내려다본 아파트 뒤뜰엔 창으로 뛰어내린 듯 보이는 12명이 쓰러져 있었다.
핏자국 흥건 참담한 사건 현장
병원으로 이송된 이들은 21세에서 30세가량의 성인들과 4개월 된 아기 그리고 9세까지의 아이들이었다. 성인들은 경상을 입은 데 그쳤지만 아이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특히 4개월 된 E의 막내딸은 병원 이송 후 바로 사망했다. 이들은 왜 창밖으로 뛰어내린 것일까. 경찰은 E와 그의 아내 A를 집중 조사했다. E의 진술은 아래와 같았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TV를 보고 있었어요. 잠시 잠이 들었는데, 막내딸이 울더군요. 그래서 우윳병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죠. 그런데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내(A)의 형제들이 저를 보며 ‘악마에 씌었다!’고 외치더군요. 그러면서 제게 달려들었어요. 몸싸움 도중 잠옷은 모두 찢겨나갔고 저는 집밖으로 밀려났어요. 현관문이 닫히려는 순간 화가 나서 몸을 던져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이 사람들이 ‘당신은 악마다’라는 말을 되뇌면서 식칼로 제 팔과 온몸을 공격했어요. 아내와 아내의 형제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어요. 칼에 찔려 출혈이 심했던 저는 아래층에 있는 마뉴엘에게 도움을 청했죠. 그리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집으로 올라갔는데, 문이 잠겨 열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 모두 ‘악마를 따라’ 창밖으로 몸을 던졌죠.”
일가족 12명의 투신 사건이 일어난 파리 외곽의 한 아파트.
“E가 갑자기 무엇에 홀린 듯 집 안에 있는 우리와 아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아무도 밖으로 도망칠 수 없게 했어요. 칼까지 들고 위협하던 그를 몸싸움 끝에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잠그려 했지만 힘으로 당해내기 어려웠죠. 우리는 모두 공포에 떨다가 E를 피해 창밖으로 몸을 던져 탈출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로가 가해자라며 책임 전가
아파트 뒤뜰에 투신한 이들은 경찰 도착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성인들은 경상을 입었지만, 아이들은 1명이 죽고 나머지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현장 수색 도중 E의 자택에서 피 묻은 칼을 3개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격한 몸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순히 악마의 출현이 사건의 발단이라는 E의 진술은 의심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종교 때문이든,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이든 실랑이를 벌일 수는 있지만, 이로 인해 다치거나 숨진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을 것입니다.”
경찰은 E와 아내 A 그리고 E의 진술에 반기를 들고 나선 A의 친오빠 B를 구속해 당분간 정신과 전문의와 경찰의 감시하에 두기로 했다. 사망한 여아는 병원으로 옮겨 부검할 예정이다. E의 가족이 창밖으로 뛰어내린 것은 이들이 목격했다는 악마 때문인가. 아니면 E의 난동 때문인가. 이날 새벽의 진실에 프랑스 국민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