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단순하다. 발기가 되고 사정만 하면 섹스의 즐거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즉, 잘 서지 않는 것만 해결하면 남성의 성기능 장애도 말끔히 없앨 수 있다. 순식간에 쏟아내는 것 역시 남성이 자주 호소하는 고민거리지만, 기전으로만 따지면 그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물론 자격지심에 섹스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다행히 두 가지 문제점 모두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와 조루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게 됐다.
반면 여자는 복잡하다. 여성 최고의 성감대는 ‘뇌’라고 할 정도로 환경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파트너에 대한 사랑과 친밀감, 분위기도 중요하다. 또 과거와 달리 여성 스스로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야 하고, 흥분도 돼야 하며,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껴야 하고, 그런 반응이 파트너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다수 여성은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성학’(김세철 외 지음, 군자출판사 펴냄)에 따르면 △ 전체 기혼 여성의 50%가 자신의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 나이가 들면서 심각해지며 △ 남편과 가사, 시집살이 등 성 외적 요인에 좌지우지되고 △ 잘못 형성된 성지식과 연관이 있으며 △ 여성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여성의 성기능 장애는 ‘질병’이라기보다 ‘성적 불만’으로 보는 게 옳으며, 주관적인 판단에 따르게 된다.
성욕은 식욕만큼이나 강렬한 인간의 욕구다. 그런데 왜 한국 여성은 섹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걸까. 이들의 이불 속 은밀한 속사정을 들어봤다.
“잠든 나 건드리면 ‘죽여버리고’ 싶어요!”
“새벽에 일어나 아이 이유식 챙긴 뒤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이모’에게 데려다줘요. 부랴부랴 출근하고 정신없이 일한 후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죠. 그리고 저녁부터 밤까지 아이와 신경전을 벌여요. 10시 넘어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다음 날 아이 이유식과 아침 챙긴 뒤 12시나 돼야 잠자리에 누워요. 365일 중 300일이 이렇죠. 그때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입김 팍 풍기면서 ‘건드리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어요(웃음). 육아에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욕구나 채우려고 한다는 생각에 화가 불끈 솟죠.”
두 돌 된 아이를 둔 직장여성 이모(34) 씨는 출산 전에는 동갑내기 남편과 ‘속궁합’이 좋았다. 하지만 출산 후 일과 가사, 육아를 책임지면서 스트레스와 피로에 성욕이 생기기는커녕 밤이면 잠이나 푹 자고 싶을 뿐이다. 남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재빨리 침대에 들어가 잠든 것처럼 연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다정하게 말하면 남편이 하자고 할까봐, 일부러 냉랭하게 대화를 이끈 적도 많다. 참다못한 남편이 “날을 정해놓고 하자”고 했고, 이씨는 그 날짜에만 ‘의무방어전’ 치르듯 관계를 맺는다.
“차라리 남편이 어디서 해결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해요. 어렸을 때 본 여성지 등에서는 30대 중반이 되면 성욕이 끓어오른다고 하던데, 늦은 결혼에 늦은 출산을 해서 그런지, 지금 저는 전혀 그렇지 않죠. 이렇게 10여 년 지낸 후 갑자기 갱년기가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듭니다.”
여섯 살 아이를 둔 주부 정모(38) 씨는 “아이를 낳은 후 시작한 각방 생활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업주부인 그는 밤에 아이 때문에 남편이 잠을 설치자 먼저 각방 쓰는 걸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큰 지금도 그는 아이와 자고, 남편은 혼자 자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관계는 1년에 한두 번 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지금은 같이 잠자리에 누워 섹스를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졌어요. 근데 하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아요. 그냥 이대로 아이의 엄마, 아빠로 담담히 살아가는 게 더 편하고 좋더라고요.”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김경희 원장은 “성기능 장애로 병원을 찾는 여성의 상당수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고민한다”고 했다. 우선 의학적으로 보면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성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나와 여성의 성욕을 떨어뜨린다. 한국성과학연구소 이윤수 소장은 “여성의 성욕 저하가 심각하고, 이것이 부부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인다면 모유 수유 기간을 조절하는 게 좋다”며 “부부관계와 자녀의 양육을 함께 고려해볼 때 적절한 모유 수유 기간은 1년”이라고 했다.
또 출산 후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성관계를 할 때 통증을 느꼈다면, 이것이 몸에 각인돼 지속적인 성욕 저하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은 “계속 성욕을 느끼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성욕을 촉진해주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만 받으면 처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앞선 예에서 보듯 의학적 이유보다는 심리적·환경적 요인 때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또 남성과 달리 여성은 안 하면 안 할수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아내의 ‘욕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박 원장은 “남편이 하고 싶다면, 아내를 푹 쉬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그날이다’ 싶으면, 우선 집에 일찍 들어와 아이를 돌보고 가사 노동을 하면서 아내가 푹 쉴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렇게 여자의 몸이 편안해지면 섹스를 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죠. 만족스러운 섹스를 통해 발생하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은 관계 후 숙면을 취하게 하고, 웬만한 피로를 싹 없애줍니다. 즉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도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주기적인 섹스를 하는 게 좋죠. 여기엔 남편의 배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아이가 크거나 노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에서 성관계를 하는 게 불편하다고 토로하는 여성도 많다. 이때는 호텔이나 모텔에 가는 것도 좋다. 경기도 일산에서 아홉 살 아들, 시부모와 사는 직장인 김모(41) 씨는 최근 남편과 함께 집 근처 모텔을 찾았다. 모텔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에로 영화를 감상하다가 자연스럽게 성관계에 이르렀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섹스를 하는 준(準)섹스리스 김씨 부부였지만, 이날만큼은 연애할 때처럼 하룻밤에 2번 관계를 했다. 김씨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성은 편안하지 않은 집 안 분위기가 성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남편과 모텔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이 밖에도 남편에게 전혀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좋지도 않은데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게 부담스럽다거나, 남편의 외도 이후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등 여성이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성관계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척 다양하다”며 “부부가 성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고, 서로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속 시원히 털어놓으며 함께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뚱뚱해진 몸 보여주기 싫어요!”
“어느 날 남편이 막 달려들었어요. 모유 수유 중인 저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를 실망시키기 싫어 적당히 응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너한테서 ○○(아이 이름) 냄새가 나’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살그머니 제 몸에서 내려왔어요. 더는 흥분이 안 된다는 거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심정이었어요.”
한 돌 된 아이를 둔 주부 강모(33) 씨는 모유 수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안 하게 됐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의 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특히 모유가 몽글몽글 묻은 가슴을 남편이 봤을 때 왠지 모를 비참함이 몰려왔다. 물론 수유할 때마다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지만, 이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는 “처녀 적엔 잘나갔는데, 출산 이후 비참하게 느껴지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우울해졌다”며 “처진 배와 퉁퉁 분 가슴을 보며 자신 있게 섹스에 응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팍시러브’ 운영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이연희 씨도 “회원들의 고민상담 글을 보면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섹스를 안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출산 이후 망가진 몸매 때문에 남편이 실망할까봐 혹은 스스로의 열등감 때문에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성관계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즉, 자신감 상실이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지고 고착되면서 결국 섹스리스 부부로 발전한다는 것. 이씨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탓도 있지만, 출산 후 아내가 살을 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육아와 가사에 치중하다 보면 몸매 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원장은 “아내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간직하도록 노력하는 게 원만한 성관계는 물론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고 조언했다. 그 역시 세 아이의 엄마다.
“30대 섹스리스 부부를 상담한 적이 있어요. 아내가 ‘남편이 전혀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남편은 ‘아내와 여성 상위로 관계를 가졌는데, 너무 무거워서 엄청난 통증을 느낀 이후 전혀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죠. 저는 아내에게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라고 권했어요. 그러면 자신감도 생기고 남편에게 얽매이지 않으며 성관계를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확률도 높습니다. 물론 육아와 가사가 중요하죠. 하지만 아내도 약아질 필요가 있어요.”
“흥분은커녕 젖지도 않아요”
“남편이 아침에만 하려고 해요. 아침마다 발딱 서는 남편을 둔 걸 감사하라면서요. 하지만 잠에서 제대로 깨지도 않은 상황에서, 남편이 ‘건강한 남성’을 갑자기 들이대니 절대 흥분되지 않고 충분히 젖지도 않죠.”
잡지사 기자인 김모(37) 씨는 “아프지만, 남편이 건강하다는 말에 감사하며 감내해야 하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사실 여성에게 섹스란 전희와 삽입을 합친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 남성은 전희를 소홀히 여긴다. 전희 없이 성행위를 하면 윤활 작용을 하는 애액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아 남녀 모두, 특히 여성은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된다. 김 원장은 “발기가 왕성한 아침에 성관계를 하는 게 좋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대부분의 성 흥분 장애는 남자의 배려와 충분한 전희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전희를 했어도 음핵이나 질에 혈액순환이 잘 안 돼 흥분되지 않고 젖지 않을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윤활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이연희 씨는 “대다수 부부가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걸 싫어한다. 특히 남성은 자신의 스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즐거운 성생활은 유연한 사고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증상이 계속된다면 비뇨기과 등 병원을 찾아야 한다. 김 원장은 “성 흥분 장애는 남성의 발기 장애와 같다. 이럴 때 여자도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치료가 될 수 있다”면서도 “여성이 흥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고의 쾌감을 준다는 오르가슴 역시 비슷하다. 박혜성 원장은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섬세하고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여성 3453명 중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 여성이 1286명이었고, 가끔 느낀다고 한 여성이 1209명, 할 때마다 느낀다고 한 여성이 958명에 불과했다(‘성학’). 박 원장은 “오르가슴을 느끼치 못한 채 성관계를 하니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라며 “아마 여자가 남자처럼 매번 오르가슴을 느낀다면, 남자만큼이나 섹스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르가슴은 지스폿의 존재 여부만큼이나 의견이 분분하다. 다행인 건 성 흥분 장애와 마찬가지로 오르가슴도 대부분 남성의 배려와 충분한 전희, 그리고 여성의 자발적 노력으로 개선이 가능하다(37쪽 상자기사 참조).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거나 제대로 흥분하지 못하는 정도에 머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성관계 시 엄청난 통증을 호소하며 남성의 삽입 자체가 불가능한 여성도 있다. 김 원장은 “아내의 통증 장애 때문에 결혼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삽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젊은 부부가 꽤 많다”고 했다.
이런 통증 장애는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거나 성폭력(또는 유사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등 심리적 이유에 의한 경우가 많다. 김 원장은 “이 경우 부부가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삽입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작정 삽입을 하기보다는 남편은 손가락을 하나씩 아내의 질에 넣어보고, 아내가 아픔을 느끼지 않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면 본격적인 삽입을 시도하는 게 좋다. 통증 장애는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여성 비뇨기과 질환 등 건강상 문제로 인해서도 생길 수 있다. 이때는 반드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38쪽 상자기사 참조).
반면 여자는 복잡하다. 여성 최고의 성감대는 ‘뇌’라고 할 정도로 환경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파트너에 대한 사랑과 친밀감, 분위기도 중요하다. 또 과거와 달리 여성 스스로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야 하고, 흥분도 돼야 하며,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껴야 하고, 그런 반응이 파트너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다수 여성은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성학’(김세철 외 지음, 군자출판사 펴냄)에 따르면 △ 전체 기혼 여성의 50%가 자신의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 나이가 들면서 심각해지며 △ 남편과 가사, 시집살이 등 성 외적 요인에 좌지우지되고 △ 잘못 형성된 성지식과 연관이 있으며 △ 여성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여성의 성기능 장애는 ‘질병’이라기보다 ‘성적 불만’으로 보는 게 옳으며, 주관적인 판단에 따르게 된다.
성욕은 식욕만큼이나 강렬한 인간의 욕구다. 그런데 왜 한국 여성은 섹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걸까. 이들의 이불 속 은밀한 속사정을 들어봤다.
“잠든 나 건드리면 ‘죽여버리고’ 싶어요!”
“새벽에 일어나 아이 이유식 챙긴 뒤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이모’에게 데려다줘요. 부랴부랴 출근하고 정신없이 일한 후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죠. 그리고 저녁부터 밤까지 아이와 신경전을 벌여요. 10시 넘어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다음 날 아이 이유식과 아침 챙긴 뒤 12시나 돼야 잠자리에 누워요. 365일 중 300일이 이렇죠. 그때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입김 팍 풍기면서 ‘건드리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어요(웃음). 육아에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욕구나 채우려고 한다는 생각에 화가 불끈 솟죠.”
두 돌 된 아이를 둔 직장여성 이모(34) 씨는 출산 전에는 동갑내기 남편과 ‘속궁합’이 좋았다. 하지만 출산 후 일과 가사, 육아를 책임지면서 스트레스와 피로에 성욕이 생기기는커녕 밤이면 잠이나 푹 자고 싶을 뿐이다. 남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재빨리 침대에 들어가 잠든 것처럼 연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다정하게 말하면 남편이 하자고 할까봐, 일부러 냉랭하게 대화를 이끈 적도 많다. 참다못한 남편이 “날을 정해놓고 하자”고 했고, 이씨는 그 날짜에만 ‘의무방어전’ 치르듯 관계를 맺는다.
“차라리 남편이 어디서 해결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해요. 어렸을 때 본 여성지 등에서는 30대 중반이 되면 성욕이 끓어오른다고 하던데, 늦은 결혼에 늦은 출산을 해서 그런지, 지금 저는 전혀 그렇지 않죠. 이렇게 10여 년 지낸 후 갑자기 갱년기가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듭니다.”
여섯 살 아이를 둔 주부 정모(38) 씨는 “아이를 낳은 후 시작한 각방 생활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업주부인 그는 밤에 아이 때문에 남편이 잠을 설치자 먼저 각방 쓰는 걸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큰 지금도 그는 아이와 자고, 남편은 혼자 자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관계는 1년에 한두 번 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지금은 같이 잠자리에 누워 섹스를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졌어요. 근데 하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아요. 그냥 이대로 아이의 엄마, 아빠로 담담히 살아가는 게 더 편하고 좋더라고요.”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김경희 원장은 “성기능 장애로 병원을 찾는 여성의 상당수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고민한다”고 했다. 우선 의학적으로 보면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성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나와 여성의 성욕을 떨어뜨린다. 한국성과학연구소 이윤수 소장은 “여성의 성욕 저하가 심각하고, 이것이 부부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인다면 모유 수유 기간을 조절하는 게 좋다”며 “부부관계와 자녀의 양육을 함께 고려해볼 때 적절한 모유 수유 기간은 1년”이라고 했다.
또 출산 후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성관계를 할 때 통증을 느꼈다면, 이것이 몸에 각인돼 지속적인 성욕 저하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은 “계속 성욕을 느끼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성욕을 촉진해주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만 받으면 처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앞선 예에서 보듯 의학적 이유보다는 심리적·환경적 요인 때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또 남성과 달리 여성은 안 하면 안 할수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아내의 ‘욕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박 원장은 “남편이 하고 싶다면, 아내를 푹 쉬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그날이다’ 싶으면, 우선 집에 일찍 들어와 아이를 돌보고 가사 노동을 하면서 아내가 푹 쉴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렇게 여자의 몸이 편안해지면 섹스를 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죠. 만족스러운 섹스를 통해 발생하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은 관계 후 숙면을 취하게 하고, 웬만한 피로를 싹 없애줍니다. 즉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도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주기적인 섹스를 하는 게 좋죠. 여기엔 남편의 배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아이가 크거나 노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에서 성관계를 하는 게 불편하다고 토로하는 여성도 많다. 이때는 호텔이나 모텔에 가는 것도 좋다. 경기도 일산에서 아홉 살 아들, 시부모와 사는 직장인 김모(41) 씨는 최근 남편과 함께 집 근처 모텔을 찾았다. 모텔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에로 영화를 감상하다가 자연스럽게 성관계에 이르렀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섹스를 하는 준(準)섹스리스 김씨 부부였지만, 이날만큼은 연애할 때처럼 하룻밤에 2번 관계를 했다. 김씨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성은 편안하지 않은 집 안 분위기가 성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남편과 모텔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이 밖에도 남편에게 전혀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좋지도 않은데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게 부담스럽다거나, 남편의 외도 이후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등 여성이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성관계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척 다양하다”며 “부부가 성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고, 서로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속 시원히 털어놓으며 함께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뚱뚱해진 몸 보여주기 싫어요!”
“어느 날 남편이 막 달려들었어요. 모유 수유 중인 저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를 실망시키기 싫어 적당히 응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너한테서 ○○(아이 이름) 냄새가 나’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살그머니 제 몸에서 내려왔어요. 더는 흥분이 안 된다는 거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심정이었어요.”
한 돌 된 아이를 둔 주부 강모(33) 씨는 모유 수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안 하게 됐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의 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특히 모유가 몽글몽글 묻은 가슴을 남편이 봤을 때 왠지 모를 비참함이 몰려왔다. 물론 수유할 때마다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지만, 이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는 “처녀 적엔 잘나갔는데, 출산 이후 비참하게 느껴지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우울해졌다”며 “처진 배와 퉁퉁 분 가슴을 보며 자신 있게 섹스에 응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팍시러브’ 운영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이연희 씨도 “회원들의 고민상담 글을 보면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섹스를 안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출산 이후 망가진 몸매 때문에 남편이 실망할까봐 혹은 스스로의 열등감 때문에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성관계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즉, 자신감 상실이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지고 고착되면서 결국 섹스리스 부부로 발전한다는 것. 이씨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탓도 있지만, 출산 후 아내가 살을 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육아와 가사에 치중하다 보면 몸매 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원장은 “아내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간직하도록 노력하는 게 원만한 성관계는 물론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고 조언했다. 그 역시 세 아이의 엄마다.
“30대 섹스리스 부부를 상담한 적이 있어요. 아내가 ‘남편이 전혀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남편은 ‘아내와 여성 상위로 관계를 가졌는데, 너무 무거워서 엄청난 통증을 느낀 이후 전혀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죠. 저는 아내에게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라고 권했어요. 그러면 자신감도 생기고 남편에게 얽매이지 않으며 성관계를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확률도 높습니다. 물론 육아와 가사가 중요하죠. 하지만 아내도 약아질 필요가 있어요.”
“흥분은커녕 젖지도 않아요”
“남편이 아침에만 하려고 해요. 아침마다 발딱 서는 남편을 둔 걸 감사하라면서요. 하지만 잠에서 제대로 깨지도 않은 상황에서, 남편이 ‘건강한 남성’을 갑자기 들이대니 절대 흥분되지 않고 충분히 젖지도 않죠.”
잡지사 기자인 김모(37) 씨는 “아프지만, 남편이 건강하다는 말에 감사하며 감내해야 하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사실 여성에게 섹스란 전희와 삽입을 합친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 남성은 전희를 소홀히 여긴다. 전희 없이 성행위를 하면 윤활 작용을 하는 애액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아 남녀 모두, 특히 여성은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된다. 김 원장은 “발기가 왕성한 아침에 성관계를 하는 게 좋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대부분의 성 흥분 장애는 남자의 배려와 충분한 전희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전희를 했어도 음핵이나 질에 혈액순환이 잘 안 돼 흥분되지 않고 젖지 않을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윤활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이연희 씨는 “대다수 부부가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걸 싫어한다. 특히 남성은 자신의 스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즐거운 성생활은 유연한 사고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증상이 계속된다면 비뇨기과 등 병원을 찾아야 한다. 김 원장은 “성 흥분 장애는 남성의 발기 장애와 같다. 이럴 때 여자도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치료가 될 수 있다”면서도 “여성이 흥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고의 쾌감을 준다는 오르가슴 역시 비슷하다. 박혜성 원장은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섬세하고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여성 3453명 중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 여성이 1286명이었고, 가끔 느낀다고 한 여성이 1209명, 할 때마다 느낀다고 한 여성이 958명에 불과했다(‘성학’). 박 원장은 “오르가슴을 느끼치 못한 채 성관계를 하니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라며 “아마 여자가 남자처럼 매번 오르가슴을 느낀다면, 남자만큼이나 섹스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르가슴은 지스폿의 존재 여부만큼이나 의견이 분분하다. 다행인 건 성 흥분 장애와 마찬가지로 오르가슴도 대부분 남성의 배려와 충분한 전희, 그리고 여성의 자발적 노력으로 개선이 가능하다(37쪽 상자기사 참조).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거나 제대로 흥분하지 못하는 정도에 머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성관계 시 엄청난 통증을 호소하며 남성의 삽입 자체가 불가능한 여성도 있다. 김 원장은 “아내의 통증 장애 때문에 결혼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삽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젊은 부부가 꽤 많다”고 했다.
이런 통증 장애는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거나 성폭력(또는 유사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등 심리적 이유에 의한 경우가 많다. 김 원장은 “이 경우 부부가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삽입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작정 삽입을 하기보다는 남편은 손가락을 하나씩 아내의 질에 넣어보고, 아내가 아픔을 느끼지 않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면 본격적인 삽입을 시도하는 게 좋다. 통증 장애는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여성 비뇨기과 질환 등 건강상 문제로 인해서도 생길 수 있다. 이때는 반드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38쪽 상자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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