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대통령이‘21세기 새로운 전쟁’이라 밝힌 대(對) 테러전쟁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무한 정의’(Infinite Justice)라는 작전명이 말하듯, 미국은 장기전을 펼 태세다. 물론 1차적으로는 공습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그리고 이라크?)을 겨냥한 항공모함 전단과 항공기, 특수 정예부대의 배치 등 본격 군사작전을 곧 펼칠 것이다. 1차공습 후 곧바로 소규모 특수 정예부대를 투입해 빈 라덴 체포에 나설 것이다. 이어 해병대와 공수부대 등이 지상 침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 테러전쟁의 핵심은 암살 특공작전, 이른바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다. 전쟁의 사령탑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조지 테닛이다.
빈라덴과 CIA의 오랜 물밑 전쟁
“그들이 복수에 나섰구나.” 2000년 10월 중동의 예멘에 정박하고 있던 미 구축함 콜호가 폭탄을 실은 아랍인의 배에 부딪쳐 크게 파손해 미 해군 17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워싱턴 CIA 본부에서 나온 탄식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수란 지난 98년 여름 미 CIA가 알바니아에서 현지 정보기관과 합동으로 티라나(알바니아 수도) 주재 미 대사관을 폭파하려 한 빈 라덴의 하부조직원들을 검거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CIA도 아직껏 콜호 폭파사건에 대한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막연히 빈 라덴 쪽에서 벌인 테러극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빈 라덴과 CIA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그동안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져 왔다. 2000년 말 CIA는 이탈리아의 미 해군함정과 터키의 미 공군기지에 테러공격을 벌일지 모른다는 경고를 보냈고 미군은 비상경계 근무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때 나폴리 항구로 향한 미 항공모함 트루먼호는 나폴리를 벗어나 크레타 쪽으로 항로를 바꾸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두 달 전 CIA는 쿠웨이트에서 한 테러단체가 숨긴 다량의 폭탄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6000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번 9·11 테러는 CIA의 완패로 판가름났다.
9·11 테러를 미리 막지 못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CIA가 마지막 카드로 꺼낸 무기가 바로 ‘더러운 전쟁’이라는, 그동안 기피대상이 된 암살공작 선포다. 이는 부시 행정부로선 모양새가 좋지 않지만 최선의 선택으로 비친다.
1차적으로는 공습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특수 정예부대를 투입해 빈 라덴을 생포 또는 사살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그들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빈 라덴 조직을 깨뜨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미국은 육군 대 테러 비밀부대 델타포스를 비롯해 베트남전에서 이름을 날린 육군 그린베레 특수전 부대, 해군 특공대 실(Seal) 등 4만6000여 명의 특수부대 병력이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한 지형으로 미뤄볼 때 끝내는 빈 라덴을 잡기는커녕 희생자만 내고 퇴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지고 보면 공습도 문제다. 우선 빈 라덴 세력이 숨은 지점을 잘 모르는 게 문제다.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모르니 공격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걸프전 때나 코소보 전쟁 때는 정확한 목표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공습 또는 미사일 공격이 가능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돌격 앞으로’를 해야 한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다. 잘못하다간 텅 빈 낡은 텐트를 부수기 위해 200만 달러어치의 미사일을 쏘아대는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냉전시대에 애용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는 점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CIA가 해외에서 테러용의자를 암살하거나 암살음모를 꾸미는 것을 금지한 대통령령의 개정을 포함해 대 테러작전 관련 법률을 전면 개정할 참이다. 테러사건 나흘 뒤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 뒤에 부시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은 각기 다른 언론매체에 출연해 지속적 무력공격과 함께 저격수 등 공작원을 통한 테러범 암살을 주내용으로 하는‘비열하고 더러운 정보전쟁’을 벌인다고 공언했다.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암살작전말고도“정보기관의 전화컴퓨터 통신 감청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과 외국인 테러 용의자에 대한 구금 집행권과 계좌 추적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IA가 암살공작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이 묶인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의회 청문회에서 CIA가 쿠바의 국가원수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자 76년 대통령령으로 CIA의 암살공작을 금지했다. 또 지미 카터 대통령은 81년 행정명령 12333호로 이를 더욱 강화했다. CIA의 해외 공작업무를 제한하는 이런 규정 때문에 테러리스트 제거 공작의 입안 자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CIA는 95년도부터 인권탄압이나 전과 등이 있는 외국 첩보요원을 고용할 수 없도록 규제 받고 있다.
그러나 6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테러참사를 계기로 미국인은 공격적이 되었다. 뉴욕타임스와 CBS방송이 지난 주말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가 CIA의 외국 테러리스트 암살공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러운 전쟁 추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제적인 인권감시단체인 HRW(Human Rights Watch)의 워싱턴 지역 책임자인 톰 말리노스키는 미국의 대외첩보활동 관련 법규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미국이 말려야 할 끔찍한 인권남용에 대한 제동장치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고 비판한다. 반대론자들은 정치적 도구로서의 암살은 어떤 경우라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또 다른 유혈보복(테러)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현행 법규상 미 CIA가 비밀공작을 추진하려면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정상적인 외교수단이나 군사행동으로 풀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CIA의 비밀공작이 승인 받도록 되어 있다. 일단 비밀공작이 추진되면, 반드시 의회 정보감독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관계법령 개정으로 이 같은 족쇄에서 CIA가 풀려날 전망이다.
CIA의 행적은 통상 은밀히 이뤄진다. 그래서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예외가 하나 있다. 걸프전과 관련한 CIA의 행적과 관련된 보고서다. ‘걸프전 당시 미군에 대한 CIA의 지원’이란 이름으로 97년 CIA가 발표한 이 문건에 따르면, CIA는 걸프전 당시 미군 작전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자평하였다. 이 문건은 서문에서 “어떠한 사령관도 자신의 적군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콜린 파월(당시 합참의장)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걸프전의 작전(사막의 방패, 사막의 폭풍)을 지원한 성공 사례와 CIA가 행한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문건에서 CIA는 미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CIA의 중요 임무 중 하나라고 규정한다.
1947년 창설 이래 CIA는 적군의 약점, 능력, 의도에 대한 ‘가공되지 않은’ 정보와 완결된 정보 보고서를 제공해 왔다. 1990∼91년의 걸프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쿠웨이트를 이라크가 침공한 순간부터 CIA는 걸프만 지역에 배치한 미 육·해·공군에 정보를 제공하려고 움직였다. 90년 6월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 접경지대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순간부터 미 CIA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정치·군사적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정치 지도자들과 미 군부에 보고했다.
침공 1주일 전 CIA는 이라크가 단순히 방어목적이 아닌, 쿠웨이트를 침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highly likely)고 경고했다. 침공 하루 전에는 후세인의 침공 결정을 기정사실로 보고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CIA 쪽에서 제공한 것임을 이 문건은 밝히고 있다. 이 제보에 따라 당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걸프전을 치르면서 CIA는 미군과의 협력체계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꼈다. 92년 OMA라 일컬어지는 군무 부서(Office of Military Affairs)가 CIA 내에 신설되어 이후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 등에서 군부에게 제공하는 정보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군 작전에서도 CIA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CIA가 현지에 심어놓은 정보망이 약하다는 점이다.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해 미 CIA는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중동 지역의 무장조직 정보에 관한 한 모사드는 CIA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모사드에서 CIA가 배울 수 있는 방법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9월 일어난 팔레스타인인의 인티파다(봉기) 이후 이스라엘은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 무장지도자들을 표적 사살해 왔다. 차량에 폭탄을 미리 장치해 놓고 리모컨으로 원격조종해 폭사시키기도 했지만, 대개는 암살 대상자가 사용하는 휴대폰의 전자파를 이용해 헬기에서 미사일을 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빈 라덴의 경우 이 방식을 적용하기 힘들다. 빈 라덴은 자신의 소재지를 노출시키는 전자신호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전화를 쓰지 않고 전자제품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측근들마저 빈 라덴이 오늘밤을 어디서 보낼지 잘 모른다고 할 정도니 소재 파악이 쉽지 않다.
CIA로서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밀착해 온 파키스탄의 정보부 ISI의 협조가 절실하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국의 테러전쟁을 지지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민심은 흉흉하다. 미국과 CIA에 대한 신뢰관계가 없고 분위기조차 썰렁한 마당에 ISI의 도움을 바라기는 어렵다. 설사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매우 형식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 98년 크루즈미사일 공격정보를 흘려 빈 라덴을 대피시켰다는 의심을 받아온 파키스탄이다. 결국 CIA가 일단 ‘더러운 전쟁’을 효과적으로 벌이려면 현지인(아프가니스탄인)을 고용해 무기와 돈을 지급해 준(準)대리전을 펴야 한다.
CIA로서 믿을 만한 구석은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간 대통령이 이끄는 반군조직인 북부동맹이다. 라바니 전 대통령은 지난 96년 탈레반군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쫓겨난 상태에서 반탈레반 투쟁을 이끌어 왔다. 북부동맹은 오랫동안 미 국무부와 CIA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체 영토의 5% 가량을 차지하는 북부동맹은 집권 탈레반에 맞서 투쟁을 거듭해 왔으나 최근 군 지도자 아흐메드 마수드(전 국방상)의 사망으로 위기에 놓였다. 마수드 뒤를 이어 북부동맹군의 새 사령관으로 취임한 모하마드 파힘은 탈레반 정부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전개하기 위해 조직을 재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공격의 주요 거점으로 북부동맹을 활용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이럴 경우 CIA는 북부동맹의 도움을 얻어 빈 라덴 암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빈 라덴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지하드 닷컴’(jihad.com)의 총회장이고, 그 곁에는 그가 추구하는 반미·반이스라엘 투쟁에 동조하는 많은 아랍의 무장조직이 있다. CIA 관계자들은 이들을 냉소적으로 ‘아프간 동문회’라고 한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소항쟁을 거치며 이들은“이교도를 몰아내고 엄격한 회교율법 아래 이슬람 사회를 새로 건설하자”는 이슬람 근본주의 깃발 아래 동지적 결속을 다져왔다. 빈 라덴의 알 카이다 조직은 이런 아프간 동문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빈 라덴과 연결된 횡적 조직은 이집트의 이슬람 지하드는 물론 필리핀의 아부 사야프 그룹,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운동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있다. 그래서 빈 라덴 한 사람만 쫓으면 큰 그림을 못 본다고 테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많은 이를 상대로 더러운 전쟁을 벌인다면 미국이 당할 보복과 희생 또한 클 것이다.
빈라덴과 CIA의 오랜 물밑 전쟁
“그들이 복수에 나섰구나.” 2000년 10월 중동의 예멘에 정박하고 있던 미 구축함 콜호가 폭탄을 실은 아랍인의 배에 부딪쳐 크게 파손해 미 해군 17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워싱턴 CIA 본부에서 나온 탄식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수란 지난 98년 여름 미 CIA가 알바니아에서 현지 정보기관과 합동으로 티라나(알바니아 수도) 주재 미 대사관을 폭파하려 한 빈 라덴의 하부조직원들을 검거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CIA도 아직껏 콜호 폭파사건에 대한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막연히 빈 라덴 쪽에서 벌인 테러극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빈 라덴과 CIA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그동안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져 왔다. 2000년 말 CIA는 이탈리아의 미 해군함정과 터키의 미 공군기지에 테러공격을 벌일지 모른다는 경고를 보냈고 미군은 비상경계 근무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때 나폴리 항구로 향한 미 항공모함 트루먼호는 나폴리를 벗어나 크레타 쪽으로 항로를 바꾸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두 달 전 CIA는 쿠웨이트에서 한 테러단체가 숨긴 다량의 폭탄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6000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번 9·11 테러는 CIA의 완패로 판가름났다.
9·11 테러를 미리 막지 못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CIA가 마지막 카드로 꺼낸 무기가 바로 ‘더러운 전쟁’이라는, 그동안 기피대상이 된 암살공작 선포다. 이는 부시 행정부로선 모양새가 좋지 않지만 최선의 선택으로 비친다.
1차적으로는 공습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특수 정예부대를 투입해 빈 라덴을 생포 또는 사살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그들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빈 라덴 조직을 깨뜨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미국은 육군 대 테러 비밀부대 델타포스를 비롯해 베트남전에서 이름을 날린 육군 그린베레 특수전 부대, 해군 특공대 실(Seal) 등 4만6000여 명의 특수부대 병력이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한 지형으로 미뤄볼 때 끝내는 빈 라덴을 잡기는커녕 희생자만 내고 퇴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지고 보면 공습도 문제다. 우선 빈 라덴 세력이 숨은 지점을 잘 모르는 게 문제다.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모르니 공격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걸프전 때나 코소보 전쟁 때는 정확한 목표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공습 또는 미사일 공격이 가능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돌격 앞으로’를 해야 한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다. 잘못하다간 텅 빈 낡은 텐트를 부수기 위해 200만 달러어치의 미사일을 쏘아대는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냉전시대에 애용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는 점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CIA가 해외에서 테러용의자를 암살하거나 암살음모를 꾸미는 것을 금지한 대통령령의 개정을 포함해 대 테러작전 관련 법률을 전면 개정할 참이다. 테러사건 나흘 뒤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 뒤에 부시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은 각기 다른 언론매체에 출연해 지속적 무력공격과 함께 저격수 등 공작원을 통한 테러범 암살을 주내용으로 하는‘비열하고 더러운 정보전쟁’을 벌인다고 공언했다.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암살작전말고도“정보기관의 전화컴퓨터 통신 감청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과 외국인 테러 용의자에 대한 구금 집행권과 계좌 추적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IA가 암살공작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이 묶인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의회 청문회에서 CIA가 쿠바의 국가원수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자 76년 대통령령으로 CIA의 암살공작을 금지했다. 또 지미 카터 대통령은 81년 행정명령 12333호로 이를 더욱 강화했다. CIA의 해외 공작업무를 제한하는 이런 규정 때문에 테러리스트 제거 공작의 입안 자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CIA는 95년도부터 인권탄압이나 전과 등이 있는 외국 첩보요원을 고용할 수 없도록 규제 받고 있다.
그러나 6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테러참사를 계기로 미국인은 공격적이 되었다. 뉴욕타임스와 CBS방송이 지난 주말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가 CIA의 외국 테러리스트 암살공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러운 전쟁 추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제적인 인권감시단체인 HRW(Human Rights Watch)의 워싱턴 지역 책임자인 톰 말리노스키는 미국의 대외첩보활동 관련 법규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미국이 말려야 할 끔찍한 인권남용에 대한 제동장치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고 비판한다. 반대론자들은 정치적 도구로서의 암살은 어떤 경우라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또 다른 유혈보복(테러)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현행 법규상 미 CIA가 비밀공작을 추진하려면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정상적인 외교수단이나 군사행동으로 풀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CIA의 비밀공작이 승인 받도록 되어 있다. 일단 비밀공작이 추진되면, 반드시 의회 정보감독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관계법령 개정으로 이 같은 족쇄에서 CIA가 풀려날 전망이다.
CIA의 행적은 통상 은밀히 이뤄진다. 그래서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예외가 하나 있다. 걸프전과 관련한 CIA의 행적과 관련된 보고서다. ‘걸프전 당시 미군에 대한 CIA의 지원’이란 이름으로 97년 CIA가 발표한 이 문건에 따르면, CIA는 걸프전 당시 미군 작전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자평하였다. 이 문건은 서문에서 “어떠한 사령관도 자신의 적군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콜린 파월(당시 합참의장)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걸프전의 작전(사막의 방패, 사막의 폭풍)을 지원한 성공 사례와 CIA가 행한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문건에서 CIA는 미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CIA의 중요 임무 중 하나라고 규정한다.
1947년 창설 이래 CIA는 적군의 약점, 능력, 의도에 대한 ‘가공되지 않은’ 정보와 완결된 정보 보고서를 제공해 왔다. 1990∼91년의 걸프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쿠웨이트를 이라크가 침공한 순간부터 CIA는 걸프만 지역에 배치한 미 육·해·공군에 정보를 제공하려고 움직였다. 90년 6월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 접경지대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순간부터 미 CIA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정치·군사적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정치 지도자들과 미 군부에 보고했다.
침공 1주일 전 CIA는 이라크가 단순히 방어목적이 아닌, 쿠웨이트를 침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highly likely)고 경고했다. 침공 하루 전에는 후세인의 침공 결정을 기정사실로 보고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CIA 쪽에서 제공한 것임을 이 문건은 밝히고 있다. 이 제보에 따라 당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걸프전을 치르면서 CIA는 미군과의 협력체계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꼈다. 92년 OMA라 일컬어지는 군무 부서(Office of Military Affairs)가 CIA 내에 신설되어 이후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 등에서 군부에게 제공하는 정보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군 작전에서도 CIA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CIA가 현지에 심어놓은 정보망이 약하다는 점이다.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해 미 CIA는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중동 지역의 무장조직 정보에 관한 한 모사드는 CIA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모사드에서 CIA가 배울 수 있는 방법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9월 일어난 팔레스타인인의 인티파다(봉기) 이후 이스라엘은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 무장지도자들을 표적 사살해 왔다. 차량에 폭탄을 미리 장치해 놓고 리모컨으로 원격조종해 폭사시키기도 했지만, 대개는 암살 대상자가 사용하는 휴대폰의 전자파를 이용해 헬기에서 미사일을 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빈 라덴의 경우 이 방식을 적용하기 힘들다. 빈 라덴은 자신의 소재지를 노출시키는 전자신호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전화를 쓰지 않고 전자제품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측근들마저 빈 라덴이 오늘밤을 어디서 보낼지 잘 모른다고 할 정도니 소재 파악이 쉽지 않다.
CIA로서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밀착해 온 파키스탄의 정보부 ISI의 협조가 절실하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국의 테러전쟁을 지지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민심은 흉흉하다. 미국과 CIA에 대한 신뢰관계가 없고 분위기조차 썰렁한 마당에 ISI의 도움을 바라기는 어렵다. 설사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매우 형식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 98년 크루즈미사일 공격정보를 흘려 빈 라덴을 대피시켰다는 의심을 받아온 파키스탄이다. 결국 CIA가 일단 ‘더러운 전쟁’을 효과적으로 벌이려면 현지인(아프가니스탄인)을 고용해 무기와 돈을 지급해 준(準)대리전을 펴야 한다.
CIA로서 믿을 만한 구석은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간 대통령이 이끄는 반군조직인 북부동맹이다. 라바니 전 대통령은 지난 96년 탈레반군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쫓겨난 상태에서 반탈레반 투쟁을 이끌어 왔다. 북부동맹은 오랫동안 미 국무부와 CIA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체 영토의 5% 가량을 차지하는 북부동맹은 집권 탈레반에 맞서 투쟁을 거듭해 왔으나 최근 군 지도자 아흐메드 마수드(전 국방상)의 사망으로 위기에 놓였다. 마수드 뒤를 이어 북부동맹군의 새 사령관으로 취임한 모하마드 파힘은 탈레반 정부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전개하기 위해 조직을 재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공격의 주요 거점으로 북부동맹을 활용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이럴 경우 CIA는 북부동맹의 도움을 얻어 빈 라덴 암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빈 라덴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지하드 닷컴’(jihad.com)의 총회장이고, 그 곁에는 그가 추구하는 반미·반이스라엘 투쟁에 동조하는 많은 아랍의 무장조직이 있다. CIA 관계자들은 이들을 냉소적으로 ‘아프간 동문회’라고 한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소항쟁을 거치며 이들은“이교도를 몰아내고 엄격한 회교율법 아래 이슬람 사회를 새로 건설하자”는 이슬람 근본주의 깃발 아래 동지적 결속을 다져왔다. 빈 라덴의 알 카이다 조직은 이런 아프간 동문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빈 라덴과 연결된 횡적 조직은 이집트의 이슬람 지하드는 물론 필리핀의 아부 사야프 그룹,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운동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있다. 그래서 빈 라덴 한 사람만 쫓으면 큰 그림을 못 본다고 테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많은 이를 상대로 더러운 전쟁을 벌인다면 미국이 당할 보복과 희생 또한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