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그냥 ‘학원강사’가 아니라 정말 선생님이셨어요’(윤아영) ‘선생님 같은 분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김동현)….
지난 9월21일 온라인 입시교육회사 메가스터디㈜ 사이트(www.megastudy.net)에 링크된 논술강사 고 조진만씨(32)의 ‘사이버분향소’엔 제자들의 추모글이 1400여 건을 넘었다. 같은 날 그의 개인 홈페이지(www.jojjinman.com)에 오른 추모글은 무려 6000여 건. 무엇이 이토록 한 학원강사의 죽음에 애도의 행렬이 끊이지 않도록 했을까.
9월17일 과로에 폐렴이 겹쳐 숨진 조씨는 9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의 주요 4개 대학 논술문제 6개를 적중시킨 ‘스타 강사’. 그는 9월 초 입원 직전까지도 서울 강남 일대와 분당·평촌·수원의 7개 입시학원에서 휴일도 없이 언어영역 및 논술과목을 강의해 왔다.
한양대 국문학과 재학시절인 94년 학원가에 논술조교로 첫발을 디딘 조씨는 졸업 이듬해인 97년부터 4대 PC통신망에서 개성 있는 논술 공개강좌를 펼쳐 99년 교육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고, 많은 논술교재를 집필했다. 월 수입이 1000만 원을 훨씬 웃돌 정도로 명성도 높았다.
그러나 정작 조씨가 제자들에게서 받는 존경은 이런 외피(外皮)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 그와 동갑내기로 과학탐구 강사인 이범씨(32)는 “조씨는 기존 논술교육방식과 내용의 양면적 혁신을 실현해 보이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평소 자신을 따라다닌 ‘족집게’란 닉네임을 유난히 싫어한 것도 그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조씨의 남다른 교육 열정은 숱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대형 프로젝트TV를 사비로 구입, 강의보조재로 활용하는가 하면 역시 사비로 만든 교재를 제자들에게 나눠주려 봉고로 출퇴근했다. 자퇴·휴학·가출을 꿈꾸는 제자들의 상담교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강료가 없어 강의를 못 듣는 학원생에겐 무료수업도 해줬다는 게 조씨 동생 진표씨(30)와 학원측의 전언. 조씨는 특히 지난해 9월 메가스터디㈜ 부사장을 겸해 자신의 창의적 강의를 인터넷으로 전파함으로써 사교육 기회의 불평등 해소를 도모하기도 했다.
부인 최경옥씨(28)는 “함께 여행을 가도 남편은 논술강의 아이디어를 찾는다며 캠코더에 갖가지 영상을 담곤 했다. 내년엔 대학원(교육공학)에 진학해 사교육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이론과 접목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조씨의 부음을 접한 제자들과 학부모 500여 명은 강남 삼성의료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고, 일부는 9월19일 수원의 납골당까지 동행했다. 조씨의 동료 강사들조차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의 죽음은 ‘참스승’의 입지가 ‘교실 안팎’의 구분에 있는 게 아니라 항상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침을 주는 데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입증한 ‘마지막 수업’ 그것이었다.
지난 9월21일 온라인 입시교육회사 메가스터디㈜ 사이트(www.megastudy.net)에 링크된 논술강사 고 조진만씨(32)의 ‘사이버분향소’엔 제자들의 추모글이 1400여 건을 넘었다. 같은 날 그의 개인 홈페이지(www.jojjinman.com)에 오른 추모글은 무려 6000여 건. 무엇이 이토록 한 학원강사의 죽음에 애도의 행렬이 끊이지 않도록 했을까.
9월17일 과로에 폐렴이 겹쳐 숨진 조씨는 9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의 주요 4개 대학 논술문제 6개를 적중시킨 ‘스타 강사’. 그는 9월 초 입원 직전까지도 서울 강남 일대와 분당·평촌·수원의 7개 입시학원에서 휴일도 없이 언어영역 및 논술과목을 강의해 왔다.
한양대 국문학과 재학시절인 94년 학원가에 논술조교로 첫발을 디딘 조씨는 졸업 이듬해인 97년부터 4대 PC통신망에서 개성 있는 논술 공개강좌를 펼쳐 99년 교육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고, 많은 논술교재를 집필했다. 월 수입이 1000만 원을 훨씬 웃돌 정도로 명성도 높았다.
그러나 정작 조씨가 제자들에게서 받는 존경은 이런 외피(外皮)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 그와 동갑내기로 과학탐구 강사인 이범씨(32)는 “조씨는 기존 논술교육방식과 내용의 양면적 혁신을 실현해 보이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평소 자신을 따라다닌 ‘족집게’란 닉네임을 유난히 싫어한 것도 그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조씨의 남다른 교육 열정은 숱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대형 프로젝트TV를 사비로 구입, 강의보조재로 활용하는가 하면 역시 사비로 만든 교재를 제자들에게 나눠주려 봉고로 출퇴근했다. 자퇴·휴학·가출을 꿈꾸는 제자들의 상담교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강료가 없어 강의를 못 듣는 학원생에겐 무료수업도 해줬다는 게 조씨 동생 진표씨(30)와 학원측의 전언. 조씨는 특히 지난해 9월 메가스터디㈜ 부사장을 겸해 자신의 창의적 강의를 인터넷으로 전파함으로써 사교육 기회의 불평등 해소를 도모하기도 했다.
부인 최경옥씨(28)는 “함께 여행을 가도 남편은 논술강의 아이디어를 찾는다며 캠코더에 갖가지 영상을 담곤 했다. 내년엔 대학원(교육공학)에 진학해 사교육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이론과 접목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조씨의 부음을 접한 제자들과 학부모 500여 명은 강남 삼성의료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고, 일부는 9월19일 수원의 납골당까지 동행했다. 조씨의 동료 강사들조차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의 죽음은 ‘참스승’의 입지가 ‘교실 안팎’의 구분에 있는 게 아니라 항상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침을 주는 데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입증한 ‘마지막 수업’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