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신년사에서 양안 유지와 대만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중국의 침공에 대비한 대만군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오른쪽에서 두 번째). [CNA]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8월 20일 타이베이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를 주제로 열린 카이다거란 포럼에 참석해 연설한 내용의 일부다. 차이 총통은 “중국은 군사적 위협과 병행해 내정 간섭과 외교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며 “대만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 앞으로 인도·태평양지역의 자유와 민주, 인권 옹호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이 중국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내년 1월 11일 실시되는 총통선거에서 재선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민진당 vs 국민당
대만 국민과 학생들이 홍콩 시민들의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에포크타임스]
이번 대만 총통선거는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패권 다툼을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데다, 홍콩 시민들의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 반대 시위 사태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국민당에 참패해 재선에 도전조차 못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차이 총통은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 통일론에 단호하게 대응한 덕에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하나의 중국’ 원칙과 일국양제를 거부해온 차이 총통을 강력하게 압박해왔다. 민진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것도 단체여행 금지 등 중국 정부의 제재조치로 대만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초 대만과의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주장하면서 통일을 위해서라면 대만을 상대로 무력 사용도 불사할 수 있다며 차이 총통을 겁박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대만 국민의 반감이 고조되면서 바닥에 머물렀던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서서히 올라갔다. 특히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송환법 반대 시위 사태로 중국이 그동안 주장해온 일국양제에 대한 대만 국민의 거부감이 증폭되면서 차이 총통이 무난하게 재선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본성인 vs 외성인
한궈위 가오슝 시장이 대만 국민당의 총통 후보로 선출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왼쪽). 한궈위 가오슝 시장이 국민당 당기를 흔들고 있다. [CNA, 한궈위 페이스북]
차이 총통은 중국에 반감을 가진 대만 토착 원주민인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 1956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중국 푸젠성에서 온 하카(客家)족, 할머니는 대만 고산 원주민인 파이완족 출신이다. 대만 고산 원주민은 한족(漢族)이 아니다. 한족은 본성인과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흔히 대만인으로 불리는 본성인은 명·청나라 때 이주해온 한족을, 외성인은 1949년 국공내전 이후 대만으로 패퇴한 국민당 정부와 함께 옮겨온 중국인을 가리킨다. 국민당은 외성인, 민진당은 본성인이 각각 주요 지지 기반이다.
친중파인 한 시장은 국민당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를 둔 외성인이다. 1957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 쑤저우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대만국립정치대에서 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입법의원(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이후 국민당 정부 시절인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타이베이 농산물도매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한 시장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연고가 없던 가오슝 시장선거에 나서 당선돼 일약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대만의 2대 도시인 가오슝은 지난 20년간 민진당 텃밭이었다. 국민당으로부터 인력이나 자금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선거운동을 벌였던 한 시장은 당시 ‘경제 살리기’를 주장하면서 압승했다. ‘대머리’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그는 신선하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대만 전체에 ‘한류’(韓流·한궈위 열풍)를 일으키기도 했다.
한 시장은 3월 가오슝시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고자 중국 광둥성 선전과 샤먼을 방문했다. 당시 한 시장은 중국의 대만정책 총괄 사령탑인 류제이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과 만나 ‘92공식(九二共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92공식이란 1992년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해석에 따라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심지어 한 시장은 대만 독립에 대해 “매독보다 무섭다”는 등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한 적도 있다. 한 시장은 또 “홍콩 시위 사태를 잘 모른다”며 냉담한 태도를 보이다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지율이 급락하자 한 시장은 “내 주검을 밟고 넘어가지 않는 한 대만에서 일국양제는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대만 총통선거의 최대 변수
대만과 가까운 중국 샤먼시의 한 공원에 세워진 ‘일국양제 통일 중국’ 선전물. [FLICKR]
중국 정부는 대만 카드를 이용한 미국의 견제전략에서 벗어나려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후보가 차기 대만 총통으로 선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만의 독립은 소수 민족들을 자극해 중국의 분열을 초래할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아시아 패권을 차지하는 데 엄청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간주해왔다.
반면 미국 정부는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견제하고자 차이 총통이 재선되길 바라고 있다. 미국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만에 22억 달러(약 2조6276억 원) 규모의 무기 판매를 결정한 데 이어 차이 총통이 7월 카리브해 순방길에 미국을 경유하자 4박 5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정부는 또 ‘항행의 자유’ 원칙을 명분으로 내세워 매달 함정들에 지시해 대만 해협을 통과하게 하는 등 대만 안보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 정부가 자국 바다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영유권 확보를 막는 데도 대만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대만 총통선거의 최대 변수는 홍콩 시위 사태의 향방이 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 사태를 무력 또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진압할 경우 대만에서 반중 정서가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 대만 국민은 홍콩 시위 사태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은 홍콩 시위 사태에 힘입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시장에 앞서고 있다. 대만에서는 “차이 총통이 재선되면 일등공신은 시진핑 국가주석”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대만 총통선거 결과는 미·중 패권 다툼은 물론 향후 동북아 국제질서의 향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대만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