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월 22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경력직을 뽑으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박사급이니 지원해보고 싶다.”
국내 주요 대학원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 글이다. 테슬라코리아는 2월 15일 “세계 최고 수준의 대량생산 AI 칩 개발에 함께할 인재를 찾는다”고 채용 공고를 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월 17일 X(옛 트위터) 계정에 이를 공유하며 태극기 이모티콘 16개도 함께 올렸다. 머스크가 테슬라 채용 공고를 공유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국 반도체 인력을 특정해 지원을 독려한 것은 이례적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맞물려 한국 정보기술(IT) 인력의 해외 이동이 늘어나는 가운데 고급 인재를 둘러싼 글로벌 기업 간 경쟁도 격화하는 양상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태극기 이모티콘 16개를 자신의 X(엣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스페이스X 500명 직접 면접했던 머스크
테슬라코리아는 “해당 프로젝트는 향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량을 기록할 AI 칩 아키텍처 개발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를 다짐하는 만큼 테슬라 채용 방식은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이력서 대신 지원자가 해결한 가장 어려운 기술적 문제 3가지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이번 한국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 채용에도 동일한 방식이 적용됐다. 1월 15일 X 계정에도 머스크는 “어디서 공부했는지, 어느 대기업 출신인지 보지 않는다”며 “당신이 짠 최고 코드를 보내라”는 내용의 게시 글을 올렸다. 단순 프로젝트 참여 경험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난제를 어떻게 돌파했는지를 보겠다는 의도다.머스크는 인재 영입에 직접 관여하는 CEO로도 유명하다. 2008년 “당시 500명 규모이던 스페이스X 채용 인터뷰를 모두 직접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 규모가 커진 후에도 스페이스X 직원 채용에서 3000명을 직접 인터뷰했다는 일화가 경제학자 타일러 카우언의 저서 ‘탤런트(Talent)’와 스페이스X 창업기를 다룬 팟캐스트 ‘리프트오프(Liftoff)’에 남아 있다. 머스크는 “가능하면 한 사람이 모든 후보를 인터뷰해 조직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그 역할에 CEO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업계 이벤트나 콘퍼런스 등에서 직접 인재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이스X 초기 핵심 엔지니어였던 로켓 설계자 톰 뮬러는 캘리포니아 아마추어 로켓클럽에서 머스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수 시간 동안 엔진 설계·추진제·연소 안정성 등을 토론했고, 머스크는 즉석에서 스페이스X에 합류해 로켓 개발 리더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해당 일화는 애슐리 밴스의 ‘일론 머스크’ 전기에 소개돼 있다.
주니어 ↓, 시니어 개발자 ↑ 채용
전 세계적으로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반도체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 청년의 해외 취업이 증가세다. 1월 15일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표한 해외 청년 취업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국 청년의 해외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2023년 5463명, 2024년 5720명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6607명으로 전년 대비 약 15% 증가했다. 2024년 10월 기준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7만5003명 가운데 IT 종사자는 약 1만 명이다.이미 해외에 근무 중이거나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IT 인력은 글로벌 기업 경험과 높은 보상을 해외 취업의 주요 장점으로 꼽는다. 미국 취업을 준비 중인 블록체인 엔지니어 A 씨는 “한국에서 연봉 1억 원인 개발자가 미국에서는 최소 3억 원 수준을 받는다”며 “연봉 격차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구글 엔지니어 B 씨도 “동일 직무 기준으로 미국 엔지니어가 한국보다 2~3배 높은 급여를 받는다”고 전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상여금을 파격적으로 지급하며 실리콘밸리 수준의 보상을 구현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한국은 현금성 상여 중심이라면 실리콘밸리는 급여 외에도 주식 보상 비중이 커 회사 성장과 개인 자산 형성이 직접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IT 업계에서 한국 인력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A 씨는 “한국 개발자는 고용 안정성 때문에라도 일을 더 치열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비자 발급과 연장이 까다로워지면서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개발자 C 씨 역시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 개발자가 상대적으로 ‘하드워커(hard worker)’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 공정과 임베디드 시스템 분야는 한국 엔지니어가 강점을 보이는 영역으로 꼽힌다. B 씨는 “다른 나라에서 이 분야를 경험한 사람이 드물어 한국 출신 인재의 경쟁력이 부각된다”고 전했다.
다만 생성형 AI 이후 해외 취업문이 이전보다 좁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A 씨는 “주니어 개발자 수요가 줄고 미들(middle)·시니어급 중심으로 채용이 재편됐다”고 밝혔다. C 씨 역시 “해외 진출을 목표로 도전하는 이들은 꾸준히 있지만, 미국 내 구조조정 여파와 비자 문제 등으로 현실적인 태도가 강해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주주총회에서 ‘테라 팹(Terra Fab)’ 구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메모리 양산, 첨단 패키징 설비를 수직계열화한 종합 반도체 제조 기지로 거론된다. 전기차를 넘어 로봇과 완전자율주행(FSD)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은 테슬라로선 반도체 공급망을 내부화하는 전략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한국 인력 채용 역시 ‘반도체 자급’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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