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한국 직원들이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서 자사 제품인 DSLR 카메라와 의료기구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이광용 부장, 김윤주 대리, 류진 차장, 정은임 대리, 성석현 차장(왼쪽부터).
그런 점에서 ‘김태희 디카’로 유명한 광학회사 올림푸스한국은 특이한 외국계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00년 9월 세계적인 광학기업인 일본의 올림푸스이미징㈜이 설립하고 지분 100%를 소유한 일본계 기업이다. 그러나 일본 본사가 아닌 올림푸스한국이 인사권과 재무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수익도 일본으로 보내지 않고 100% 한국시장에 재투자한다. 일본에서 파견 나온 직원은 딱 한 명, 그것도 임원이 아니라 의료사업부 소속의 기술전문가다.
설립 후 8년간 비약적 발전 … 매출 1조2000억원 달성
올림푸스한국이 전 세계 205개 올림푸스 해외법인 중 유일하게 ‘독립형 해외법인’으로 운영되는 것은 방일석(45) 대표의 요구에 의해서다. 삼성전자 일본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올림푸스 한국법인의 대표직을 제의받은 그는 한국시장에서의 수익, 인사권, 재무권의 독립을 대표직 수락의 전제조건으로 요청했다. 광학기술이 일천한 한국으로서는 영상(카메라 등) 및 의료(내시경 등)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올림푸스 광학기술과 한국의 강점인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등을 접목한다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해외시장까지 개척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8월4일 서울 삼성동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방 대표는 “외국계 기업의 현지법인 스스로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8년간 올림푸스한국은 놀랄 만한 발전을 거뒀다. 누구나 ‘올림푸스’를 알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고, 2007년까지 1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약 10%가 한국시장에 재투자됐다. 일본에 돌려준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수익의 5% 남짓한 주주배당금뿐이다. 재무부 문제갑 과장은 “다른 외국계 기업과 비교할 때 주주배당을 대단히 짜게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방 대표 또한 “앞으로 주주배당을 늘리더라도 10% 안팎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한국시장에 재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케팅 캠페인과 직영점 운영, 의료분야 학술대회 및 조기 암검진 캠페인 후원 등에 한국시장에서 거둔 수익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투자는 자회사 설립과 사옥 건립이다.
일본 본사가 사업모델 배우러 올 정도로 성공
2002년 올림푸스한국의 자본으로 자회사 ODNK㈜가 설립됐다. ODNK는 디카 메모리카드를 생산, 수출해 2005년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가 하면, 온라인 인화 및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올림푸스한국은 ODNK를 통해 영상, 의료 분야 연구개발(R·D)과 신사업 발굴을 하고 있다. 성석현 전략기획그룹장은 “일본 본사가 ODNK로 사업모델을 배우러 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본사가 ODNK가 개발한 각종 ‘아이템’을 일본시장에 도입하거나 전 세계 올림푸스 시장으로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편 2009년 하반기에는 500억원 규모의 사옥이 삼성동에 준공될 예정이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법인이 독자적인 사옥을 건립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외국계 기업의 해외법인임에도 사업영역 전반을 해외법인 스스로 주도하는 것은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적극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두어 곳의 외국계 기업에 근무한 바 있는 마케팅기획팀 류진 팀장은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다 더 좋은 제의를 받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게 외국계 기업 직원들의 대체적 경향”이라며 “그러나 우리 회사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강하고 평생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부서 김윤주 대리는 “회사가 사옥을 건립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줘 애사심이 더 생긴다”며 “전세 살다 집 사서 이사 가는 것처럼 신이 난다”며 웃었다.
“우리에겐 우리가 잘하는 분야가 있다. 지금부터 내시경을 개발한다면 세계 최초로 내시경을 개발한 일본 올림푸스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바이오 산업은 우리가 앞서간다. 일본 올림푸스의 광학기술을 바이오 산업과 결합해 신사업을 발굴한다면 멋진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올림푸스의 브랜드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의료사업부 이광용 부장의 말처럼 올림푸스한국이 스스로 실천 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기업의 현명한 활용법’이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이 본(本)기업에도 득이 되는 윈윈(win-win) 전략이다. 외국기업의 해외법인으로 출발한 올림푸스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또 하나의 한국발(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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